‘세대 교체’ 명분 초고속 승진으로 경영 전면에 나선 오너가 후계자들
오너가 ‘책임 경영’은 장점…아버지 그늘서 벗어나 능력 입증이 최대 과제
미래 먹거리·신성장 동력 발굴 통한 신사업으로 경영 성과 보이기에 사활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 구동휘 LS MnM COO,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사진=HD현대, 코오롱그룹, E1, SK그룹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모빌리티 대표이사 사장, 구동휘 LS MnM COO, 최윤정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 사진=HD현대, 코오롱그룹, E1, SK그룹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재계의 연말 인사 시즌을 맞아 오너 일가(家) 3·4세들이 각 그룹에서 승진을 하면서 경영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다. 특히 각 그룹마다 ‘세대 교체’를 명분으로 거세게 불고 있는 오너가 3·4세들의 초고속 승진을 두고 재계에서는 그룹을 승계하기 위한 시험대에 본격적으로 오른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1980년대 출생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 오너가 3·4세들은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 게 최대 과제가 됐다. 이로 인해 미래 먹거리와 신성장 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신사업 개발 임무를 맡아 시선을 끌었다.

1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한화 오너 3세 김동관(40) 한화 부회장에 이어 올해는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이규호 코오롱 부회장이 각각 승진했으며 SK그룹에서는 최윤정 본부장이 임원으로, 롯데그룹에서는 신유열 전무가 승진했다.

먼저 지난달 10일 HD현대(옛 현대중공업그룹)는 정몽준(72)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인 정기선(41) HD현대 사장을 신임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1982년생인 정 부회장은 지난 2021년 10월 사장 자리에 오른 지 약 2년 1개월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해 본격적인 3세 경영이 시작된 것으로 분석된다.

정 부회장은 사장직에 오른 뒤 조선업계가 불황일 때 위기극복에 앞장섰고 선박영업 및 기술개발을 지휘하며 경영 역량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조선사업은 물론 정유·건설기계·전력기기 등 그룹 내 주요사업의 경쟁력 확보에 나서는 동시에 수소(H₂)·AI(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 등 미래 성장동력 발굴에도 주력하고 있다.

또 내년 1월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가전·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 전시회 ‘CES(Consumer Electronics Show) 2024’에서 기조연설을 맡는다.

지난달 28일에는 코오롱그룹 오너가 4세인 이규호(39) 코오롱모빌리티그룹 대표이사 사장이 지주사 ㈜코오롱의 전략부문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지난해 사장으로 승진한지 1년 만에 다시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 부회장은 ‘재계 최연소 부회장’ 타이틀을 거머쥐며 주목을 받았다.

이웅열(67) 코오롱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이 부회장은 1984년생으로 2012년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 차장으로 입사해 제조 현장에서 경영 수업을 시작한 데 이어 코오롱글로벌(건설) 부장, 코오롱인더스트리 상무보, ㈜코오롱 전략기획 담당 상무 등 그룹 내 주요 사업 부문을 두루 경험했다.

지난 3년 동안 지주사 최고전략책임자(CSO)를 겸직하며 그룹의 수소사업 밸류체인(Value Chain·가치사슬) 구축을 이끌고 코오롱그룹의 자동차유통 부문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역할을 맡았다.

올해 코오롱모빌리티그룹을 독립법인으로 성공적으로 출범시켰고, 모빌리티 서비스를 아우르는 ‘702’ 브랜드를 내놓으며 새로운 사업에 시동을 걸었다. 코오롱그룹의 미래 신사업 발굴과 추진을 주도하는 등 강도 높은 경영 수업을 마친 그는 부회장 자리에 오르며 코오롱의 미래가치 제고에 나설 예정이다.

LS그룹의 오너가 3세인 구동휘(41) LS일렉트릭 비전경영총괄 대표(부사장)는 소재 사업 강화를 위해 LS MnM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이동한다. 1982년생인 구 부사장은 구자열 LS그룹 이사회 의장(한국무역협회장)의 장남으로 LS일렉트릭 경영전략실 차장, 중국 산업자동화 사업부장, ㈜LS 밸류 매니지먼트 부문장, E1 COO 등을 두루 거친 후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해 미래 성장 사업을 이끌고 있다.

이를 통해 구 회장이 그간 미래 먹거리로 강조해 온 배터리·전기차·반도체(배·전·반) 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그룹의 장기 성장 전략인 ‘비전 2030’ 추진의 중요 축을 담당하게 됐다. LS그룹은 배·전·반를 포함한 신사업 분야에서 성과를 창출해 2030년까지 자산 50조원 그룹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담아 비전 2030을 추진 중이다.

GS그룹은 창립 이후 최대 규모였던 이번 정기 임원 인사에서 오너가 4세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허창수(75) GS그룹 명예회장의 장남인 허윤홍(44) 사장은 GS건설 대표이사에 올랐고, 허정수(73) GS네오텍 회장 장남인 허철홍(44) 부사장은 GS엠비즈 대표로, 허광수(77)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의 장남 허서홍(46) ㈜GS 미래사업팀장 부사장은 GS리테일의 경영전략서비스유닛장을 맡는다.

이와 함께 허명수(68) GS건설 상임고문의 장남 허주홍(40) GS칼텍스 상무와 허진수(70) GS칼텍스 회장의 장남 허치홍(40) GS리테일 상무도 전무로 승진했다.

김윤(70) 삼양홀딩스 회장의 장남이자 오너가 4세인 김건호(40) 경영총괄사무는 지주사인 삼양홀딩스의 사장으로 선임됐다. 이를 통해 전략총괄로 그룹의 성장전략과 재무를 책임지게 된다.

또 OCI그룹 화학 계열사 유니드가 이우일 대표이사 부사장을 사장으로 승진시켰다. 1981년생인 이우일(42) 신임 사장은 OCI 창업주 고(故) 이회림 회장의 손자이자 이 회장 3남 이화영 유니드 회장의 장남으로 오너가 3세다.

박삼구 금호그룹 전 회장의 장남이자 금호가(家) 3세인 박세창(48) 금호건설 사장은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곽재선 KG그룹 회장의 아들 곽정현(41) KG그룹 부사장은 사장으로, 딸인 곽혜은(40) 이데일리 전무는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SK그룹은 최태원(63)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의 사촌 동생인 최창원(59) SK디스커버리 부회장을 ‘그룹 2인자’로 불리는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으로 선임했다. 최 부회장은 임기 2년의 수펙스 의장을 맡아 최 회장과 함께 그룹을 이끈다.

SK그룹 오너가 3세이자 최 회장의 장녀 최윤정(34) 본부장도 지난 7일 인사에서 SK바이오팜 사업개발본부장을 맡아 입사 7년 만에 그룹 내 최연소 임원이 됐다.

1989년생인 최 본부장은 SK라이프사이언스랩스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신규 투자와 사업 개발 분야에서 성과를 드러냈다는 평가다. 앞으로 바이오 부문 미래 신사업 개발과 투자를 지휘할 것으로 예상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68) 회장의 장남인 신유열(37) 롯데케미칼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키며 한국 롯데에 데뷔시켰다. 신 전무는 이번에 신설된 롯데지주 내 미래성장실장과 롯데바이오로직스 글로벌전략실장을 겸하며 그룹 내 중장기 비전과 미래 신성장 동력 발굴을 제시하는 중책을 맡아 이끌 것으로 보인다.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장남 이선호(33) CJ제일제당 식품성장추진실장은 지난해 인사에서 현직으로 발령 나 미래 신성장동력 발굴을 해오고 있다. CJ는 이달에 정기 임원 인사를 앞두고 있다.

이외에도 정대현(46) 삼표그룹 부회장, 홍정국(41) BGF리테일 부회장, 최준호(39) 패션그룹형지 부회장 등 오너가 3·4세가 30·40대 나이로 부회장에 올랐다.

한편 오너가 5세 경영수업도 시작됐다. 박정원 두산그룹 회장의 장남 박상수(29) 씨는 지난 9월 (주)두산 지주 부문 ‘CSO 신사업전략팀’에 수석부장으로 입사하면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예고했다. 1994년생인 박 수석의 두산 계열사 입사는 두산 오너일가 중에서 박지원 두산그룹 부회장 겸 두산에너빌리티 회장의 장남 박상우(29) 씨에 이어 두 번째다. 1994년생인 박상우 씨도 두산퓨얼셀 미국법인 하이엑시엄에 재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미중 갈등과 경기 침체 그리고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퍼팩트스톰(Perfect Storm)’ 글로벌 복합위기 시대가 내년에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재계 오너가에서 세대교체와 책임경영 강화 차원에서 젊은 후계자들을 등판 시키고 있다”며 “재벌가 후손들의 ‘금수저 고속 승진’과 ‘신사업 전담’은 기업 승계를 위한 전형적인 방식이고 오너가의 젊은 리더들은 스스로의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내년 사업 계획 준비에 속도를 내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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