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화 및 인력 교체 이유로 매년 실시…상생금융에 가로막혀 줄줄이 축소 전망

은행권 희망퇴직 시즌이 다가온 가운데 상생금융 압박 속에서 희망퇴직금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은행권 희망퇴직 시즌이 다가온 가운데 상생금융 압박 속에서 희망퇴직금 규모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은행권 희망퇴직 시즌이 다가왔지만 업계 분위기는 여느 때와 다르다. 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열차에 올라타면서 예년과 같은 규모의 희망퇴직을 하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과 우리은행은 이달 말 희망퇴직을 실시할 예정이다. 다른 은행들의 일정까지 더하면 은행권 희망퇴직은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신한은행과 하나은행이 올해 희망퇴직을 1월에 단행한 바 있어 비슷한 시기가 점쳐진다. 이에 앞서 NH농협은행은 11월 21~23일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바다. 

그러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가장 먼저 희망퇴직 신청을 받은 NH농협은행은 10년 이상 근무자 가운데 만 40~56세를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실시했는데 지난해보다 규모가 줄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NH농협은행은 56세 직원에게 28개월치 월평균 급여를 지급했고, 40~55세 직원에게는 20~39개월치 월평균 급여를 희망퇴직금으로 산정했다. 56세 희망퇴직자에 대한 조건은 같지만 40~55세 직원은 39개월까지 지급하던 월평균급여를 20개월치로 줄였다. 

다른 은행들도 희망퇴직금 조건과 규모를 놓고 고심 중이긴 마찬가지다. 11월부터 돌풍처럼 은행권을 휘감은 상생금융 때문이다. 은행권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과 부정적 여론이 형성된 가운데 시작된 상생금융 분위기에서 이전처럼 거액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은행들은 지금까지 최고 수준의 희망퇴직금을 지급해왔다. 은행연합회의 '2022 은행 경영현황'을 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2357명이 퇴사했는데 이들은 1인당 평균 3억5548만원을 받았다. 1인당 평균 금액일뿐 더 많이 받은 이들도 적지 않다. 하나은행이 4억794만원으로 가장 많은 희망퇴직금을 줬고, KB국민은행 3억7600만원, 우리은행 3억7236만원 순이었다. NH농협은행과 신한은행은 각각 3억2712만원, 2억9390만원으로 5대 은행 평균액보다는 적었지만 다른 업권에 비하면 높은 수준이긴 매한가지다. 

이렇게 지급된 희망퇴직금 규모만도 어마어마하다.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아 공개한 '국내 은행권 희망퇴직 현황'만 봐도 2018년부터 올해 7월까지 은행권 희망퇴직자는 1만7402명에 달하며 지급된 퇴직금은 9조6047억원 규모다. 희망퇴직자가 전체 퇴직자의 64.8%를 차지하고 희망퇴직금 비중이 전체 퇴직금의 94.8%에 이른다. 

올해 상반기에는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퇴직지급액이 8억~10억원 규모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타 업권에 종사하는 이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겼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였다.

특히 은행의 희망퇴직금 경우 재취업 지원금, 자녀 학자금, 건강진단비 등까지 지원하며 '황제퇴직' '금퇴자'라는 용어까지 탄생시켰다. 업계 분위기도 달라졌다. 울며 겨자먹기로 회사를 떠나는 것이 희망퇴직이었던 과거와 달리 퇴직 지원자들이 생길 정도였다. 이 때문에 희망퇴직 신청 연령대를 낮춘 은행들도 있다. 

은행연합회의 '2022 은행 경영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2357명이 퇴사했으며 1인당 평균 3억 5548만원을 받았다.
은행연합회의 '2022 은행 경영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시중 5대 은행에서 희망퇴직으로 2357명이 퇴사했으며 1인당 평균 3억 5548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금융당국 주도 하에 상생금융이 시작되면서 희망퇴직 분위기는 상반기와 180도 달라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종노릇' '갑질' 등 지적에 이어 금융당국이 이자 수익 등을 거론하며 은행을 상생금융으로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은행권을 향한 부정적 여론이 형성됐다. 정부 지적도 계속 이어졌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12일 "국민은 은행들이 이자 수익으로 잔치를 하고 임금을 올려달라고 투쟁하는 것을 고깝지 않게 보고 있다"고 비판했으며, 같은달 20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우리 경제를 바닥부터 떠받쳐 온 골목상권은 붕괴 우려에 있는데 은행권은 역대급 이익을 내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자칫 이전과 같은 규모, 혹은 그 이상의 희망퇴직을 실시할 경우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은행들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리고 있고 상생금융을 하는 가운데 희망퇴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자칫 퇴직금 잔치 등 비판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을 배제할 수 없다"면서 "현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희망퇴직 조건을 유지하기 어렵고 NH농협은행이 규모를 줄이면서 다른 은행들도 규모를 줄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는 있지만 이 경우 희망퇴직 절차가 순조롭지 못할 수 있어 고심이 큰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NH농협은행은 희망퇴직금 규모를 최고 39개월치에서 20개월로 줄이면서 신청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축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다른 은행들도 규모 축소에 동참한다면 희망퇴직자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그간 역대급 호황에 희망퇴직 조건이 계속 나아지면서 희망퇴직을 기다리는 젊은 직원들이 늘어날 정도였지만 이제는 정반대 상황에 직면한 셈이다. 은행권에서 "상반기가 막차였냐"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다. 

내부에서는 희망퇴직금 역시 직원의 복지제도 일환이라면서 은행들이 역대급 실적을 올려놓고 되레 눈치보기에 급급한 것은 복지 축소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은행권 희망퇴직은 디지털화 및 비대면에 따른 인력조정과 더불어 신입채용과 연관돼 있다는 점에서 청년실업 해소에 일조하는 상생 행보라는 주장도 적지 않다.

더 큰 문제는 은행권이 희망퇴직 조건을 축소한다 해도 '그들만의 잔치'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NH농협은행과 비슷한 수준으로 조건을 축소한다고 해도 타 업권에 비해 높은 수준일 것이 자명한 데다 최근 유통업계 인력 감축과 맞물려 상대적 박탈감이 적지 않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러한 점은 최근 타 업계 희망퇴직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GS리테일은 1977년생 이상 장기 근속자를 대상으로 18개월치 급여지급 및 학자금 지원을 약속했다. 한화큐셀은 근속기간에 따라 최고 16개월분까지 위로금을 지급하며, 11번가의 희망퇴직자는 4개월분 급여를 받는 정도다. 이와 달리 은행권은 평균 20~30개월치 월급을 챙겨줘왔고 의료비, 학자금, 재취업 및 전직 지원금 등도 챙겼다는 점에서 괴리가 클 수밖에 없다. 

격차가 이렇게 크다 보니 사실상 규모를 줄인다고 해도 큰 차이는 없을 것이란 시선이 지배적이다. 타 업권 수준에 맞추려면 내부 반발을 각오해야 하는 형편이다. 

이에 더해 최근 마트와 홈쇼핑을 비롯한 유통업계에 확산되고 있는 인력 구조조정 분위기가 은행의 희망퇴직과 그 결이 달라 부정적 인식을 더한다. 최근 유통가에 부는 희망퇴직 바람은 코로나19 사태를 힘겹게 지나온 뒤 경기 침체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이 이어지면서 시행되는 인력 감축 성격이 강하다. 

은행도 인력조정 차원에서 희망퇴직을 실시하기는 하지만 매해 상·하반기로 나눠 반복적으로 시행하고, 이후 대규모 신입채용을 한다는 점에서 관행처럼 여겨지고 있다. 더욱이 퇴직금 조건까지 좋아지면서 지원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 때문에 자칫 어설프게 희망퇴직금을 축소했다가는 되레 빈축만 살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은행이 희망퇴직 시즌을 앞두고 고심을 거듭하는 이유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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