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은행 부산 이전, 기업은행 대전 or 대구 이전 등 다시 화두
정치권 중심 국책은행 지방이전, 균형발전 실효성에 의견분분

정치권을 중심으로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정치권을 중심으로 산업은행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국책은행들이 들썩이고 있다. 정치권 때문이다.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지만 2030세계박람회 부산  유치 실패 후 국민의힘이 다시 산업은행 이전을 언급하고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기업은행 본점을 대전으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와 함께 수출입은행 본점을 지방으로 이전하자는 말도 나온다. 국책은행 이전이 사실상 ‘총선용 카드’로 활용되면서 해당은행들은 좌불안석인 상황이다.

여의도 정치권에서 연일 국책은행이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국민의힘은 부산엑스포 유치가 실패한 직후인 지난달 30일 부산에서 현안 회의를 열고 가덕도 신공항 건설과 북항 재개발을 비롯한 산업은행 본점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로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0일에는 황운하 민주당 의원이 기업은행 본점을 대전으로 이전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 1998년 충청은행에 이어 1999년 충북은행까지 퇴출된 후 20년간 지방은행이 부재했고 이로 인해 지역 중소기업들의 자금유통에 어려움이 컸다는 게 황 의원실 설명이다. 황 의원은 정무위원회 소속이며 대전 중구가 지역구다. 

여야가 밀어부치고 있는 산업은행 이전이나 기업은행 이전 모두 지방 활성화에 초점을 두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부터 지방균형발전을 천명했고, 취임 후 국가균형발전위원회가 지방시대위원회로 변모하는 등 지방 발전에 힘쓰는 모습을 보여왔다. 은행의 지방 이전도 이같은 취지의 일환으로 윤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일 때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을 인수위원회에 지시했을 정도다. 

특히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은 현 정부 국정과제 중 하나다. 다만 최근 들어 그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 이를 총선용 카드로 쓰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이 산업은행 이전을 다시 거론한 건 윤 대통령까지 나서 유치 외교를 펼쳤던 부산엑스포가 실패한 직후다. 야당인 황 의원이 거론한 기업은행 이전은 윤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내세운 '충청권 기업금융 중심의 지방은행 설립'과 맞닿아 있다. 황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기 4개월여 전인 지난 7월 홍준표 대구시장이 국민의힘 지도부에 기업은행의 대구 이전 추진을 요청한 바 있기도 하다.

무엇보다 국책은행의 지방 이전이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소위조차 통과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점에서 최근 국책은행 지방 이전이 다시 거론되는 것은 총선용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달 21일 산업은행을 부산으로 이전하기 위한 산업은행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처리가 불발됐다.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산업은행 본점을 부산으로 옮기기 위해서는 한국산업은행법 제4조 '본점을 서울특별시에 둔다'는 조항을 '본점을 부산광역시에 둔다'로 개정해야 한다. 

특히 이번 법안 개정은 사실상 산업은행 이전 사업 본격화를 위한 마지막 관문이기도 했다. 대통령직 인수위가 지난해 5월 산업은행 부산 이전을 국정과제에 포함한 뒤 국토교통부가 올해 5월 산업은행을 부산 이전 공공기관으로 지정·고시해둔 상태였다.

지난달 20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산업은행부산이전추진협의회 소속 각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산업은행법 개정 법안의 정무위 통과를 촉구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달 20일 오전 부산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산업은행부산이전추진협의회 소속 각계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산업은행법 개정 법안의 정무위 통과를 촉구했다.사진=연합뉴스

그러나 개정안 의결이 무산되면서 연내 통과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야가 합의할 때까지 '계속 심사' 안건으로 보류되는 해당 개정안은 논의 자체부터 암초에 부딪히며 사실상 연내 통과가 어려운 상황이다. 올해 정기국회는 오는 9일 종료된다. 

이와 관련해 법안심사소위원장인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의결이 무산된 후 "실무적으로 쟁점을 논의하는 건 지났고 정무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서 산업은행 노동조합 설득과 더불어 여야 원내대표 간 합의를 언급했다. 만약 김 의원 말처럼 여야 지도부의 합의가 성사될 경우 연말 임시국회를 추가 소집하는 등 방안을 통해 연내 통과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정치권 중론이다. 무엇보다 산업은행 노조의 반발이 극심하다.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한국산업은행지부(산업은행 노조)는 부산 이전은 정부와 정치권이 오직 정치 논리에만 사로잡혀 추진하는 것으로 산업은행의 역할과 기능에 심각한 비효율을 초래할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앞서 산업은행 노조는 지난 7월 한국재무학회에 의뢰해 받은 컨설팅보고서를 토대로 산업은행 부산 이전시 10년 동안 7조원의 누적손실이 발생하고 약 15조원의 국가경제적 파급효과 손실도 야기할 것이라 주장했다. 또 국가균형발전을 위해 150여개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했으나 경제적 효과는 미미했다고도 했다. 

산업은행 노조가 근거로 삼은 국토연구원의 '혁신도시 성과평가 및 정책지원' 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 2010~2013년 수도권의 실질총소득은 13.0%, 혁신도시는 11.3% 증가했지만 2013~2016년 실질총소득 증가율은 수도권 16.0%, 혁신도시 12.7%로 격차가 더 확대됐다.

산업은행 부산 이전 이슈로 덩달아 불똥이 튄 기업은행도 좌불안석이긴 마찬가지다. 기업은행은 말을 아끼며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데 이미 두 도시가 거론된 상황인데다 여당과 야당이 모두 탐내는 지역이기도 해 속앓이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총선에 대한 셈법과 맞닿아 있다. 충청권 국회의원은 28명으로 전체 지역구 의석수 253석 중 11.1%를 차지하는데 지역 민심은 그때그때 다르다. 21대 총선에선 민주당이 이겼고, 지난해 대선에선 윤 대통령이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앞섰다. 당 충성도나 몰표가 불가한 지역이기에 캐스팅보트(casting vote·최종 결정권) 역할을 하는 지역으로 꼽혀온 곳이기도 하다. 때문에 여야로서는 충청권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권 셈법일 뿐 기업은행으로서는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타격이 클 것이라는 게 금융업계 시각이다. 기업은행은 국책은행이지만 상장사이기도 해 지방 이전시 타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금융사들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금융관리시 현장을 살피고 평가하는 일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기업은행 본점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기업은행의 애로사항도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대구와 대전에 이어 경남까지 기업은행 이전을 바라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자칫 기업은행 역시 산업은행과 마찬가지로 인력 이탈이 발생할 수 있다. 산업은행 노조는 부산 이전이 공론화된 지난해를 기점으로 퇴사자 수가 급증했다며 금융업에 중요한 맨파워 상실을 우려한다. 실제 산업은행의 지난 1월부터 10월말까지 직급별 퇴사자는 사원·대리급 퇴사자 34명, 과장급 17명 등으로 퇴사자 1~2명에 그쳤던 예년과 다른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국책은행들의 지방 이전 문제를 정치적 시선이 아닌 경제적 관점에서 봐달라는 호소도 이어지고 있다. 금융기관만 이전한다고 해서 지방의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는 게 아니며, 오히려 이전한 금융기관 손실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따라 일반 기업이 먼저 내려가는 게 수순이란 주장도 나온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해외진출시에도 황무지보다는 국내기업이 진출해 있는 곳이 진출지로서의 성장성이 크다"면서 "국내기업이 지방으로 이전할 경우 교육, 교통 인프라 등이 형성될 것이고 이때 금융기관도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더해 국책은행의 억지 이전이 아닌 금융사들이 지방으로 이전하고 싶을 만한 실효성 있는 정책이 우선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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