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홍콩H지수 ELS 관련 은행 발언 직격, 책임분담 거론
금융당국 불완전판매 행태 감시부터 감독, 사후 제재 등 미흡

홍콩H지수 ELS의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홍콩H지수 ELS의 수조원대 손실이 예상되는 가운데 금융당국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항생중국기업지수 주가연계증권(홍콩H지수 ELS) 피해 규모가 수조원대로 예상되면서 '불완전판매'가 다시 도마에 올랐다. 뜨거운 감자가 된 '불완전판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반복되는 양상에도 금융당국의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뒷북만 요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홍콩H지수 ELS는 수조원대 손실을 야기할 수 있는 기로에 놓였다. 2021년 판매 당시에 비해 반토막 난 홍콩H지수가 반등하지 못할 경우 원금까지 손실을 볼 것으로 추정된다. 그 규모가 3조원에 달한다. 손실 위기에 고객들 사이에서는 "위험 설명을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며 불완전판매를 거론한다. 10여분 만에 가입절차가 끝났다거나 노년층에 초고위험 상품을 권유했다는 등 불완전판매 주장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반면 은행들은 "구조상 불완전판매는 불가능하다"며 반박하고 있다. 4년 전 라임‧옵티머스‧DLF 등 환매 중단 사태를 계기로 관련 절차가 엄격해졌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가운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9일 "(금융사와 소비자 간) 어떤 책임 분담 기준을 만드는 게 적절한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원장은 "고위험·고난도 상품이 다른 곳도 아닌 은행 창구에서 고령자들에게 특정 시기에 몰려서 판매됐다는 것만으로 적합성 원칙이 제대로 지켜졌는지 의구심을 품어볼 수 있다"며 "설명 여부를 떠나서 권유 자체가 적정했는지 검토가 필요할 것 같다"고 은행 책임에 무게를 실었다.

이 원장은 "솔직히 저도 수십장짜리(설명서)를 보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며 "질문에 '네, 네'를 답변하라고 해서 했는데 그것만으로 (금융기관의) 책임이 면제될 수 있는지는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은행 등은) 자필 자서를 받고 녹취를 확보했다며 불완전판매 요소가 없거나 소비자 피해 예방을 했다는 입장인 것 같다"며 "그러나 적합성 원칙이나 금융소비자보호법상 상품 판매 취지를 생각하면 자기 면피 조치를 했다는 것으로 들리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홍콩H지수를 가장 많이 판매한 KB국민은행이 DLF 사태 후 은행 판매 한도가 주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많이 판 것이라고 설명한 것에 대해서도 이 원장은 "한도 운운하지만 한도 그런 문제가 아니다"며 "증권사는 노후 자금을 갖고 찾아오는 그런 고객이 없어서 못 판 것이다. 신뢰와 권위의 상징인 은행 창구로 찾아온 소비자에게 어떻게 조치를 해야 하는지 은행 측에서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원장은 금융투자 상품이나 보험 상품 등이 설명에 있어 형식적이고, 오히려 금융회사 면책의 근거가 되는 부분들에 대해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 원장의 말처럼 개선은 분명 필요해보인다. 금융사의 불완전판매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난 1일 금감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간 금융권에서 펀드, 신탁, 보험 등 상품의 불완전판매 금액은 6조원에 달한다. 매년 1조원 이상의 금액이 불완전판매 상품에 투입된 셈이다. 특히 은행이 3조6245억원으로 가장 많은 불완전판매 행태를 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은행이 현재의 판매 방식을 진지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는 이 원장의 말에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그러나 금융당국 책임도 만만치 않다는 게 업계와 대중의 시선이다. 금융당국이 이토록 만연하게 불완전판매가 이뤄지는 동안 별다른 조치를 하지 않았고, 매번 불완전판매로 인해 피해자 손실이 대거 발생했을 때에만 뒷북 조사와 감독에 나선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제재 및 징계에 하세월이 소요되는 점도 금융당국이 비판을 피할 수 없는 이유로 거론된다. 

우선 불완전판매에 따른 제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 2019년부터 올해까지 시중 5대 은행에 ELS 판매와 관련해 제재를 결정한 사안은 국민은행 3건, 신한은행 2건, 하나은행 1건, 농협은행 1건 등 7건에 불과하다. 당장 홍콩H지수 ELS와 관련해서도 피해 규모가 수조원대로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수년간 은행에 대한 감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나온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르면 금융사 직원이 고객에 투자를 권유할 때는 ▲설명의무 ▲적합성 ▲적정성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 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 6가지 의무를 지켜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위반시 불완전판매를 한 것이 된다. 

7건의 제재 사례를 보면 국민은행은 녹취의무를 위반하거나 투자성향이 다른 고객에게 투자위험이 높은 ELS신탁 판매를 강행했다. 투자권유 자격이 없는 직원들이 자격 보유 직원 사번을 빌려쓰는 방식으로 ELS를 팔기도 했다. 신한은행도 ELS 판매 과정에서 녹취를 하지 않는가 하면 전문자격 없는 직원이 판매에 나서기도 햇다. NH농협은행은 고객의 투자 성향보다 높은 등급의 ELS 상품을 9억원 넘게 판매하면서 이를 알리거나 확인받지 않았고, 하나은행은 녹취의무, 비전문인력 등 문제로 불완전판매가 확인돼 금감원의 제재를 받은 바 있다. 

현재 금감원에 ELS 상품 관련 민원이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5년간 7건이라는 제재건수는 감독이 미흡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수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더욱이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 시점인 2021년 이후 올해까지 은행의 불완전판매 관련 제재가 없다시피 했다는 점에서 금융당국을 향한 질타가 더욱 거세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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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의 감독업무가 미흡했다는 것을 뒷받침할 만한 사례는 또 있다. 금융당국이 실시하는 상품판매점검이다. 금감원은 소비자로 가장한 사람들이 기업의 서비스나 제품을 경험하고 평가하는 미스터리 쇼핑을 실시하고 있는데 은행의 경우 상품 판매 시 적합성 원칙과 설명 의무를 준수하고 있는지, 부당 권유 행위가 발생하는지 등을 평가한다. 평가점수가 90점 이상이면 우수, 80~89점이면 양호, 70~79점이면 보통, 60~69점은 미흡, 60점 미만은 저조 등급을 부여한다. 

그런데 은행들이 홍콩H지수 ELS 판매에 한창이던 2021년 당시 금감원 점검에서 최하 등급을 겨우 면한 사실이 드러났다. 금감원이 지난 2021년 11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은행권에 대한 미스터리 쇼핑을 진행한 결과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IBK기업 등 은행 15개사의 점수는 평균 60.5점이었다. 0.5점차로 최하등급인 저조등급을 면한 것이다. 저조등급을 면했다고는 하나 미흡등급이기에 소비자에 제대로 된 판매가 이뤄졌다고 장담할 수 없는 수준이다. 더욱이 현재 문제가 되는 홍콩H지수 연계 ELS가 은행이 미스터리 쇼핑에서 미흡했다고 평가받은 2021년 판매분이라는 점에서 금감원이 점검 후 미흡등급에 대한 적극적 조치와 개선을 이끌었다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되는 소비자들의 피해가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이 뒷북 조사와 제재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절차와 처벌을 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그 예로 라임·옵티머스 사모펀드 사태 제재를 꼽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9일 개최된 제21차 정례회의에서 7개 금융사(신한투자증권·KB증권·대신증권·NH투자증권·중소기업은행·신한은행·신한금융지주)의 지배구조법상 내부 통제 기준 마련 의무 위반에 대해 임직원 제재, 과태료 부과 등 조치를 최종 의결했다. 이는 라임·옵티머스 사태가 벌어진 지 4년만이며 2020년 금감원 제재심 이후 3년만이다.

금융위는 박정림 KB증권 대표의 경우 KB증권의 내부 통제 기준 미비 책임을 무겁게 보고 금감원의 문책경고보다 한단계 높은 직무정지 3개월 처분을 하는 등 제재수위를 높이기도 했다. 그러나 제재 확정까지 3년이나 걸렸다는 점에선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라임·옵티머스 사태의 경우 사안이 복잡하고 당국과 업계 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아 금융위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해당 기간 동안 피해자들은 속앓이를 하며 금융당국의 결정을 주시해왔다. 또 관련 CEO들은 금융당국이 제재 확정을 짓지 못하는 동안 연임하거나 다른 직책을 맡는 등 별다른 제약 없이 활동해왔다는 점도 감독과 제재에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을 부른다. 

비단 라임·옵티머스와 같은 중대한 사안뿐만은 아니다. 우리은행 휴면계좌 비밀번호 무단변경 건의 경우 지난 2018년 발생했다. 당시 우리은행 영업점 200여곳의 직원 300여명이 태블릿 PC를 이용해 고객의 비밀번호를 무단 변경, 휴면계좌가 활성화된 것처럼 꾸며 문제가 됐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제재심은 그로부터 2년이 지나서야 상정됐다. 금감원은 코로나19와 사모펀드 사태 등으로 인해 늦어졌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늑장대응이라는 비판을 면치 못했다. 

금융당국이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야 요란하게 뒷북을 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뒷북의 마무리는 약하다는 말도 나온다. 처벌 수위가 약해서다. 불완전판매만 해도 엄정한 책임추궁으로 유사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해야 마땅하지만 이로 인한 제재는 과태료나 CEO 징계 정도이며 금융사들의 불완전판매는 반복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권 불완전판매 과정에서 금융소비자 보호가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지 등 적극적인 감독을 해야 함에도 자체점검에서조차 미흡한 은행들의 판매행태를 방관하다 사태를 키우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 문제가 된 상품 취급 금융사에 일차적 잘못이 있지만, 금융감독기관 책임론이 불거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홍콩H지수 연계 ELS 역시 쏟아지는 비난 가운데 "금융당국은 뭘 했느냐"는 말이 적지 않다. 불완전판매로 인해 소비자가 피해를 입는 일이 없도록 예방적 감독시스템을 갖추고, 사후에는 강화된 제재를 통해 재발을 막아야 하는 금융당국의 역할을 제대로 해왔는지 돌아볼 때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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