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마쿠라 고교 앞 역 건널목. 사진=최유경
가마쿠라 고교 앞 역 건널목. 사진=최유경

[뉴스워치= 칼럼] 며칠 전 도쿄를 다녀오는 길에 약 20년 만에 가마쿠라(鎌倉)를 다녀왔습니다. 일본 유학 시절 친구들과 신주쿠에서 19세기가 끝나는 1999년 12월 31일을 맞이한 저는 새해를 알리는 카운트 다운이 끝나자마자 그길로 가마쿠라의 에노시마(江戸島)로 달려갔습니다. 밀레니엄 해돋이를 보기 위해서였죠. 아침 해가 떠오르기에는 이른 시간, 차가운 겨울 바닷바람을 맞으면서도 추운 줄 모르고 해돋이를 기다렸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그때의 에노시마는 지금처럼 호텔이 전혀 들어서지 않은 작고 운치 있는 해안이었는데 지금은 꽤 유명한 관광지가 돼 있더라고요.

도쿄의 중심지에서 70km 정도 떨어져 있는 아담하면서도 고풍 있는 도시, 가마쿠라 역까지는 신주쿠 혹은 도쿄역에서 JR 특급으로 약 1시간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하지만 관광객들은 JR을 이용하지 않고, 주로 오다큐선을 타고 후지사와역에서 에노덴(江ノ島電)을 갈아타는 방법을 택합니다. 사실 JR 특급으로 가마쿠라역까지 가고 거기서 에노덴주유권을 사서 관광지역마다 내려 구경하고, 에노덴의 종착역인 후지사와(藤沢)역에서 오다큐선(小田急線)을 타고 신주쿠로 돌아오는 것이 시간상으로는 가장 합리적이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관광객들은 신주쿠에서 탑승하는 오다큐선(小田急線)이 발매하는 에노시마가마쿠라프리패스(오다큐선+에노덴:江の島・鎌倉フリーパス)를 구매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저도 그렇게 했지만, 후지사와역에서 에노덴으로 갈아타서 가마쿠라역까지 갔다가 다시 에노덴을 타고 후지사와역으로 되돌아오니 당일 여행객에게는 시간상으로 좀 빡빡한 느낌은 있었습니다. 한겨울이 아니면 창문을 반쯤 열어놓고 달리는 에노덴의 차창 너머로 들어오는 바닷바람은 시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올해 도쿄의 11월 날씨가 이상기온 현상으로 낮에는 25도가 넘는 초여름 날씨를 보였기 때문이겠지만 말이죠.

후지사와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리로 연결된 에노시마라는 섬이 하나 있습니다. 도쿄에서 비교적 가까운 곳에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아 청춘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에노덴이라는 열차명도 가마쿠라의 에도시마가 워낙 유명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해안가와 민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달리는 에노텐(江ノ島電)은 1902년에 개통된, 오랜 역사를 지닌 운치 있고 정감 있는 전차입니다. 애니메이션 <슬램덩크(スラムダンク)>의 오프닝에 등장하는 노면전차 선로의 건널목을 사이에 두고 강백호와 채소연이 서로 마주 보는 장면의 배경이 바로 에도덴 ‘가마쿠라 고교 앞 역(江ノ電 鎌倉高校前駅)’ 건널목이어서 ‘슬램덩크 성지순례’로도 유명한 곳입니다. 최근까지도 그 인기가 가시지 않았는지 에노덴이 지나가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모여든 관광객들로 여전히 붐비고 있었습니다.

관동지역의 교토로 불리는 가마쿠라는 일본 최초로 막부정치가 시작된 곳입니다. 1192년 천황의 호위 무사였던 겐지 가문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는 헤이지(平氏)의 타이라 키요모리(平清盛)와의 전투에서 승리한 후 천황을 유배 보내고 스스로 권좌에 앉습니다. 천황을 죽이고 자신이 왕이 될 만큼의 세력이 없었던 미나모토는 천황을 무력화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그래도 천황이 사는 교토 근처는 불안했던 거죠. 그래서 완전히 불모지로 아무도 쳐들어올 수 없는 가마쿠라에 터를 잡은 겁니다. 그로 인해 가마쿠라는 무사들의 성지라고 불립니다.

가마쿠라시 한가운데에 미나모토(源) 가문을 수호하기 위해 건설된 ‘쓰루가오카 하치만구(鶴岡八幡宮)’ 신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가마쿠라는 영적 에너지로 가득한 ‘파워 스팟’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무사의 기운이 넘쳐나는 신궁의 기운을 받으려 여전히 전국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가마쿠라 관광 하면 높이가 11.3m인 고토쿠인(高徳院)의 가마쿠라 대불(鎌倉大仏)이 가장 유명합니다. 이 거대한 불상의 건립 배경은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저는 가마쿠라 하면 대불도 좋지만 호코쿠지(報国寺)의 대나무숲, 엔카쿠지(円覚寺)의 단풍, 이치조에칸 산장(一条恵観山荘)의 정원을 추천해 드립니다. 당일치기가 아니라 1박을 해야겠다고 느낄 만큼 볼 것이 많은 도시입니다. 이 가을 아직 늦지 않았으니 혹시 도쿄에 가실 일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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