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하루에 두 번씩 전철을 이용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임산부 배려석이 눈에 띄었다. 열차 한 칸에 2개의 좌석을 마련해 놓았는데 이는 전체 좌석의 4%에 해당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을 생각해 보면 좀 많은 감이 있다. 그래서인지 임산부가 이를 이용하는 것을 보기란 좀처럼 쉽지가 않다. 그 자리는 항상 마지막까지 비어있다가 어느새 누군가가 앉는데 대개는 임산부가 아니다.

노령과 질병, 장애, 임신, 영·유아 동반 등의 이유로 대중교통 이용에 불편함이 있는 사람을 위해 마련한 자리로 예전에는 '노약자석'이라 불렀다. 그러다 2013년 12월 서울특별시에서 시내버스와 전동차 좌석의 일부를 임산부 배려석으로 처음 지정했고 이후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고 한다. 우리랑 다르게 일본에서는 '우선석'(優先席), 대만에서는 '박애좌'(博愛座), 영미권에서는 'priority seating' 혹은 'reserved seating'이라고 부른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 제2조 제1항에 의하면 '교통약자란 장애인, 고령자,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 등 일상생활에서 이동에 불편을 느끼는 사람'을 말하고, 같은 법 제5조 제1항은 '교통사업자는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을 위하여 이 법에서 정하는 이동편의시설 설치기준을 준수하고 교통약자에 대한 서비스 개선을 위하여 지속해서 노력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어 이를 기반으로 마련된 제도라 여겨진다.

임산부 배려석 시행 이전의 교통약자석은 고령화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여 자리가 부족한 상황이었으며, 임신 티가 잘 나지 않는 초기 임산부 등에게 다른 이용자들이 임신 사실에 관해 묻는 등 임산부의 교통약자석 사용 환경이 불편하여 별도로 좌석을 분리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일반 좌석에서 승객이 자발적으로 임산부에게 좌석을 양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승객들도 '일단 배 나온 여성만 보면 무조건 양보한다'와 '의도치 않게 실례를 범할 수 있으니 나서지 말자'라는 선택의 갈림길에서 망설이게 되니, 이럴 바엔 아예 일반 좌석이었던 구역 일부를 임산부 전용석으로 비워 두어 임산부가 알아서 그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임산부 배려석이 나오게 되었다.

임산부 배려석이 필요한 이유는 단순히 임산부가 힘들어서가 아니라 태아의 유산 위험성 때문이라고 한다. 오래 서 있는 것은 척추와 골반에 무리를 주기 때문인데, 저출산 사회에서 태아의 죽음은 국가 인력의 손실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 임산부 배려석을 따로 만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임산 배려석이 있어도 정작 임산부의 처지에선 앉기가 어렵다는 주장도 있다. 임산부 배려석이 많아봤자 눈치만 보이고 사람이 많은데도 아무도 안 앉고 곤란하다는 이야기이다. 비임산부 승객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있더라도 불특정 개인과의 말싸움 및 혹시 모를 피해 때문에 임산부가 먼저 비켜달라고 말하기도 어렵고 자리에 앉고자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사실을 매번 이야기하는 것은 난처하고 번거로운 일이다.

부산광역시는 2017년부터 전국 도시철도 최초로 지하철에 '핑크라이트'라는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발신기를 가진 임산부가 열차에 타면 임산부 배려석 수신기에서 자리 양보를 권하는 불빛과 음성이 나오는 시스템이다. 대전광역시는 2022년 12월부터 임산부 배려석 알림 시스템 '위드베이비'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광주광역시도 2022년 7월부터 지하철 임산부 배려석 알림 시스템을 운영, 임산부 배려석에 사람이 앉으면 스피커에서 '고객님께서는 임산부 배려석에 앉으셨습니다'라는 안내 음성이 나온다. 어느 것이나 주변의 시선을 모으게 되어있어 정작 이용하려는 임산부의 입장에선 다소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한국의 지하철은 복잡하다. 자리에 앉기는 힘들고 너무 사람이 많아 서 있기조차 불편할 지경이다. 지하철에서 장시간 서 있으면 누구나 힘들고 다리가 아프다. 그래서 지하철에 앉아가는 비법이라는 게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대개 비어있다가 임산부로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앉는 모습이 곱게 보일 리가 없다. 때론, 임산부 배려석 자리를 비워놓았더라도 통로에 서 있는 사람들로 인해 임산부가 접근하지 못 하는 예도 있다. 버스의 경우 임산부 배려석과 교통약자석을 합치면 버스 좌석의 절반이 넘어가기도 한다.

한국은 전 세계적으로 출산율이 최하위에 머무른다. 임산부 배려석을 만든 의도는 좋으나 너무나도 적은 출산율에 비해 이용할 좌석이 지나치게 많이 배정된 느낌이다. 이에 임산부 배려석을 교통약자 배려석으로 다시 바꾸는 문제도 생각해 볼 일이다. 사실, 전용석을 만들기보다는 임산부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문화가 자리 잡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나, 양보하는 문화는 오히려 퇴보하는 느낌이다. 게다가 지하철에 탑승한 승객 대부분이 스마트폰에 몰입되어 있어 주변 상황에 신경을 잘 쓰지 않는 게 현실이다. 교통약자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너무나 먼 것 같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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