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계열사 특별감사 실시, ESG 경영 본격화…재도약 시동
사업 정체 해소 및 12조 투자 가속화에 ‘총수 역할론’ 기대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소미연 기자] 태광그룹이 재도약의 기틀을 닦고 있다. 방점을 둔 부문은 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의 ‘책임성’이다.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특별감사를 실시해 경영 현황을 점검하는 한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추진 관련 그룹의 비전 및 사업전략을 수립할 미래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주요 계열사에 ESG위원회를 신설했다. 중장기 계획으로 발표한 ‘10년간 12조원 투자’ 방침도 고수했다.  대내외 경영환경의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신중한 자세를 취했지만 내부 논의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는 게 태광 측 설명이다.

태광의 광폭 행보는 구성원들의 절박한 심정을 방증하는 사례다. 이호진 전 회장의 사법리스크가 불거진 이후 멈춰선 투자시계 가동을 더이상 늦출 수 없다는데 안팎의 이견이 없다. 실제 태광은 이 전 회장이 사임한 2012년부터 보수적인 경영을 보여왔다. 주력 사업인 제조업 부문의 신규 투자액만 보더라도 2011년 4488억원에서 2012년 36억원으로 급감했고, 2015년부터 2019년까진 전무했다. 때문에 내부에선 사업 정체기에 놓였던 지난 10여년의 시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말한다.

결국 태광의 대규모 투자는 ‘잃어버린 10년’을 만회하기 위한 결단이다. 앞서 태광은 2032년까지 태광산업을 중심으로 섬유·석유화학 부문에 10조원을, 금융 계열사인 흥국생명·흥국증권·흥국자산운용에 2조원을 투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7000명의 신규 채용도 약속했다. 주력 사업 강화, 기술 혁신, 미래 먹거리 발굴, 투자 선순환 구조 확립이 태광에서 꼽은 기대 효과다. 이 같은 바람은 이 전 회장의 ‘역할론’으로 이어진다. 그룹의 명운이 걸린 의사결정에 총수의 추진력과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재계도 이 전 회장의 복귀 필요성을 말하고 있다. 글로벌 경영 환경이 날로 악화되는 만큼 총수 공백을 메우고 시장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태광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대규모 투자 집행은 물론 인수합병(M&A)이나 그룹의 미래 방향성을 결정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총수의 부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내부 기강 해이 문제까지 부상했다. 김기유 전 티시스 대표의 해임 사유도 감사 과정에서 적발된 비위 행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감사 대상이 전 계열사로 확대돼 진행 중이다. 

태광그룹 서울 광화문 사옥. 사진=연합뉴스
태광그룹 서울 광화문 사옥. 사진=연합뉴스

혹독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이 전 회장도 마찬가지다. 그간 그룹 경영을 맡아온 전 경영진의 비위 행위에 불똥을 맞았다는 게 태광 측 주장이다. 경찰은 지난달 24일 이 전 회장의 배임·횡령 의혹을 제기하며 강제수사에 돌입했다. 이로 인해 이 전 회장의 경영 복귀도 적신호가 켜졌다. 태광 측은 “의혹을 받는 사건이 발생한 시기에 이 전 회장은 수감 중이었거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로, 일상적 경영에는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며 “내부 감사에서 드러나고 있는 전 경영진의 전횡과 비위 행위가 전 회장에 대한 의혹으로 둔갑해 경찰에 제보된 것으로 보인다”고 해명했다.

이 전 회장이 결백을 주장하는 만큼 경영 복귀도 시간문제다. 만기 출소한 지 이미 2년이 지났고, 지난해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취업제한도 풀린 상태다. 앞서 태광 측은 이 전 회장의 복권이 결정되자 “지속적인 투자와 청년 일자리 창출로 국가 발전에 힘을 보태고 경제 활성화 이바지로 국민 여러분과 정부의 기대에 보답하겠다”며 “함께 잘사는 국민의 나라를 위해 사회와 같이 나누고 더불어 성장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이 전 회장의 등판은 태광이 퀀텀점프를 노릴 수 있는 기회다. 이 전 회장이 재판과 수감 생활로 10여년 동안 경영 공백을 맞으며 ‘비운의 오너’라는 유명세를 치렀지만, 재임 기간에 보여준 경영 능력은 창업주인 고(故) 이임용 회장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M&A 전문가’가 이 전 회장의 별칭으로 불릴 정도였다. 이 전 회장은 2004년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을 통한 사업 체질 개선에 주력했다. 태광전자를 매각해 전자사업을 정리한 반면 쌍용화재(현 흥국화재해상보험), 피데스증권중개(현 흥국증권), 예가람저축은행 등을 인수하며 금융사업을 확장했다. 미디어 사업 역량도 보여줬다. 케이블TV 티브로드 출범과 업계 1위 육성을 이끈 주역이 바로 이 전 회장이다. 태광은 2019년 SK브로드밴드에 티브로드를 매각했으나, 방송 채널사업자 티캐스트를 통해 10개 채널을 운영 중이다. 

현재 태광은 모태 사업인 섬유·석유화학 사업 외에 이 전 회장이 재임 기간 일궈놓은 금융과 미디어 사업을 주력으로 삼는다. 올해 집계된 재계 순위는 52위다. 이 전 회장이 재임할 당시 30위권으로 순위가 급상승했으나 총수 공백을 겪으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모습이다. 태광은 반등의 계기를 모태 사업에서 찾고 있다. 12조원 투자 계획 가운데 80% 이상인 10조원을 섬유·석유화학에 투자하기로 했다. 관건은 역시 이 전 회장의 복귀 시점이다. 일각에선 이 전 회장이 2011년 간암 판정으로 절제 수술을 받았다는 점에서 건강을 우려했으나 지금은 회복한 것으로 전해졌다.

소미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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