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움증권,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로 약 5000억원 미수금 발생
다른 증권사보다 낮았던 증거금률…주가조작 방치 비판 일어

키움증권이 지난 4월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까지 두번이나 주가조작사태의 중심에 서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키움증권이 지난 4월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까지 두번이나 주가조작사태의 중심에 서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상반기 순이익 4258억원, 영풍제지 하한가로 발생한 미수금 4943억원' .

키움증권이 허술한 리스크 관리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순이익을 뛰어넘는 미수금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신뢰도 하락이다. 지난 4월 라덕연 사태 연루 의혹에 휘말렸던 키움증권은 6개월만에 또다시 작전주 의심을 샀던 영풍제지와 연관된 비정상 계좌들이 100여개나 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키움증권에 대한 세간의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하는 모양새다. 

키움증권은 지난 20일 장 마감 뒤 영풍제지 종목에 대해 고객 위탁계좌에서 이날까지 4943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고 공시했다. 영풍제지 하한가로 발생한 미수금이 키움증권 상반기 순이익을 뛰어넘은 것이다. 

왜 키움증권에서만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일까. 업계 안팎에서는 허술한 리스크 관리를 우선 꼽는다. 증권사들은 개인투자자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2영업일 뒤 대금을 갚도록 하는 미수거래를 제공한다. 이때 미수거래 남발을 막기 위해 증거금을 요구하는데 영풍제지 종목에 대한 키움증권과 다른 증권사들의 증거금률 책정이 달랐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올 초부터 7월까지 영풍제지 증거금을 100%로 올렸지만 키움증권은 40%였다. 영풍제지 주식 100만원 어치를 살 때 다른 증권사에는 100만원을 내야 하지만 키움증권에서는 40만원만 내도 살 수 있었다는 얘기다. 키움증권이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불거진 이유 중 하나다.

금융투자협회의 '금융투자회사의 리스크 관리 모범규준'에 따르면 금융투자회사(증권사)는 종목별 재무현황, 가격변동성, 유동성, 신용거래융자 비중, 기타 시장정보 등 다양한 요건을 토대로 증거금률을 산정해야 한다. 모범규준을 근거로 시장상황에 따른 변동성, 거래소의 시장조치 등을 모니터링하며 신용대출 가능 여부도 판단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리한 '빚투'로 빚어질 수 있는 미수채권 증가로 투자자 피해가 야기되고 회사 자본 건전성을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인위적으로 이뤄지는 시세조종의 자금줄로 악용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증권사들은 리스크 관리본부를 따로 두고 운영중이다. 키움증권도 관련 본부 안에 위험종목을 골라내고 증거금률을 산정하는 심사부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대형사들이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하는 와중에도 40%를 유지했다는 점에서 키움증권 내부통제 실패가 여실히 드러난 것이란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영풍제지는 뚜렷한 이유 없이 11개월 동안 주가가 12배 이상 올랐다. 제지업체의 주가수익비율(PER)이 300배가 넘는 건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각종 주식 커뮤니티에서도 작전을 의심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더욱이 4월 라덕연 사태와 6월 무더기 하한가 등을 거치면서 증권사들이 앞다퉈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섰다는 측면에서 키움증권이 리스크 관리에 안일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무엇보다도 키움증권은 지난 4월 차액결제거래(CFD) 서비스를 활용한 '라덕연 주가조작 사건'으로 각종 논란의 중심에 섰던 회사다. 김익래 당시 회장이 4월 24일 SG증권 창구에서 대규모 매도 물량이 쏟아져 다우데이타 등 8개 종목 주가가 폭락하기 이틀전 다우데이타 주식 140만주를 시간외매매로 처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였다. 이로 인해 김 전 회장은 그룹 회장 및 키움증권 이사회 의장 자리에서 물러났고, 주식 매각대금 605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했다.

당시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SG증권발 주가 폭락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검찰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시세조종 주범인 라덕연은 주가 폭락으로 유일하게 이익을 거둔 인물로 김 전 회장을 거론했다. 이로 인해 김 전 회장 자택 및 키움증권 본사 압수수색 등 검찰 수사가 이뤄지기도 했다.

지난 4월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은 김익래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주가조작 연루 의혹으로 회장직을 내려놓은 김익래 전 회장. 사진=연합뉴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키움증권이 주가조작을 방치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월 사태 한번은 사고로 볼 수 있겠지만 6개월만에 또다시 주가조작세력이 활동할 수 있도록 여지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서도 키움증권의 방치에 가까운 리스크 관리를 적극적 영업활동으로 보긴 힘들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상반기에 이어 하반기까지 주가조작 사태의 중심에 키움증권이 서게 되면서 회사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이다. 투자자들은 각종 커뮤니티·단체방에서 "키움증권이 개미를 이용한거냐" "주가조작세력 놀이터였나" "키움증권 거래 끊어야겠다" 등 비판을 내놓고 있으며, 4월 라덕연 사태 후 한동안 이어졌던 키움증권 불매운동이 또다시 확산되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키움증권은 느슨한 리스크 관리로 발생한 5000억원대 미수금을 회수할 수 있을까. 미수금 공시 후 키움증권은 "반대매매를 통해 미수금을 회수할 예정이며 고객의 변제에 따라 최종 미수채권 금액은 감소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업계에서는 실제 회수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영풍제지는 지난 18일 돌연 하한가로 급락하고 19일부터 금융당국에 의해 거래가 정지됐다. 하지만 투자자 보호를 위한 조치인 만큼 장기간 거래 정지가 이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6월 동일산업·방림 등 5종목의 '제2 하한가' 사태 때 거래정지 기간은 12거래일이었다.

다만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의 거래 정지 조치가 풀리고 난 뒤 영풍제지 주가는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 4월과 6월 발생한 동시 하한가 사태와 마찬가지로 연일 하한가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이미 18일 하한가에도 거래가 되지 않았고, 이후 미수금 상황과 반대매매 물량 등이 알려진 만큼 추가 하한가 상황에서도 매수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만약 영풍제지 주가가 급속도로 오르기 전인 1만1162원까지 내려간다고 가정했을 때 키움증권이 회수할 수 있는 금액은 1977억원 정도로 손실액만 3000억원에 육박한다. 키움증권이 4000억원대 손실을 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시세조종에 관련한 연루자들이 특정된 후 영풍제지 거래정지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면서 "거래가 재개된다 해도 추가 하한가가 예상되는 데다 키움증권의 미수금 공시로 가격이 더 떨어질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에서 섣불리 매수에 나서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움증권은 추락한 신뢰, 메워야 하는 손실 외에 또다른 산도 넘어야 하는 실정이다. 금융당국이 상·하반기 연달아 논란의 중심에 놓인 키움증권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지난 4월 라덕연 사태 후 집중점검을 통해 6월 제 2 무더기 하한가 사태를 적발해내는 등 주가조작세력 적발에 여느 때보다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더욱이 금융당국이 연초부터 꾸준하게 증권사들이 리스크 관리에 집중해야 한다는 발언을 이어온 만큼 키움증권의 리스크 관리 실태를 점검하고 전 증권사에 대한 조사를 이어갈 것으로 예측된다. 

다만 금융당국 역시 비난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영풍제지 소액주주들은 "당국 대처가 늦어도 한참 늦었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다. 이미 지난 4월 '라덕연 사태'가 터진 뒤부터 영풍제지 역시 '작전 세력이 관여하고 있다'는 루머가 이어져왔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대처가 늦었다. 한국거래소는 소수 계좌가 과도하게 매매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7월 26일과 8월 3일 각각 영풍제지를 투자주의, 투자경고 종목으로 지정했다. 8월에는 금융당국이 시세 조종 혐의를 포착했다. 이후 금감원이 내부 조사를 거쳐 검찰에 이첩했고, 검찰이 강제 수사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두달여 동안 주식 거래량은 두배 이상 늘어났고, 해당 기간 손실을 본 투자자들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반대로 이 기간 동안 작전 세력은 차익을 실현했을 것으로 보여진다.

실제 지난 8월 19일부터 10월 18일 거래 정지시까지 두달 간 영풍제지의 하루평균 주식 거래량은 직전 두 달간(6월 19일부터 8월 18일)보다 143.6% 증가한 544만2728주였다.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 하루 평균 거래량의 3분의 1 수준이다. 금융당국이 보다 적극적이고 선제적인 대처를 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편 금감원은 영풍제지 주가가 오르기 시작한 시점에 따라 모기업인 대양금속과 연결됐을 가능성도 들여다보고 있다. 1970년 설립된 영풍제지는 1993년 상장했고, 2015년 사모펀드(PEF) 큐캐피탈에 매각됐다가 지난해 6월 대양금속이 매수했다. 큐캐피탈이 대양금속에 영풍제지를 매각한 후 박스권에 있던 주가가 상승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양금속은 영풍제지 인수 자금을 대부분 전환사채(CB)로 조달했고, 대양금속이 발행한 CB는 피인수기업인 영풍제지가 취득했다. 이에 금감원은 대양금속이 CB 발행을 통해 영풍제지를 무자본 인수합병(M&A)하는 과정에서 부당이득을 취득했던 이들이 영풍제지 주가 조작에 가담했을 가능성 등 다양한 부분을 들여다보고 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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