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담배·도박 관련 기업 6조원 규모 투자…책임투자 기준에 의문 제기
해외 죄악주 투자 4조7268억원…하이네켄·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등
지난 국감 지적 불구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 옥시에도 735억원 투자

국민연금공단이 술·담배·도박 등 이른바 ‘죄악주’나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인 옥시에 여전히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연금공단이 술·담배·도박 등 이른바 ‘죄악주’나 가습기 살균제 가해 기업인 옥시에 여전히 투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김동수 기자] 국민연금공단(이하 공단)이 책임투자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고 있다. 술·담배·도박 등 이른바 ‘죄악주’의 투자 규모가 지난해보다 늘어난 게 이유다.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일으킨 옥시에 대한 투자도 여전해 공단의 책임투자 기준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공단이 관리하는 국민 노후 자금 약 6조원이 술·담배·도박 관련 기업에 투자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초 국민연금기금의 죄악주(Sin Stock) 투자 규모는 6조463억원에 달했다. 국내 투자(올해 3월 기준)가 1조3195억원, 해외 투자(올해 2월 기준)가 4조7268억원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국내 투자와 달리 해외 투자 규모가 폭증했다는 점이다. 죄악주에 대한 국내 주식 투자는 2019년 2조2677억원으로 최고점을 찍은 뒤 2020년 2조868억원, 2021년 1조6117억원, 2022년 1조5545억원으로 점차 감소했다. 반면 해외 주식 투자는 2020년 3조1214억원으로 3조원대에 진입한 뒤 올해 2월 4조7268억원까지 늘어났다. 공단이 투자한 해외 죄악주 상위 5개 종목은 하이네켄, 필립모리스 인터내셔널, 디아지오, 페르노리카, 앤하이저부시 인베브 순이었다.

남 의원은 “국민연금기금의 규모가 커져 죄악주에 대한 해외 투자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책임투자 가이드라인은 없다”며 “국민은 술, 도박, 담배로 인한 질병으로 매년 수조원의 국민건강보험료와 병원비를 지출하는데, 죄악주 투자를 지속하는 국민연금기금의 역진적 투자 비중을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기금 투자 종목 선택 시 수익성뿐 아니라 공공성도 감안해야 한다”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고려한 책임투자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공단은 지난 국정감사에서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옥시에 대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10월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공단이 옥시의 영국 본사 레킷벤키저에 투자한 문제가 도마에 오른 바 있다.

국회 회의록에 따르면 공단은 2011년 레킷벤키저에 총 186억원을 투자했다. 이중 외부 운용사가 아닌 공단이 직접 투자한 금액은 36억원이었다. 문제는 수천명의 피해자가 발생하며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사회적 문제로 크게 번졌지만, 오히려 옥시에 대한 투자 규모는 늘어났다는 점이다. 공단이 지난해 3월 레킷벤키저에 투자한 금액은 3291억원. 2011년과 비교하면 투자 규모가 약 17배 증가한 것이다. 공단의 직접 투자 금액도 984억원으로 약 27배 폭증했다.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국감에서 “보험료를 국민 건강을 해친 가해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특히 공단이 피해에 따른 책임을 11년 넘게 제대로 이행하지 않고 있는 기업에 투자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지난 국감에서 문제점이 지적됐음에도 공단은 규모만 줄였을 뿐 여전히 투자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최영희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공단은 올해 7월 기준 레킷벤키저에 5738만900달러, 원화 약 735억원을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옥시레킷벤키저 등 가습기 살균제 사건 관련 기업에 대해 기금투자를 배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라’는 국회의 요구에 레킷벤키저 보유액을 올해 2월 2800억원 수준에서 7월 기준 735억원으로 축소한 것이다. 투자철회가 아닌 투자 규모만 줄인 셈이다.

최 의원은 “국민연금이 책임투자 정책이 미흡하다는 점을 알면서도 개선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며 “국민연금의 수익률도 중요하지만 투자배제 리스트 작성과 운용을 통한 국민 눈높이에 맞는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동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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