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및 별도 요구안 전달 후 넉 달 만에 잠정합의안 도출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단협 조항 개정하기로 결정
올해는 일단 ‘안도’…매년 또 다른 노사 갈등 발생 가능성 커

현대자동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
현대자동차·기아 양재 본사. 사진=현대자동차그룹

[뉴스워치= 김동수 기자] 기아 노사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과 관련해 잠정합의안을 극적으로 끌어냈지만 갈등의 불씨는 여전한 상황이다. 기아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을 무사히 넘기더라도 1년 뒤 똑같은 상황이 반복될 수 있어서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기아, 두 기업의 노사 조건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면 노사 갈등은 매년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고 본다.

◆ 기아 노사 ‘고용세습’ 두고 길고 긴 샅바 싸움

기아 노사는 지난 17일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을 가까스로 마련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기아자동차지부(이하 기아 노조)가 지난 6월 12일 사측에 임금 및 별도 요구안을 전달한 후 넉 달 만이다.

올해 교섭은 ‘고용세습’이라고 비판 받아온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을 두고 노사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기아 노사의 단체협약 27조 1항에는 재직 중 질병으로 사망한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 정년퇴직자 및 장기 근속자 자녀 우선 채용 등의 내용이 담겨있다. 고용노동부가 이와 관련해 시정명령을 내린 만큼, 사측은 올해 임단협에서 해당 조항을 삭제 또는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반면, 노조는 정주영 회장에서 정의선 회장까지 불법 경영 세습부터 처벌하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결국 노사는 지난 17일 열린 16차 본교섭에서 ▲기본급 11만1000원 인상(호봉승급분 포함) ▲경영성과금 300%+800만원 ▲생산 판매 목표 달성 격려금 100% ▲특별 격려금 250만원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재래시장 상품권 25만원에 무분규 타결 무상주 34주 지급 등 잠정합의안을 끌어냈다. 올해 교섭의 핵심 사안 중 하나였던 장기근속자 자녀 우선채용 조항도 개정하기로 했다.

기아 노조는 오는 20일 잠정합의안을 두고 조합원 찬반투표를 진행할 예정이다. 만약 전체 조합원의 과반수가 찬성표를 던지면 올해 임단협은 마침표를 찍게 된다. 지난달 중순 5년 연속 무분규 타결을 기록한 현대차처럼 기아도 올해 파업 없이 임단협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기아 관계자는 이번 잠정합의안과 관련해 “자동차산업 불확실성이 고조되고 미래차를 둘러싼 글로벌 업체 간 경쟁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노사가 미래 발전과 고용안정이라는 큰 틀에 공감해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지난달 12일 광주 서구 기아 광주공장 출입구에 걸린 노조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지난달 12일 광주 서구 기아 광주공장 출입구에 걸린 노조 현수막. 사진=연합뉴스

◆ 극적 타결에도 ‘불씨’는 여전…문제는 ‘양재동 가이드라인’

기아가 노조와 장기간 공전 끝에 고용세습 조항 개정이라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잠재적인 갈등 요인은 여전하다. 올해 임단협을 무사히 넘겼다 치더라도 노조가 내년에 재차 강경한 입장을 보일 가능성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양재동 가이드라인’이 이유다.

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양재동 가이드라인이란 현대차를 정점으로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제철 등 계열사의 근로조건을 서열화하는 노무관리 관행을 말한다. 실제 현대차그룹 계열사 중 한 곳인 현대비앤지스틸 노조는 지난 3월 양재동 가이드라인 철폐를 촉구한 바 있다. 2018년에는 현대제철지회가 총파업에 돌입하며 동일한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현대차그룹 계열사 노조들이 수년째 이러한 관행에 반발하고 있는 셈이다.

기아 노조 역시 비슷한 상황이다. 노조는 올해 임단협 과정에서 현대차 교섭 결과를 따라 하기 위해 교섭을 하는 게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아울러 또다른 쟁점 사안이었던 정년 연장 요구안과 관련해 사측에 전향적인 안을 제시하라고 규탄하기도 했다. 특히 사측을 향해 ‘동종사 핑계’는 대지 말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기아 노조가 거론한 동종사는 현대차로 풀이된다. 앞서 현대차 노사는 지난달 12일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바 있다. 잠정합의안에는 현대차 단체교섭의 핵심 쟁점 중 하나였던 정년 연장이 제외됐다.

기아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역대 집행부가 그룹의 서열화를 거부하고 기아의 자주적인 교섭을 위해 노력해 왔다”며 “사측은 현대차의 교섭 결과와 똑같은 내용을 제시하며 노동조합과 조합원을 조롱하고 무시했다. 성의 없는 교섭과 개악안으로 결국 사측이 파업을 선택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잠정합의안과 관련해 “독자적인 교섭으로 현대차를 뛰어넘는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올해는 차치하더라도 기아의 노사 갈등은 매년 반복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결국 현대차·기아를 완전히 분리해 노사 조건이 서로 다른 회사라는 개념을 갖고 가든지, 아니면 이른 시일 내에 이러한 상황을 불식시킬 만한 균형을 맞추지 않는다면 매년 노사 갈등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동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