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9가지 영양성분 표시 방안 추진…올해 말~내년 초 개정안 입법 예고
“영양성분 표기 정당한 소비자 권리” vs “제조·보관법 따라 영양성분 달라져”

서울시 한 마트에서 판매 중인 밀키트 제품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정호 기자
서울시 한 마트에서 판매 중인 밀키트 제품들. 위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사진=정호 기자

[뉴스워치= 정호 기자] 소분된 재료를 끓이거나 구우면 간편하게 한 끼를 만들 수 있는 ‘밀키트(가정간편식)’의 영양성분 표기를 두고 갑론을박이 펼쳐지고 있다.

밀키트의 영양성분은 내용물을 일일이 표시하기 어렵고 보관·조리 방법에 따라 용량이 달라질 수 있다. 정부와 소비자단체는 당연히 소비자 권리를 위해 영양성분을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밀키트 제조·판매업체들은 표기에 대한 정확한 권고 지침 없이 무조건 영양성분 표기를 이행할 수 없어 계도 기간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밀키트의 영양성분 표기에 논의는 2021년 10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심품의약품안전처 국정감사 당시 밀키트 영양성분 표기 의무화에 대한 지적으로 본격화했다. 밀키트는 육류와 채소 등 재료별 영양성분 확인이 어렵고 끓이고 졸이는 등 조리법에 따라 염분 농도에 차이가 발생한다. 완전히 제조된 식품과 달리 정확한 나트륨 표기가 어려운 이유다.

11일 식약처에 따르면 밀키트에 9가지 영양성분을 표시하도록 하는 방안이 추진될 예정이다. 산업계와 학계, 소비자단체 등으로부터 청취한 의견을 바탕으로 올해 말에서 내년 초까지 관련 개정안을 입법 예고할 예정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밀키트 영양성분 표기가 수차례 난항을 겪은 이유는 규정하기 어려운 영양성분 표기 기준 때문”이라며 “포장재 필수 표기 재료 등에 대한 정확한 지침이 마련돼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밀키트는 코로나19 당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외출이 줄어든 가정 시장에서 호황을 이뤘다.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밀키트 시장 규모는 2021년 2587억원 수준으로 전년 대비 38% 이상 급성장했다. 2022년에는 3400억원을 기록했으며 엔데믹 전환 시점인 올해 43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밀키트 시장 성장의 주된 이유로는 ▲품목 다양화로 소비자 선택 폭이 늘어남 ▲1인·맞벌이 가구 증가로 간편 식품에 대한 선호도 증가 ▲고물가 속 재료비 절약을 위해 구매 증가 등이 있다.

밀키트 시장 성장세가 상향 곡선을 그리는 가운데 발목을 잡은 것은 소비 흐름의 변화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인 당 하루 권장 나트륨 섭취량을 2000mg으로 정의했다. 소비자 사이에서도 고혈압·심혈관질환을 비롯해 성인병의 위험을 높이는 나트륨 과다 섭취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고 있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건강을 위해 소비자들이 영양성분 함량을 확인하는 등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 문화가 밀키트 영양성분 표기의 필요성을 높인 주된 이유”라고 말했다. 

소비자시민모임은 지난해 5월 지정검사기관을 통해 밀키트의 나트륨 과다 함유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소비자시민모임이 선정한 제품은 부대찌개 10개, 밀푀유나베 8개, 로제파스타 7개 등 25개다. 소비자 선호가 높은 제품이 기준이 됐다. 영양성분 함량, 재료 구성, 표시 사항 및 안전성 등을 분석한 결과 부대찌개 4종에서 기준치 이상의 나트륨이 검출됐다. 소비자시민모임 관계자는 “영양 표시가 되어 있지 않은 제품은 소비자들의 건강 관리에 어려움을 준다”며 “나트륨과 포화지방은 소스 조절과 야채를 추가로 넣어 줄일 수 있다 하더라도, 이를 안내하는 문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밀키트 나트륨 함량 표시 의무화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밀키트 나트륨 함량 표시 의무화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3월 중순 녹색소비자연대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주최한 국회토론회에서는 밀키트 영양 표기에 대한 소비자의 권리와 불투명한 밀키트 영양성분 표기 지침이 다시 한번 도마로 올랐다.

조선행 GCN녹색소비자연대 지속가능먹거리위원회 위원장은 “영양성분 표시 제품은 100개 가운데 21개뿐이었다”며 “홈페이지와 제품 포장 모두 표기한 제품은 16개뿐이며 55종 중 42개 제품이 표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조 위원장은 업체들의 자발적인 영양성분 표시 참여를 촉구했다.

제조업체 측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심선희 CJ제일제당 밀키트팀 팀장은 “제조사가 모든 것을 가공해 제공하는 제품이 아니라서 소비자의 조리 방법에 따라 영양성분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며 “밀키트에 제공되는 조리 가이드는 전문가의 검증을 통해 제공되고 있으며 영양성분은 조리 환경, 요리 숙련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토론회가 열린지 약 7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밀키트의 영양성분 표기에 대한 정확한 합의점이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먼저 칼을 빼든 쪽은 식약처와 강 의원이다. 당시 토론회를 주최한 강 의원은 밀키트 나트륨 함량 표시 의무화에 대한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따라 밀키트 영양성분 표기에 대한 기준 마련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개정안을 두고 강 의원 측과 밀키트 제조업체 모두 ‘계도기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아직 정확한 표기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으며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어쩔 수 없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강은미 의원실은 “나트륨 과다 섭취가 국민 건강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개정안의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며 “토론회 당시에도 제조업체의 고충에 대해 의견이 나왔듯이 해당 제도가 정착되기까지 단계적인 변화가 필수로 보인다”고 말했다.

밀키트 업체 관계자는 “영양성분 필수 제공은 소비자 권리이기에 반드시 정착돼야 한다는 점에서 이견이 없다”며 “다만 밀키트의 영양성분 표기 기준을 정확히 찾을 수 없어 많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고 밝혔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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