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다. 그는 아테네의 몰락기에 활동한 사람으로 궤변을 일삼은 당시의 소피스트들을 배격하고,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진리를 찾으려고 하였다.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 등을 가르쳐 많은 청년에게 큰 감화를 끼쳤으나, 도리어 청년을 부패시키고 국가의 여러 신을 믿지 않는다는 죄명으로 사형이 선고되어 결국 사망하였다.

이 위대한 스승 소크라테스가 충고한 너 자신을 알라는 말은 자신에 대해 먼저 성찰하고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하라는 의미이다.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라는 것이다. 자아정체성(ego identity)은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함축적·총체적·일관적인 믿음과 느낌인데, 에릭슨(Erikson)은 인간은 자신의 과거 노력과 현재의 문제점들, 그리고 미래의 기대 간 일관성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기본적으로 정체성을 추구하는 동물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아정체성이라는 개념은 수 세기 동안 철학자, 심리학자, 일반 사람들 모두를 사로잡은 심오하면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기도 하다. 이는 나는 누구인가? 나를 정의하는 것은 무엇이며, 점점 더 복잡해지는 세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아정체성을 어떻게 탐색할 수 있는가? 등등의 문제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자아정체성은 우리의 경험, 신념, 가치,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문화적 영향의 산물이다. 그래서 성별, 민족, 종교 및 기타 수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아마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정체성이 매우 개인적이며, 우리가 인생을 여행하면서 진화하는 내면의 대화라는 것이다. 자아정체성은 고정된 점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자아정체성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세계와 우리가 쌓은 경험에 끊임없이 적응하면서 발전한다. 그래서 단순한 사회보다는 다양성이 있는 사회에서 성장한 사람의 자아정체성은 개방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이러한 자아정체성을 알아내는 것은 힘들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수 있다. 살면서 우리는 좋은 일도 하지만 나쁜 일도 한다. 자랑스러울 때도 있지만 생각하기도 싫을 만큼 부끄러울 때도 있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종종 우리가 미리 정의된 카테고리와 라벨을 따르기를 기대하는데, 이러한 규격에 맞지 않는 사람들은 소외감을 느낄 수 있다. 자아정체성이 항상 외부 인식이나 사회적 기대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포용하려면 종종 용기와 회복력이 필요하다.

자기 발견의 여정에는 종종 성찰과 자기 수용이 포함된다. 우리는 우리의 선입견에 도전하는 정체성의 측면을 발견하거나 우리가 무시하고 싶은 취약점을 드러낼 수도 있다. 우리 자신의 이러한 부분을 포용하는 것은 우리 자신 전체를 사랑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우면서 힘을 실어주는 동시에 우리를 불안하게 할 수도 있다. 서로 연결된 세상에서 자아정체성은 개인을 넘어 확장된다. 이는 우리의 관계, 공동체, 사회 전반을 형성하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 다양한 정체성과 경험의 풍부함을 축하할 때 우리는 공감과 이해를 키워준다. 반대로, 엄격한 정의와 명칭을 고집하면 분열과 차별이 지속할 위험이 있다.

우리는 모든 위정자가 대한민국을 발전시키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며 살아왔다.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장관과 국회의원도 모두 국가의 발전을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를 이루겠다고 호언장담한다. 그런데 발전이란 현재보다 나은 상태를 만들겠다는 의미로, 발전을 운운하려면 현재 상황을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들의 현실 인식엔 너무나 먼 거리감이 있다. 한쪽은 친일파 척결을 강조하고 한쪽은 좌파의 척결을 부르짖는다. 한쪽은 독립군에 사상의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고 한쪽은 독립운동만 하면 사상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초대 대통령의 피난은 비난하면서 북한 초대 주석의 피난에 대해선 아무런 말을 하지 않는다.

누군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국민을 내버려 두고 혼자 도망간 사람이라고 말하기에, 만약 그가 도피하지 않고 서울에 있다 잡혔으면 대한민국은 사라졌고 지금 우리는 북한 사람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하였더니 그건 싫다고 답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또한, 독립군은 다양한 사상을 지닌 사람들이다. 그러나 독립군은 끊임없이 한국의 독립을 주장하고 이를 위해 싸웠다. 그들이 없었다면 일부 인사의 힘만으로 과연 한국이 독립할 수 있었을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모든 식민지가 다 독립하였던 것은 아니란 사실도 받아들여야 한다. 비난 이전에 당시 상황을 그대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역시 우리나라의 현실이었기 때문이다. 자아정체성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현실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발전할 토대를 발견할 수 있고 소망하는 발전이 현실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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