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서기 물류센터 현장 체험…휴식 15분 vs 1시간
건설현장 근로자 “여기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

[편집자 주] ESG가 화두다. 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 많은 기업이 ESG 경영을 강조한다. 여기서 기업 본연의 의무를 다시 보게 된다. 바로 근로자의 권리다. 우리 경제가 성장한 만큼 근로 현장도 개선됐을까. <뉴스워치>가 직접 찾았다. 기자가 체험한 현장은 어땠는지, 뭘 얘기해야 하는지를 깊숙이 들여다본다.

혹서기 휴식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근로자들이 새벽녘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정호 기자
혹서기 휴식을 요구하는 피켓을 든 근로자들이 새벽녘까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진=정호 기자

[뉴스워치= 정호 기자] 몸이 녹는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싶다. 올여름도 역대급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가만히 있어도 젖은 셔츠가 몸에 달라붙을 정도다. 새벽녘에 도착하는 택배를 나르는 쿠팡 물류센터와 쇳덩이를 조립하고 해체하기 바쁜 건물 공사 현장도 마찬가지다. 두 곳 모두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기에 안전을 강조한다.

안전보건공단은 열사병 위험이 높은 체감온도 33℃ 이상 폭염 상황에서는 노사가 협의해 매시간 10~15분 휴식을 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두 현장 모두 별다른 냉방 시설 없이 육체노동을 해야 한다. 혹서기 권고 사항이 필요한 이유다.

쿠팡 물류센터 컨베이어 벨트에서는 끊임없이 택배가 쏟아진다. 1차 검수를 거친 물품을 지역명이 적힌 파란 박스 안에 채워 넣는다. 숨 가쁘게 몸을 움직여도 쉬는 시간은 15분뿐이다. 건물 밖으로 나가 담배를 피우기도 빠듯한 시간이다. 식사시간 1시간 10분을 제외하면 약 9시간 동안 일하면서 갖는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무더위를 식힐 수 있는 것은 얼린 생수 한 통뿐이다.

뙤약볕 건설 현장에서는 건물 외곽에 고정해 놓은 쇠파이프를 분리한다. 3층 높이 난관에 발을 대고 해체된 쇠파이프를 윗사람으로부터 받아 아랫사람에게 내려준다. 어깨가 아파 통증이 느껴질 때쯤 1층으로 내려가 인부들과 가벼운 농담을 주고받는다. 아이스박스에 담긴 캔 음료를 마셨다. 11시 30분 점심시간까지 2번 휴식시간을 가졌다. 점심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8시간 중 7시간을 일했다.

정해진 라인으로 이동하는 노동자들. 사진=정호 기자
정해진 라인으로 이동하는 노동자들. 사진=정호 기자

노동의 대가로 입금된 일당은 각각 약 10만원, 16만원 사이다. 임금 격차가 적지 않다. 두 현장에서 체감한 노동 강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 적절한 휴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음료수 경우 쿠팡에서는 자판기에 400원을 넣어 뽑아 마셔야 했다. 건설 현장에서는 수시로 음료와 물이 제공됐다.

건설 현장보다 긴 노동시간, 적은 휴식, 그리고 임금 차이가 쿠팡 노동자를 물류센터에서 떠나게 하는 셈이다.

7년간 시스템비계를 설치해 온 숙련공 윤모씨(35세)는 “일감이 없을 때 쿠팡에 나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며 “그때마다 차라리 현장이 그립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은다”고 말했다. 1년 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쿠팡에서 일했던 이모씨(36세)는 “부산 쿠팡 허브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밥맛도 없고 쉬는 시간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려면 5~10분이 훅 날아간다”고 말했다.

“시간 당 10분 휴식” 왜 외쳤나

유튜브에 나오는 쿠팡 광고는 늦은 나이에 취업한 한 근로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업무 강도에 대한 설명, 잘 돼 있는 휴게 공간, 맛있는 밥이 강조된다. 광고가 사실인지 인천 한 물류센터에서 직접 업무를 체험해 봤다.

쿠팡 물류센터 업무는 어플리케이션 ‘쿠펀치’를 통해 인근 센터의 주·야간 근무를 신청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허브센터인 쿠팡 풀필먼트센터가 46개, 간선센터인 쿠팡캠프가 200개에 달한다. 센터마다 업무 강도와 식사 품질, 근무 시간이 다르다.

허브센터 10시간 업무를 기준으로 오전 근무는 9만6000원, 오후 근무는 11만5000원 정도를 받는다. 시급으로 따지면 약 1만700원, 1만2800원이다. 고깃집 아르바이트생이 받는 시급 1만원에서~ 1만4000원과 비교했을 때 차이가 크지 않다.

첫 근무를 하던 날 오후 5시까지 교회 앞에서 셔틀 버스를 기다렸다. 중년의 남성부터 주부, 대학생 등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이 이내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30~40분 정도 고속도로를 달려 도착한 센터 앞에서는 ‘쿠팡은 폭염 대책을 로켓 배송하라’는 피켓을 든 근로자들이 혹서기 대책을 요구하고 있었다.

센터에 들어서면 쿠펀치 앱을 통해 업무를 확인하고 신분증을 조회한 후 사물함 열쇠를 받는다. 이 열쇠로 휴대폰과 담배, 화장품 등 개인 물품을 보관하고 현장으로 이동한다.

첫날은 안전 교육과 도난 및 성범죄 예방 교육을 받았다. 교육이 마무리되자 바로 현장에 배치됐다. 중앙에서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물품을 분류하는 업무를 맡았다. 무더위에 가만히 있어도 온몸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다른 근무자가 건넨 택배를 지역이 적힌 파란 박스에 채워 넣었다. 택배마다 무게와 지역이 제각각이다. 에어컨도 없는 환경에서 일하느라 수시로 목이 탔다. 무더위에 늦은 시간 일하다 보니 약간의 현기증도 느꼈다. 간이 휴게소에 마련된 꽁꽁 얼른 얼음물도 한 두시간 지나니 녹아내렸다.

센터 입구에 걸린 물, 그늘(바람), 휴식으로 온열 질환을 예방하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사진=정호 기자
센터 입구에 걸린 물, 그늘(바람), 휴식으로 온열 질환을 예방하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사진=정호 기자

3시간가량 정신없이 물건을 분류하다 보니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인원이 많아 3교대로 돌아가면서 배식을 받는다고 한다. 식단은 당면만 들어간 잡채에 고기 없는 육개장, 어묵볶음, 김치, 깍두기, 그리고 밥이다. 이날 식당에서 처음으로 에어컨 바람을 맞았다. 센터 입구에서부터 물, 그늘(바람), 휴식으로 온열 질환을 예방하라는 현수막이 무색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끝내고 담배를 피울 동안 제대로 쉴 수 있는 시간은 20~30분 남짓이었다. 비좁은 통로를 지나 다시 현장에 복귀하는 데만 족히 10분이 걸렸다. 오후에 받은 휴식시간은 15분 정도다. 다른 근무자 2명은 바로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그게 오후 6시부터 새벽 4시까지 받은 유일한 휴식시간이다.

쿠팡 물류센터에서 지급된 식사. 사진=정호 기자
쿠팡 물류센터에서 지급된 식사. 사진=정호 기자

두 번째로 쿠팡 현장을 찾은 건 9월 하순 경이다. 혹서기가 지나면서 지급되던 얼음물이 사라졌다. 추석을 앞두고 있었기에 프로모션으로 16만원을 웃도는 일당을 받았다. 휴식시간은 없었다. 물류센터 내에서는 ‘TBM(도구상자집회)’을 통해 잘못 분류된 물류량과 사고상황이 전파됐다. 이날 담당하게 된 업무는 토트(물건적재함)를 펴서 컨베이어 벨트에 올리는 일이었다.

접힌 토트는 180~200개씩 랩으로 묶여 있었다. 토트는 손목 반동을 이용해 아래를 향하게 하면 금방 펼 수 있었다. 이날 약 2500여개를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놓았다.

토트는 다양한 구간에 있는 근무자에게 전달됐다. 근무자들은 이를 지역별로 분류했다. 이 토트 안을 ‘소팅봇’이 물건을 쉴새 없이 나르며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토트가 일정 무게로 채워지면 근로자들이 컨베이어 벨트 아래로 옮겼다. 적재 무게가 무거워 컨베이어 벨트가 멈추는 경우도 종종 생겼다.

다른 근로자들은 2~3개월 정도 일한 경험자라고 했다.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한 주부는 “그 동안 선풍기 하나만으로 더위를 날렸는데 계속 움직이느라 제대로 시원한 바람을 쐬지 못했다”며 “여름철에 현기증까지 생길 정도로 일했고 끝나면 항상 옷에 소금기가 묻어있었다”고 했다. 20대 중반 청년은 “물류센터 중에서 여기가 최악이다. 다른 곳에서도 2년 간 있었지만 식사도 그렇고, 환경도 그렇고 너무 안 좋다”고 했다.

온돌방에서 누워 쉬는 근로자들. 사진=정호 기자
온돌방에서 누워 쉬는 근로자들. 사진=정호 기자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던 시간은 12시 40분 점심을 먹을 때뿐이다. 식사 메뉴는 단조로웠다. 추석을 앞두고 식당에서는 스크래치를 긁어 요구르트와 커피 쿠폰 등을 나눠주고 있었다.

식사를 마친 근로자들은 온돌방이나 철제 의자에 누워 쉬기도 했다. 보관함이 겹겹이 쌓인 의자에 누워 쉬는 이들도 있었다. 휴대폰을 바라보는 얼굴에는 피곤기가 역력했다. 노란조끼를 입은 근로자에게 계약직에 대해 물었다.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은 “계약직은 일용직보다 안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쿠팡의 계약직 전환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더욱이 이날부터 혹서기와 달리 오후 휴식시간조차 사라졌다.

쿠팡 떠난 자들 “현장이 그리웠다”

“쿠팡보다 노가다가 더 재밌고 일할 맛이 난다. 일만 시키고 휴식시간도 없다. 그냥 여기서 기술 배우면서 좀더 나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는 게 낫다.” 시스템 비계를 설치하는 40대 기술자 김모씨의 말이다.

야외에서 일하는 현장 노동자들에게는 쉴 틈이 없다. 천막을 해체하고 쇳덩이를 나르고 걸림쇠를 제거한다. 비계 토대를 세울 때는 계측을 해 수평을 맞추고 토대를 다져나간다. 업무 강도는 옮기는 자재부터 무겁고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하기에 물류센터보다 힘들다. 하지만 쿠팡을 경험하고 온 기술공들은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쉴 때 쉬고, 한 만큼 더 벌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새벽 6시 현장에 도착했다. 아침부터 ‘함바집’에서 근로자들이 밥을 챙겨 먹었다. 각 건설사무소에서 금액을 대신 지불한다. 젓갈, 된장국, 김, 고추 장아찌 등 메뉴가 간소하다.

7년간 비계를 설치·해체를 해 온 윤모씨 소개로 일용직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건축이 끝난 상가 건물 외벽에 비계를 해체하는 일이다. 업무를 시작하기 전 안전 교육을 받았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다수 앉아 있었다. 한국말을 제대로 못하는 외국인들이었다. 국적도 중국, 네팔, 몽골 등 가지각색이다. 안전 교육 중 한국말이 통하지 않자 교육자는 외국인 노동자를 이끄는 팀장을 찾았다.

비계 해체 일용직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 온 현장.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 사진=정호 기자
비계 해체 일용직을 체험하기 위해 찾아 온 현장.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다. 사진=정호 기자

이날 맡은 일은 해체된 자재를 받아 적재하는 일이다. 2.5~15kg 되는 자재들은 길이가 3.6m 가량 돼 초보자 입장에서는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반면 경력자들은 요령 있게 2~3개씩 옮겼다. 1시간 30분 정도 바짝 일하고 있는데 용달차가 도착했다. 싣고 온 아이스박스 안에 음료수와 생수가 들어 있었다.

근로자들은 음료로 목을 축이고 담배를 물었다. 작업 진행 상황과 업무 구역을 분배하고 10~15분 가량의 휴식을 마쳤다. 이후 1시간 정도 더 일하고 다시 휴식에 들어갔다. 윤씨는 “요즘 건설 현장에서는 급하게 일을 시키지 않는다”며 “작업을 많이 하는 것보다 효율적으로 안전하게 일하는 것이 최고다”고 설명했다.

쿠팡 근로 경험이 있는 40대 김모씨는 “쿠팡보다 노가다가 몸은 힘들어도 쉴 때 쉬고 일할 때 바싹 일해서 할만하다”며 “개인차가 있겠지만 쿠팡을 경험한 근로자들 중에는 쿠팡보다 현장이 낫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함바집에서 점심 식사 메뉴로 냉국, 고기, 돈까스 등이 나왔다. 쿠팡에서 먹은 점심보다 반찬 수와 메뉴가 다채로웠다. 일이 고되고 업무 난이도가 있어 현장에서는 고봉밥을 쌓은 근로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차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공사장 한편에 박스를 피고 쉬었다. 낮잠을 자거나 휴대폰을 보는 근로자가 대다수였다.

점심시간 이후로도 중간에 2~3번은 쉬면서 일을 마무리했다. 전날 비가 온 탓에 오후 업무가 끝나자 현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의 복장이 노랗게 변해 있었다. 한 근로자는 “원래 첫날에는 숟가락 들 힘이 남아 있으면 일 열심히 안 한거야”라고 말했다.

쿠팡과 근로자의 휴게시간 전쟁

쿠팡은 휴게시간은 여전히 논란이다. 지난 8월 초 공공운수노조 전국물류센터지부 쿠팡물류센터지회가 파업을 했다. 쿠팡노조가 파업에 돌입한 것은 2021년 조합 설립 이후 처음이다. 다만 참여율은 저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쿠팡의 근무 환경은 지역마다 다르다고 한다. 좋은 시설을 갖춘 곳은 상대적으로 사람이 몰릴 가능성이 크다. 기자는 집 근처 물류센터로 신청했지만, 그곳이 아닌 자리가 남는 곳으로 안내를 받았다. 쿠팡이 밝혀온 국소 에어컨, 이동식 에어컨, 대형 실링펜, 선풍기 등은 센터 환경에 따라 다를 수도 있는 셈이다.

근로자들끼리 10분간 휴식을 하자는 리본이 부착된 사물함.사진=정호 기자
근로자들끼리 10분간 휴식을 하자는 리본이 부착된 사물함. 사진=정호 기자

쿠팡은 필요한 규정 외 휴게시간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혀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같은 노동력을 제공하는 일용직이라는 공통점에서 공사 현장 대비 25% 정도의 휴식시간만 주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적은 임금, 많은 근무 시간, 부족한 복지가 근로자들의 파업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로켓배송을 통해 쿠팡은 4분기 연속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30대 기술공 심모씨는 “쿠팡에서 다른 건 다 괜찮았는데 쉬는 시간이 없다는 게 매우 힘들었다”며 “거기서 일하는 데 내가 로켓부품인 것처럼 사용된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