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74곳 중 30곳 여성 등기이사 0명
남녀 임금 격차 여전…갈 길 먼 ESG 경영

금융권의 남녀 간 임원 비율 및 임금 격차가 여전해 두터운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금융권의 남녀 간 임원 비율 및 임금 격차가 여전해 두터운 유리천장이 존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금융권 유리천장이 여전히 견고하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에 대한 목소리는 늘 강하지만 정작 임원진 집계부터 임금 격차까지, 남성 위주인 보수 업권의 벽은 두텁기만 하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영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 및 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에서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자산 2조원 이상 은행·증권사·생명보험사·손해보험사 74개사 등기임원 461명 중 여성 등기이사는 11%인 52명에 불과했다.

업권별로 봤을 때도 은행 19개사의 132명 중 여성은 14명에 그쳤고, 증권사 29개사 168명 중에서 15명, 생보사 20개사 124명 중 17명, 손보사 6개사 37명 중 6명 등 그 수가 현저히 적었다. 

여성 등기이사가 한 명도 없는 금융사도 30곳이나 됐다. 은행권에선 우리은행을 비롯한 대구·부산·광주·전북·경남·산업·케이뱅크 등 8개사에 여성 등기이사가 0명이었고, 증권사는 유안타·교보·하이투자·신영·유진투자·노무라·이베스트·IBK·DB금융투자·부국·BNK투자·한양·JP모간·케이프투자·골드만삭스 등 15개사로 나타났다. ABL·DB·DGB·흥국·KDB·하나 등 생보사 6개사, 손보사 중엔 KB손해보험 한 곳에서 여성 등기이사를 찾아볼 수 없었다.

이같은 실태에 윤 의원은 "등기이사가 특정 성별로 편중될 경우 편향적인 의사결정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ESG 경영을 선도하는 금융회사들이 다양성과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여성 등기이사 영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부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금감원 5급 조사역은 여성이 지난 5년간 남성보다 훨씬 많았다. 그러나 고위직으로 오를수록 여성 숫자가 급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8월 현황만 봐도 남성 4급 380명 대비 여성 4급 210명, 남성 3급 339명 대비 여성 3급 157명, 남성 2급 238명 대비 여성 2급 22명 등이다. 1급의 경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1명에서 올해 겨우 2명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5급 신입 조사역은 여성 수가 훨씬 많았지만 4급 승진자부터는 급수가 오를수록 남성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금융권 유리천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3월 집계에서도 은행권 중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 등 6개 은행의 여성 부행장은 5명으로 은행권 전체 부행장의 12% 정도에 그쳤다. 2021년에는 더 적었다. 당시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곳 은행의 전체 임원수 117명 중 여성임원은 8명으로 6.83%에 머물렀다. 총 33명의 등기임원 중 여성은 2명에 그쳤고 84명의 미등기임원 가운데 여성은 6명뿐이었다.

임원 자리가 아니더라도 채용 현황부터 성비 격차가 심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난 3월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카드·저축은행·증권·보험·공공금융·상호금융 54곳을 대상으로 여성 채용 현황 등을 조사한 결과 지난해 말 기준 이들 사업장에 정규직 여성 비율은 41.6%(전체 1479명 중 616명), 비정규직 여성 비율은 65.1%(전체 1317명 중 858명)로 나타났다.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에서 여성 비율이 높았다. 최종학력이 고졸인 정규직 및 비정규직 신입사원 203명 중에서도 여성이 171명으로 84.2%를 차지했으며, 초대졸 이상의 학력에서는 정규직 여성 비율이 40%, 비정규직은 62.9%였다. 이를 두고 노조는 "성차별적인 관행이 여성 노동자들을 질 낮은 일자리로 내몰고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여성의날' 당시 여성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연합뉴스
'세계 여성의날' 당시 여성차별의 상징인 유리천장을 깨고 나가자는 의미로 투명한 천을 찢는 퍼포먼스가 진행됐다. 사진=연합뉴스

남녀 간 임금 격차도 두드러진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분기 분기보고서에 따르면 손보사의 남여 임금 격차가 3200만원으로 가장 컸으며 8개 전업 카드사 임금 격차 2200만원, 생보사 1900만원, 4대 시중은행 연봉 격차 1750만원 등 순으로 나타났다.

업계에서는 여성이 다수를 차지하는 텔레마케팅 등 직군 차이나 학력별 채용에 따라 연봉 차이가 났다고 설명한다. 이에 더해 금융권의 경우 여성 임원이 적은 점 등 승진 구간에서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점도 남녀 간 연봉 격차를 더 크게 벌린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 금융권 내 여성임원은 그 수가 매우 적은데다 금융권 CEO도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은행권에선 강신숙 수협은행장이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 뒤를 이은 역대 세 번째 여성 은행장이고, 보험권에서는 조지은 라이나생명 대표가 역대 두 번째 보험사 여성 대표다.

KB국민은행 최초 여성 임원이자 역대 두번째 여성 부행장이란 이력을 가진 박정림 KB증권 대표는 국내 증권사 최초 여성 CEO다. 카드 업권에서는 지금까지 여성 대표가 한 명도 없었다. 올해 1분기 말 4대 은행 기준 전체 임원 132명 중 여성은 단 10명으로 2% 수준이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권이 거듭 강조하고 내세우는 경영철학 중 하나는 ESG다. 여기에는 분명 지배구조 개선이 들어 있다. 남성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성별 다양성을 확보해 더욱 다양한 시각과 목소리가 경영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ESG 중 지배구조의 'G'는 갈 길이 먼 상황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기는 하나 금융권이 보수적이고 남성 위주 문화가 있는 건 사실"이라면서 "ESG 경영도 지배구조는 환경이나 사회부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데다 남성 중심 인력 구성이 오랜시간 이어져 왔기에 여성 임원을 늘려가는 건 보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성비보다는 철저한 능력 위주의 승진과 임원 선별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또다른 관계자는 "조직 내 성인지 감수성 및 경영 다각화 차원에서 여성임원의 비율을 늘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면서도 "여성의 경우 결혼 및 육아 등 경력 단절이 적지 않아 임원급으로 남는 여성인력이 적고, 그렇다 보니 역량에 있어서도 남성인사가 능력이나 경력 면에서 더 적절한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영상 필요한 인재나 적임자가 유리천장에 막혀 적합한 자리에 오르지 못하는 일은 당연히 없어야겠지만 반대로 수치상 구색을 맞추기 위한 성비 구성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경영진의 다양성은 조직의 시야를 넓히고 내실을 다지는 기틀이 된다. 의사결정 과정에서도 보다 합리적 선택이 가능하다. 보험연구원의 한상용 연구위원이 2021년 '이사회 다양성 추구와 금융회사 시사점' 리포트를 통해 내놓은 자료에서도 "이사회에서 여성 이사 비중 증가는 이사회에 다양한 관점 및 경험을 제공해 성과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온다"면서 "여성 이사의 수적 증가에 국한되지 않고 질적 다양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결과가 도출됐다. 

법으로도 자본시장법이 지난해 8월 개정되면서 '이사회의 성별 구성에 관한 특례' 조항을 통해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사는 이사회의 이사를 특정 성(性)으로 구성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실효성에 있어서는 의문부호가 잇따른다. 해당 법안 대상이 주권상장법인으로 한정돼 있어 금융지주사 외 계열사는 포함되지 않아서다.

지난해 열린 '제5회 신한 쉬어로즈 콘퍼런스' 행사. '쉬어로즈'는 신한금융 여성인재 육성프로그램이다. 사진=신한금융그룹
지난해 열린 '제5회 신한 쉬어로즈 콘퍼런스' 행사. '쉬어로즈'는 신한금융 여성인재 육성프로그램이다. 사진=신한금융그룹

이에 따라 자발적인 변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대표적인 게 금융지주사들이다. KB금융그룹, 신한금융그룹, 하나금융그룹 등은 모두 여성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2018년 금융권 최초로 등장한 신한금융의 여성인재 육성프로그램 '신한 쉬어로즈(SHeroes)'는 올해로 6기를 맞았다. 여성을 뜻하는 'She'와 영웅을 뜻하는 'Hero'의 합성어로 신한의 우수 여성인재를 그룹 내 여성 인력의 롤 모델이자 여성 영웅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신한금융 최초의 여성 CEO인 조경선 신한DS 사장이 신한 쉬어로즈 1기 출신이다. 

특히 이 프로그램은 CEO가 직접 주관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5기까지 총 220명의 여성 리더를 육성했으며, 부지점장급 4년차 여성 관리자를 대상으로 쉬어로즈 전 단계격인 '신한 쉬어로즈 블루'라는 여성 리더 육성프로그램도 진행 중이다.

KB금융은 여성 인재 및 리더 육성을 위한 '위스타(WE STAR·Womans Empowerment+STAR)' 제도를 운영하고 있으며, 여성인재들의 올바른 역할 모델 등을 위한 '위스타 멘토링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신임 여성 부점장 58명과 그룹 임원 62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윤종규 회장이 여성임원이 나오기 위해서는 중간 관리자부터 커리어 관리를 잘 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면서 여성인력 육성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았다. KB금융은 2025년까지 '본부 부장급 20%, 팀장급 30%, 팀원급 40%'를 여성 인재로 확보하겠다는 구체적인 목표도 세운 상태다.

하나금융 역시 함영주 회장의 진두지휘 아래 여성리더 육성을 위한 '하나 웨이브스(Waves)'를 운영하고 있다. 2021년 시작된 '하나 웨이브스'는 'Women‘s Actions, Voices, Emotions'의 약자로 여성의 행동, 목소리, 감성으로 혁신의 파도를 일으킨다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룹 내 여성 부점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한다.

현재까지 70여명의 여성리더를 배출했고 6명이 임원으로 선임됐다. 지난 7월 3기가 출범했는데 이 자리에서 함 회장은 "섬세함, 공감, 사고의 유연성과 소통 능력은 여성으로서 더 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여성인재의 장점을 통해 그룹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같은 변화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여성 임원이 단 한명도 없는 곳도 적지 않은 만큼 제도적 뒷받침과 함께 자율적 노력도 진행돼야 하는 상황이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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