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 동북아의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동북공정에 관한 관심도 깊어지고 있다. '동북변강역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라는 길고 긴 단어의 줄임말인 동북공정(東北工程)은 '동북 변방의 역사와 현재 상황 계열의 연구 사업'이라는 뜻이다. 중국이 동북부 만주 지역의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국가사업으로 추진한 연구 계획을 가리키는 말이다. 

만주 지역에는 고조선, 고구려, 말갈, 선비, 발해, 거란(契丹), 여진(女眞), 몽고(蒙古), 만주족(滿洲族) 등 여러 종족이 살았으며 이들은 다양한 사회와 문화적 공동체를 이루었다. 1625년 청나라 태조 누르하치는 수도를 랴오양(遼陽)에서 선양(瀋陽)으로 옮겼고, 1644년에 베이징을 수도로 정한 뒤에 선양을 배도(陪都)로 정하였다. 그리고 1657년에는 만주 지역에 봉천부(奉天府)를 두었다. 1677년 청나라는 그들의 발상지를 보호한다는 명분 아래 백두산을 중심으로 압록강 연안과 두만강 북쪽에 걸친 1000여 리 되는 지역에 봉금령(封禁令)을 선포하였다. 이 봉금 정책으로 만주 지역으로의 이주는 금지되었고, 이곳은 사람들이 거의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한 조선 왕조도 이후 국경을 넘어 만주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엄금하였고, 1710년에 백두산정계비 설치로 양국의 국경이 확정된 후 국경을 넘는 일은 더욱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18세기에 이르러 산둥 지역의 중국인들이 북만주의 변경지역에 몰려들었고 19세기에는 조선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서 정착하였다. 1860년대에 변경지역에 닥친 전염병과 자연재해는 사람들의 월경으로 이어졌다. 1860년대부터 청나라의 봉금령이 완화되었으며 이주민의 입주와 개간을 허용하는 정책이 추진되었고, 1880년에 이르러 결국 봉금령은 해지되었다. 게다가 러시아가 동북아시아로 진출하면서 국경 문제를 겪은 청나라는 이민을 통하여 변경을 개척하고 지역을 통제하는 이민실변정책(移民實邊政策)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1882년 조선의 갑신정변 이후 조선에 청나라의 내정간섭이 심해졌고, 러시아와 조선 간의 관계가 긴밀해짐에 따라 이 변경의 개척지는 분쟁지로 변하였다. 그러다 1931년 9월에 만주사변(滿洲事變)을 일으킨 일본 관동군은 1932년 3월에 만주 일대에 괴뢰국가인 만주국을 수립하였다. 

중국은 2001년 6월에 동북공정에 대한 연구를 추진하기로 하고, 8개월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이듬해 2월 18일 정부의 승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동북공정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2006년까지 5년을 기한으로 진행되었으나, 자신의 목적 달성을 위한 역사 왜곡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역사 왜곡의 궁극적 목적은 중국의 전략 지역인 동북지역, 특히 고구려·발해 등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들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영토분쟁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 있다. 그러나 이들 3국은 엄연한 한국사의 실체이고, 고구려나 발해는 만주와 한반도를 동시에 영토로 삼았던 국가들로 고구려는 신라에 합병되었고 발해는 '고구려 계승'을 정체성으로 삼았던 국가이다.

한국과 중국은 육지로 이어진 탓에 많은 다툼이 있었다. 중국의 한나라가 설치한 한사군은 고구려에 의해 차례로 멸망하고 수나라는 고구려를 침공하려 수차례 노력하였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고구려는 독립국으로 당나라에 대해 결사 항전하여 자신의 영토를 지켰고, 고구려의 멸망 후에도 당나라는 신라의 견제로 북방 영토 일부를 확보하였을 뿐이었다. 사실 중국과 한국의 역사상 투쟁에서 한국이 패배한 적은 거의 없다. 중국 본토를 점령한, 몽골과 만주를 기반으로 한 원나라와 청나라에 항복하였을 뿐이다. 조선 시대에 사대주의 정책을 폈지만, 이 정책 자체가 조선이 독립국임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사실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도 중국의 역사 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2004년 3월 교육부 산하의 고구려연구재단을 발족하였고, 2006년 9월 동북아역사재단이 출범하여 이를 흡수해 통합하였다.

국경과 역사적 유산이 계속해서 국제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세상에서 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나름대로 좋은 동기가 담겨있다고 생각한다. 과거를 밝히고 영토분쟁, 국경 간 협력, 인종 다양성과 같은 현대 문제에 대한 귀중한 관점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를 조명하는 동시에 세계에서 중국의 역할에 대한 보다 포괄적인 이해를 안내하는 등대 역할을 하였으면 한다. 미래를 내다볼 때, 이 프로젝트에서 얻은 교훈은 중국의 북동부 국경 지역에 대한 더 많은 정보와 미묘한 논의에 이바지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지역에는 만주족, 조선족, 러시아인 등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집단 간의 역사적 상호 작용과 동화의 과정을 탐구하면 현대 민족 관계와 중국의 문화 보존 노력에 대한 보다 이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의 노력에 다른 국가들이 의심과 불만을 품는다면 그 목적은 달성될 수 없다. 진실이라는 토대 위에야 중국이 품었으리라 생각되는 좋은 동기의 실현도 가능할 것이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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