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최근 교사들의 극단적 선택이 계속돼 사회적 파문이 일고 있다. 지난 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녹색병원은 8월 16일부터 23일까지 전국 유·초·중·고 교사 3505명(여 2911명, 남 587명)을 대상으로 벌인 직무 관련 마음 건강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교사 24.9%가 경도 우울 증상을, 38.3%는 심한 우울 증상을 보였다고 한다. 일반인보다 4배가량 높은 수치라고도 하였다. 극단적 선택을 생각해 본 교사들의 비율도 일반인보다 훨씬 높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이 16%였고, 4.5%는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런데 학생의 우울증도 최근 5년 사이 배 가까이 늘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초중고생은 5년간 822명이나 되었다. 지난 7일 모 의원이 교육부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우울증 진료를 받은 6~11세는 2018년 1849명에서 2022년 3541명으로 91.5% 늘었고, 15~17세는 1만5605명에서 2만4588명으로 57.6%, 12~14세는 5893명에서 9257명으로 57.1% 각각 증가했다. 6~17세 아동·청소년 전체를 보면 5년 사이 우울증 진료 인원이 60.1% 늘었다. 학생들의 마음 건강 상태도 많이 안 좋다.

교육과정은 나이에 맞춰 학생이 따라갈 수 있도록 편성되지만, 대학 입시를 미리 준비하기 위해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받아야 하는 탓에 교육과정의 설계는 망가졌고 자발적 학습 참여라기보다는 부모 의지에 따른 교육이라 학생들이 받는 부담감은 더욱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학생은 학업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에 쉽게 빠질 수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BBC 등 외신은 한국의 교권 실태를 분석하면서 초경쟁 사회가 교권 추락의 원인이라고 지적하였다. 우리 사회가 학생들에게 강요한 지나친 경쟁은 교권 추락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불행과 우울을 증가시켰다. 지나친 경쟁에 어린 시절의 추억과 행복이 사라진 학교는 배움의 기능을 사교육에 빼앗긴 채 학부모의 지나칠 정도의 관심 대상으로 전락하였고, 교사와 숱한 마찰이 생겨나고 있다. 학교는 여전히 있으나 존경과 신뢰의 대상인 스승은 사라졌고 아이들을 담보로 한 의심과 불신의 대상인 교원만 남았다.

지금 교사나 학생이나 모두 우울증이 늘고 있다. 교사들도 아이들도 그들의 마음 건강이 우려할만한 수준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이미 우려할 만한 수준에 와 있다는 이야기와 같다. 어른들은 대학의 우수학생 선발 편의만 생각하고 정작 학생의 행복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 대학도 엄연한 교육기관인데 자신들이 키울 생각은 하지 않고 고등학교까지 성적이 좋은 학생만 받아 안주하려 한다. 사회에서는 부의 세습이 당연시되고 있으며 빈부격차는 심해지고 있다. 경쟁은 치열하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미미하다.

그런데 세계가치관조사(WVS)에서 발표한, 한국인들은 노력만으론 성공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강하다는 설문 조사 결과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국 킹스칼리지 런던의 정책연구소가 세계 주요국 설문 조사를 거쳐 7일(현지시각) 발표한 보고서 '일에 대한 세계의 생각'을 보면 '열심히 일하면 결국 대체로 더 잘살게 된다'는 명제에 동의하는 한국인 응답자의 비율은 16%에 불과했다. 이는 이 항목에서 설문 조사 결과가 공개된 18개국 가운데 가장 낮은 수치였다. 이집트 61%, 중국 58%, 미국 55%, 필리핀·이란 각 54%, 인도네시아 53% 등이 긍정적이었고 캐나다 35%, 일본 29%, 독일 28%, 그리스 27%가 하위권이었는데 한국은 이들 국가보다도 최소 10%포인트 이상 낮은 비정상적인 수치로 최하위권에 놓여있었다.

운이 뒷받침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은 한국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나타났다. '일과 행운이 성공에 똑같이 중요하다'는 생각에 동의하는 이들이 70%로 18개 대상국 가운데 최고였다. 2위인 일본이 53%로 한국과 20%포인트 가까이 차이가 났다. WVS는 세계인의 사회, 정치, 경제, 종교, 문화적 가치관을 파악하는 연구로 1981년 시작된 이후 각 사회를 분석하는 자료로 학계에 널리 이용되고 있다. 이러한 조사결과는 한국인은 노력에 기반한 성공을 믿지 않고 한국은 부모에 의해, 학벌에 의해, 운에 의해 성공할 수 있는 나라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꿈과 희망이 없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우울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는 의미이다. 그래서 사교육에 힘을 쏟고 학습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공교육은 뒷전이다. 그래서 교권은 추락할 수밖에 없고 학생은 우울할 수밖에 없다.

지난 10일은 세계 자살 예방의 날이었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에만 7000명에 가까운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8.8% 늘었다. 40대에서 60대가 전체의 절반을 조금 넘었고, 50대가 다섯 명 가운데 1명꼴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세 이하 청소년층은 18%나 증가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 국가다.

분주한 도시와 고요한 시골, 우뚝 솟은 고층 건물의 웅장함과 구불구불한 언덕의 고요함 속에 우리나라를 휩쓸고 있는 소리 없는 전염병, 우울증이 존재하고 있다. 이 교활한 정신 건강 상태는 지리·사회적 지위 또는 나이를 기준으로 차별하지 않는다.

우울증에는 경계가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관통하고 있는 하나의 징표이다. 사회가 진정으로 번영하려면 우리는 이 조용한 전염병을 인식하고 협력하여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자원과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먼저, 학생과 교사에게 학교의 기능을 돌려주어야 한다. 중소기업을 강화하여 일자리를 만들고 대기업이나 공무원 이상의 대우를 보장해야 한다. 1980년대 초까지의 우리나라가 이랬었다. 1990년대 들어 대기업 대비 중소기업의 평균임금이 79.9%로 내려가더니 2014년엔 62%까지 떨어졌고 거기에 실업난이 겹쳐 오늘에 이르렀다. 이를 다시 되돌려 너무 과열된 우리 사회의 경쟁을 완화해야 한다. 우울증은 단지 개인의 투쟁이 아니다. 이는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하며, 더 탄력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나라 전체가 직면해야 하는 과제이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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