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家 ‘비운의 황태자’ 이맹희…아들 이재현, CJ 키워내
SK家 최영근-롯데家 신정열, 그룹 경영 거리둔 은둔 행보
LG家 구광모, 구본무 양자로 입적…장자 승계 원칙 유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회장의 장손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LG그룹 구본무 선대회장의 양자로 입적돼 장자 승계를 이어가고 있는 구광모 회장. 사진=각 사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회장의 장손 이재현 CJ그룹 회장과 LG그룹 구본무 선대회장의 양자로 입적돼 장자 승계를 이어가고 있는 구광모 회장. 사진=각 사

[뉴스워치= 소미연 기자] 국내 4대 그룹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장남’ 특혜는 없었다. 장자 상속 가풍을 철저하게 지켜온 LG家를 제외하면 삼성, SK, 롯데 창업주들은 직계라는 정통성보다 경영 능력을 높이 샀다.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과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은 후계자로 각각 삼남 이건희 선대회장, 차남 신동빈 회장을 낙점하며 장남 승계 전망을 깼다.

SK그룹의 전신 선경그룹을 이끈 최종건 창업회장은 동생 최종현 선대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최종현 회장의 별세 후 최종건 회장의 장남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이 유력한 후계자로 거론됐으나 바통은 최태원 회장에게 넘어갔다. 최윤원 전 회장이 “형제들 중 제일 뛰어나다”며 최태원 회장을 추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창업주의 장손들은 그룹 승계에서 거리가 멀어졌다.

삼성그룹의 장손은 이재현 CJ그룹 회장이다. CJ그룹은 삼성그룹 모태인 제일제당의 후신이다. 이재현 회장의 부친 이맹희 명예회장이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뒤 제일제당을 물려받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정설은 이재현 회장이 1985년 9월 제일제당에 입사하면서 더욱 무게가 실렸다. 제일제당은 이병철 창업회장 별세 후 삼성가 2세대 경영이 본격화되면서 계열분리에 돌입했다. 독립경영은 1993년 7월 시작됐다.

이재현 회장은 부친에게 씌어진 비운의 멍에를 견뎌내며 사업을 키워왔다. 제일제당의 이름을 CJ로 바꿔 국내 재계 순위 13위의 대기업으로 일궈낸 것이다. 상속 분쟁으로 얼굴을 붉혔던 삼성과 CJ 간 앙금도 털어냈다. 2020년 10월 이재현 회장이 이건희 선대회장 빈소를 조문하며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애정어린 애도의 말을 남겼고, 2022년 11월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이재현 회장의 모친 손복남 CJ그룹 고문 빈소를 친인척 중 가장 먼저 찾아 유족을 위로했다. 이재용 회장은 이건희 선대회장의 장남으로 이재현 회장과 사촌지간이다.

이재현 회장의 장손 타이틀은 이제 장남 이선호 CJ제일제당 경영리더로 옮겨지고 있다. 재계에선 이재현 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아 승계 시기를 앞당길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실제 이재현 회장은 승계를 위한 밑그림을 오래 전부터 그려왔다. 2010년 CJ파워캐스트, 2014년 CJ시스템즈 등 장남의 계열사 지분 확보에 공들였다. 두 계열사는 현 CJ올리브네트웍스로 합병돼 승계 지렛대 역할을 할 것으로 해석된다.

2020년 1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을 마친 뒤 직계가족들이 운구 행렬을 따르고 있다. 영정사진을 들고 행렬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들 신정열씨다. 사진=롯데
2020년 1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을 마친 뒤 직계가족들이 운구 행렬을 따르고 있다. 영정사진을 들고 행렬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들 신정열씨다. 사진=롯데

SK그룹의 장손은 최영근씨다. 최태원 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최윤원 전 SK케미칼 회장의 장남이다. 최영근씨도 부친처럼 기업 경영에는 욕심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뉴욕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하고, 패션 브랜드 베라왕 인턴십을 밟는 등 경영과 무관한 행보를 보였기 때문이다. 이후 2014년 SK디스커버리의 전신 SK케미칼에 입사, 2017년 SK디앤디 매니저 업무를 병행하며 입지를 넓혔으나 2019년 모든 직에서 물러났다. 그해 4월 변종 마약 상습 투약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자 퇴사한 것이다.

최영근씨는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2019년 12월 항소심 재판부는 과거 마약 전력이 없다는 점, 마약을 끊으려 노력하는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당시 그도 법정에서 “구속 기간에 반성했고 현재 상담 치료를 받고 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이 열심히 살겠다”고 선처를 호소했고, 실제 사건 이후 조용한 삶을 택했다. 그룹 측에서도 그에 관한 정보가 전무할 만큼 회사와도 거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간혹 지분 확보에 대한 소식은 전해졌다. 현재 최영근씨는 그룹 지주사인 SK㈜ 지분 0.19%, 또 다른 지주사 SK디스커버리 지분 4.21%를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2월에는 숙부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으로부터 경기도 가평군 소재 별장 토지 지분을 매입해 눈길을 끌었다. 해당 별장은 SK 오너 일가가 수십년 동안 공동 보유해왔으나, 최신원 전 회장의 매각으로 지분 절반을 최영근씨가 소유하게 됐다. 

롯데그룹의 장손은 신동주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장남 신정열씨다. 신정열씨는 2020년 1월 신격호 명예회장의 발인식 당시 영정사진을 들고 운구행렬을 이끌었다. 그룹의 후계자로 유력한 신유열 롯데케미칼 상무도 위패를 들고 그의 뒤를 따랐다. 장손으로서의 위상을 보여줬지만, 장례 전후로 언론에 노출된 일은 없었다. 경영 전면에 나설 가능성도 희박하다. 부친인 신동주 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갈등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신동주 회장은 한국 롯데그룹 계열사 지분을 매각하며 사실상 ‘형제의 난’에 종직부를 찍었으나, 롯데홀딩스를 통한 재기를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롯데홀딩스의 최대주주인 광윤사 지분 절반(50.2%)을 신동주 회장이 갖고 있다. 하지만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마무리되면 더이상 ‘신동빈 흔들기’는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세간의 관심도 신정열씨가 아닌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신유열 상무에게 쏠리고 있다. 

현재 LG그룹을 이끌고 있는 구광모 회장은 구본무 선대회장이 양자로 들인 장자다. 구본무 선대회장은 1994년 장남 구원모씨가 불의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하자 2004년 동생인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아들을 자신의 호적에 올렸다. 장자 승계 원칙을 지키기 위한 결정으로, 그룹 경영권 역시 구광모 회장에게 넘겼다. 이로써 LG家는 구인회 창업회장, 구자경 명예회장, 구본무 선대회장, 구광모 현 회장까지 4대째 장자 경영을 이어가고 있다.

소미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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