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박서하.
그림 박서하.

[뉴스워치= 칼럼] 올여름 한국인이 가장 많이 여행한 곳은 도쿄와 오사카라고 합니다. ‘NO JAPAN’ 열기도 사라진 데다 엔저로 일본 애니메, 게임 등에 빠진 덕후가 아니라도 부담 없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일 겁니다. 일본 가면 뭘 드시나요? 스시? 우동? 돈카츠? 덮밥? 와규? 이런 게 좀 식상하다면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는 어떠신가요?

오사카(大阪)는 식도락 도시라고 불릴만큼 맛있는 음식이 즐비하고 어디에서 먹어도 맛있지만, 특히 〈오코노미야키〉는 오사카에 가면 한 번쯤은 먹어줘야 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을 정도로 인기 요리가 되었습니다. 양배추로만 만들어서 위에 부담도 없고 달콤한 데리야키 소스로 감칠맛을 더해 오사카를 여행하는 한국인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습니다.

밀가루 반죽에 뭔가를 올리거나 다양한 식자재를 섞어 부치는 요리는 세계 각국에도 많습니다. 하지만 밀가루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잘게 자른 양배추만으로 전을 부치는 일본의 오코노미야키는 매우 특이한 요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양배추 맛 외에는 아무 맛도 나지 않으니 마요네즈를 비롯하여 다양한 소스를 뿌려 먹습니다. 그야말로 소스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일본의 빈대떡으로 불리는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는 존경을 나타내는 ‘(お)+선호하다’라는 의미가 있는 동사, 코노무(好み)+굽기(焼き)가 더해진 말로 좋아하는 걸 넣어서 부쳐 먹는다는 의미입니다. 요즘은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에 돼지고기, 새우, 오징어, 소시지 등 좋아하는 식자재를 넣어 한끼 식사로 전혀 손색이 없는 요리가 되었지만 원래 오코노미야키는 패전 이후 너무나 먹을 것이 없어 생겨난 배고픈 요리입니다.

전쟁 중에는 배급제로 정해진 양만을 구매할 수 있었는데, 그 양이 너무 적어 하루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부족했습니다. 고구마를 주식으로 채소나 야생초, 쌀을 조금씩 섞어 양을 늘려서 식사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패전을 선언한 직후 일본인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때 아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워주던 음식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다가시야(駄菓子屋)의 ‘일전양식(一銭洋食)’이었습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핀 후에 파를 가득 올리고 그 위에 가츠오를 뿌린 후 그레이프처럼 반으로 접어 먹는 간식으로 일전(一銭)이면 지금 돈으로 약 200엔 정도이니 그 정도 돈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어 아이들에게 인기가 있었던 거죠.

그런데 아이들 간식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던 일전양식(一銭洋食)에 엄청난 양의 돼지고기를 얹어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로 바꿔 팔면서 일약 국민적인 음식으로 격상됩니다. 오코노미야키가 처음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거지요. 특히 전쟁의 피해가 컸던 히로시마 시내에서 오코노미야키를 파는 노점상과 가게가 늘어나기 시작합니다. 당시 이 음식은 도시의 후미진 골목에서 저렴하게 허기를 채우기 위한 그저 그런 음식이었습니다. 히로시마는 철을 취급하는 공장이 많아 비교적 넓은 철판을 손에 넣기 쉬운 환경이었습니다. 여하튼 그때까지만 해도 오코노미야키(お好み焼き)는 여전히 배고픈 음식으로 도시의 한쪽 구석에서 살짝 구워지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1950년이 되면 주택 일부를 오코노미야키를 전문적으로 팔 수 있는 스타일로 만든 가게들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영세하고 작은 구멍가게 수준이었습니다. 이 무렵부터 오코노미야키에 야키소바나 돼지고기를 더한 히로시마풍(広島風お好み焼き)의 오코노미야키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한국전쟁으로 경기가 살아나기 시작한 이후 이 오코노미야키에 돼지고기 외에도 오징어, 새우, 계란 등 다양한 속을 넣은 오코노미야키가 만들어 지면서 어른들의 한 끼 식사로 충분한 요리로 거듭났습니다.

이 시기 오코노미야키가 유행하게 된 것은 식사를 꼭 밥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커다란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았나 합니다. 우리처럼 쌀을 주식으로 하는 일본은 패전으로 국토가 폐허가 되면서 쌀 생산이 원활하지 못했습니다. 이때 승전국인 미국으로부터 엄청난 양의 밀가루가 지급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분식 먹기, 혼식 먹기 운동까지 벌였는데 일본도 사정은 같았습니다. 어쨌든 밥을 먹지 않으면 식사를 한 기분이 될 수 없는 것이 일본인의 기질이었다고 생각됩니다. 반찬도 아니고 주식도 아닌 오코노미야키는 이때까지 없었던 음식이었습니다.

1965년 이후 치안을 위해 도시의 노점상이 철거되어 노점에서 오코노미야키를 팔던 가게들은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오코노미야키를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전문점이 생겨났습니다. 1975년에 히로시마도요카프(広島カープ)가 센트럴리그(セントラル・リーグ)에서 첫 우승을 거머쥐던 날, 텔레비전에 히로시마 시내의 오코노미야키가 등장하였습니다. 이로인해 오코노미야키는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이후 여행 가이드북에도 게재되었습니다. 다이어트를 생각하신다면 여러분 오늘 저녁은 〈오코노미야키〉는 어떠십니까? 속에 새우? 돼지고기? 아니면 푸짐하게 둘 다 넣을까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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