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제일 중요한 것이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 갈 수 있는 철학이 바로 이념이다.” 지난달 28일 윤석열 대통령은 국민의힘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국가의 정치적 지향점이나 지향할 가치로서 이념을 언급했다. 그리고 “우리가 갈 방향은 결국, 국민을 위하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과연 그럴까?

우리나라는 복잡하고도 가혹한 근현대사를 가지고 있다. 일제강점기와 북한의 6.25남침은 우리 민족에게 말할 수 없는 아픔을 남겨주었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친일파와 공산주의자에 반대하는 DNA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국민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일파와 공산주의자에 대한 비난의 화살을 겨누고 있는 과녁이 달라지는 경험을 한다. 국민은 친일파와 공산주의자 모두 싫어하지만, 정권을 잡은 정치인은 꼭 그렇지는 않은 모양이다.

지난 정권은 북한에 대해 우호적이었지만, 북한은 핵 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였고 당시의 우리나라 대통령에게 머저리라고까지 말하였다. 지금 정권은 북한에 강한 대응 일변도이고 현 대통령은 그 방법의 하나로 한미일 동맹에 힘을 쏟고 있지만, 야당과의 사이는 유사 이래 가장 나쁘다. 야당은 정부의 거의 모든 행위에 반대하고 모든 장관의 임명을 부적합하다고 하였고 대통령은 이들에게 거침없이 임명장을 주었다. 또, 야당은 고장 난 LP처럼 심심하면 탄핵 이야기를 꺼낸다. 정부와 대통령 입장에선 이해가 가지 않고 짜증이 나올만한 형국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협치, 협치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 날개, 오른쪽 날개가 힘을 합치고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가 힘을 합쳐 발전하는 것”이라면서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 엉뚱한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그런 정치가 있을 수 있을까? 만약 있다면 그거야말로 공산주의 국가가 아닐까? 대통령은 “분단의 현실에서 공산 전체주의 세력, 그 맹종 세력과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들은 허위 조작, 선전 선동으로 자유 사회를 교란하려는 심리전을 일삼고 있으며,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는데 이를 야당의 탓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여당은 야당과의 협치를 위해 최선을 다하였나? 이번 정부 들어서서 국민에게 열심히 일하면 은행 빚 없이도 집을 살 수 있고, 아이를 낳아도 잘 기를 수 있겠다는 희망이 얼마나 더 늘었나? 실업률을 내리고, 과도한 이 사회의 경쟁을 완화하고, 이미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을 살릴 수 있는 비전이 얼마나 더 제시되었나?

한국의 국민 정서를 분석한 사람들은 여당 지지층 30%, 야당 지지층 30%, 무당파 40%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느 정당이건 선거를 앞두곤 무당파에 정성을 기울인다. 그러다 정권을 잡게 되면 자신의 지지자들에게로 관심이 옮겨 간다. 지지자 중에서 강경파의 목소리가 두드러지기 마련인데, 자연히 강경지지자들의 목소리는 정당 지도부에게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연히 무당파는 떨어져 나가고 그러다 보니 한국의 집권 정당은 직전 정부를 제외하곤 그간 10년을 주기로 바뀌었다.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게 대통령의 이념 중시 발언이 무당층의 지지를 유도해 내기 위한 전략적인 발언이라는 가정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필자는 회의적이다. 오히려 당장 내년 선거에도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고 차기 대선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사상의 자유, 양심의 자유를 헌법이 보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간의 역사를 통해 한국 사람들은 이러한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가뜩이나 여야 지지층 간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여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과 야당 지지 성향의 사람들은 서로 비방하고 있으며 심지어 친인끼리의 언쟁까지도 불사하게 한다. 이러한 상대 진영을 향한 무분별한 혐오는 지켜보는 국민을 피곤하게 만든다. 그런데 정치인들이 서로를 향해 내뱉는 직설적이고 여과되지 않은 공격성 발언은 국민의 사이를 벌어지게 할 뿐 자신의 지지세를 확장하진 못한다. 대체할 정당이 보이지 않은 지금, 국민은 지지하는 사람을 뽑기 위해 투표장에 나가는 게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을 떨어뜨리기 위해 투표하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황인데 어떻게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여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문제 해결의 영역에는 실용적인 해결책이 있고, 기이한 해결책이 있으며, 독창성과 순전한 광기 사이의 경계에 위태롭게 앉아 있는 해결책도 있다. 그런 겉보기에 미친 생각 중 하나가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불태운다는 생각일 것이다.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단순하고 실용적인 것부터 기괴하고 극단적인 것까지 다양할 수 있는 세상에서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고, 빈대를 없애기 위해 집에 불을 지르는 등의 무모한 행동은 피하여야 한다. 이러한 일반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훨씬 더 안전하고, 더 인도적이며,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오해를 풀고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다. 정부는 정확한 사실을 국민과 야당에 성실히 알려야 한다. 국민은 정확한 진실에 기반한 주장을 하고 자기편 입장만 강조하는 선동적인 주장과 이를 보도하는 모든 매체를 경계해야 한다. 경계한다는 것은 그러한 매체를 없앤다거나 불이익을 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의 헌법은 양심의 자유, 사상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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