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기초 학문’ 긴 안목 가진 투자 절실
‘당장 돈 안 된다’ 지원 중단하면 국가 근간 흔들릴 수 있어

기초과학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기초과학 이미지. 사진=픽사베이

[뉴스워치= 최양수 기자] 한국은 기초학문(基礎學文)에 대한 투자가 없다. 국어, 역사, 사회 등 인문사회 분야부터 수학, 과학, 물리, 화학 등 기초과학 분야까지 등한시(等閒視)한다. 

민족상잔(民族相殘)의 비극인 6·25전쟁 이후 보릿고개를 넘어야할 정도로 빈곤한 시절을 겪으면서 부모세대에서는 “그것을 배우면 쫄쫄 굶어”라며 기초학문보다 실용기술을 배울 것을 강요하면서 기초학문에 대한 이미지를 안 좋게 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잘 살아보세’를 외치며 1970년대 새마을운동을 시작으로 1980년대 한강의 기적을 이뤄낼 때까지 우리는 “빨리, 빨리”를 외치며 돈이 되는 것에 집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응용 학문이나 실용 과목의 기초가 되는 학문보다는 당장 돈을 벌어 먹기 위한 생존 투쟁에 집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시작된 ‘제4차 산업 혁명’(4IR: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에서는 이전의 흐름과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술 수준이 지금보다 낮았던 과거에는 그나마 고급 인재를 양성해서 인력을 갈아 넣는 것으로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더 과학 기술 수준이 높아지는 현재에 와서는 그런 식으로 만들어내기에는 한계가 왔다. 

IT(Information Technology·정보기술)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Communication Technology)과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인더스트리 4.0’(Industry 4.0) 시대를 맞이하면서 기초학문을 갈고닦지 못하면 모래 위에 성을 짓는 것과 같은 위태한 시대로 돌입하게 된 것이다.

결국 선진국들은 기술 연구·개발(R&D·Research and Development)을 위해 비용 투자를 아끼지 않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초학문 분야에 투자하는 지금 당장 이렇다 할 성과를 낼 수 없다는 것은 누구든 알고 있다. 

말 그대로 기초 베이스이기 때문에 실용성이 떨어지는 분야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긴 안목을 가진 투자가 절실하다. 기초과학은 많은 실패를 경험하고 데이터를 쌓아야 성공으로 갈 수 있는 학문이다. 말 그대로 실패는 예산 낭비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계단이다. 결국 성과의 달콤한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긴 호흡이 필요하다.

29일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024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1만여개 사업을 대상으로 23조원 규모의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로 했다. 이 중 R&D가 7조원, 보조금이 4조원 줄었다.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명분 하에 건드릴 수 없는 성역으로 꼽히던 R&D 예산을 대거 칼질했다.

앞서 지난 22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제4차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회의에서 ‘2024년도 국가 R&D 사업 예산 배분·조정안’을 확정 발표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 R&D 사업을 ‘카르텔’로 규정하고 예산 재검토를 지시한 가운데 108개 사업이 통폐합되는 등 대폭 축소가 이뤄질 예정이다. 특히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 예산, 기초연구예산 등이 된서리를 맞았다.

내년 R&D 예산은 21조5000억원으로 올해 대비 약 14% 줄어든다. 감소 규모가 3조4000억원에 달한다. 이 중 기초연구는 올해 2조6000억원 대비 2000억원(6.2%) 감소한 금액을 투자한다. 또 상대평가를 전면 도입해 하위 20% 사업은 구조 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R&D 카르텔 타파’를 명분으로 국가전략기술 투자를 천명하면서 바이오, AI, 배터리, 반도체 등 투자를 늘려 짧은 시간에 실적을 얻기 위한 ‘목표 중심형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만 늘리겠다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위험한 발상이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은데 어찌 좋은 결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8일 서울시 종로구 SK서린빌딩 3층 수펙스홀에서 진행된 ‘SK이노베이션 R&D 경영 40주년 성과 분석’ 컨퍼런스(Conference)에서 송재용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이지환 카이스트(한국과학기술원·KAIST) 경영학과 교수, 이성준 SK이노베이션 환경과학기술원장 등은 한결같이 “지금 돈이 없다고 해서 R&D 투자를 줄인다면 결국 천천히 사라질 것(슬로우 데스·Slow Death)이기 때문에 R&D에 대한 투자를 멈추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고 지원을 중단하게 된다면 국가 근본 베이스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고 기초학문에 대한 올바른 방향성을 다시 잡아야 할 것이다.

최양수 기자.
최양수 기자.

최양수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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