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세까지 가입되던 어린이보험 15세 이하로 연령 현실화
금융당국 제한에 절판마케팅, 규제 없어 불완전판매 우려

9월부터 어린이보험 가입연령이 0~35세에서 0~15세로 변경되는 가운데 막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9월부터 어린이보험 가입연령이 0~35세에서 0~15세로 변경되는 가운데 막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9월이 되면 들고 싶어도 들 수가 없어요. 보험료는 더 싸면서도 질병 보장되는 부분은 많기 때문에 단종되기 전에 들어두시는 게 좋습니다."

9월부터 16세 이상은 가입할 수 없게 되는 기존 어린이보험에 대한 한 보험설계사의 설명이다. 이 설계사는 줄곧 더 저렴하고 보장범위가 넓다며 가입할 수 없게 되기 전에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고 재촉했다. 

그동안 0~35세까지 가입이 가능했던 어린이보험이 9월부터 사라진다. 성인보험과 어린이보험 사이 경계가 모호한 까닭에 악용되는 사례가 많다는 금융당국의 판단에 따라 9월부터 어린이보험 가입 연령이 기존 0~35세에서 0~15세로 제한되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은 어린이보험 가입 가능 연령을 최고 15세로 두고, 이를 초과할 시에는 상품명에 어린이, 자녀 등 단어를 붙이지 말라고 제한했다. 출시 때와 달리 어린이보험이 변질됐다는 것이 금감원의 판단이다. 

실제 출시 당시인 2000년대 초반 0~15세 대상 종합보험이 주를 이뤘던 어린이보험은 저출산과 맞물리면서 가입 연령이 점점 확대됐다. 지난 2018년 30세로 가입연령이 높아졌고, 지난해 35세까지 확대됐다. 상위 10개 보험사 중 7곳이 어린이보험 가입 연령을 35세까지 두고 있을 정도다. 이 같은 연령 확대 마케팅에 어린이보험 신계약 건수도 껑충 뛰었다. 

업계에 따르면 삼성화재·현대해상·메리츠화재·KB손해보험·DB손해보험 등 주요 보험사의 어린이보험 신계약건수는 지난해 113만6888건으로 가입 최고 연령이 30세였던 2018년보다 44% 늘었다.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거둬들인 보험료도 6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출산율이 0.98명에서 지난해 0.78명으로 떨어진 가운데 보험사들은 가입 연령을 확대하는 마케팅으로 어린이보험에 새 숨을 불어넣은 셈이다.

그러나 가입연령 확대로 어린이보험을 부활시킨 보험사의 영업방식은 성인보험과 어린이보험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었고 이로 인한 부작용까지 더해졌다. 

대표적으로 어린이가 걸릴 확률이 적은 성인 질환 담보를 탑재하면서 정체성을 잃었고 소비자 피해도 야기했다. 실제 상당수 어린이보험에 뇌졸중·급성심근경색 등 성인질병 담보가 포함됐고, 이로 인해 늘어나게 된 보험료 부담은 진짜 대상인 어린이 가입자들의 손해로 나타났다.

또 가입 대상 및 질병 보장 확대 등이 난무한 탓에 어린이보험의 손실이 커졌다. 올해 상반기 보험사들의 실적을 살펴보면 어린이보험, 실손보험 등 일반·장기보험 손해액이 증가했다. 특히 손실이 늘어나자 일부 보험사들은 무리하게 보험금 지급을 제한하는 양상을 보이면서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일례가 지난 23일 연합뉴스TV 보도로 알려진 현대해상 사례다. 보도에 따르면 현대해상 어린이보험에 가입한 자녀를 둔 A씨는 자녀의 발달 지연 진단에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진단서를 제출했지만 현대해상은 '자신들이 제시하는 병원 중에서 의료자문을 받는 데 동의하라'는 요구를 했다. 

이에 대해 현대해상은 "발달지연 과잉진료 사례가 많은 탓에 심사과정이 필요해서"라는 입장을 내놨지만 전문가들은 발달 지연에 부여되는 임시 질병코드 R이 아닌 언어·지적장애나 자폐에 부여되는 F코드를 부여받을 시 보험금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지적했던 바다.

어린이보험 연령 조정 방침이 알려진 뒤 보험설계사들의 절판 마케팅이 한창이다. 사진=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 캡처
어린이보험 연령 조정 방침이 알려진 뒤 보험설계사들의 절판 마케팅이 한창이다. 사진=SNS, 인터넷 커뮤니티 등 캡처

보험사들이 어린이보험에 '어른이'를 끼워넣으면서 어린이보험의 본질은 흐려졌고 결국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그런데 금감원 조치 이후 행태마저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절판 마케팅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보험 절판 마케팅은 8월 초부터 이어졌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는 이른바 '공포 마케팅'을 앞세운 영업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절판 마케팅의 경우 보장, 상세 조건 등 가입자에 필요한 실질적 정보보다 "당장 가입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현혹적 문구를 앞세우는 게 대다수다. 그러나 절판 마케팅은 단속이나 제재를 가할 관련 규제조차 없는 상황이라 자칫 불완전판매를 야기할 수 있다.

심지어 불법 행태도 난무하고 있다. 광고시 금융소비자보호법 제22조 제1항에 따라 심의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설계사들은 SNS, 인터넷커뮤니티 등을 통해 심의를 받지 않은 불법 업무 광고를 게시해 공유하는 등 절판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와 관련해 업계 한 관계자는 "절판 마케팅 및 불법 광고 등은 불완전판매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높다"면서 "불완전판매는 소비자 피해, 금융 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소비자 보호를 위한 불법 광고 및 과도한 절판 마케팅 단속 및 제재가 필요해보인다"고 설명했다.

결국 어린이보험은 보험사들의 입맛에 따라 휘둘리다 제자리를 찾는 모양새다. 그러나 가입연령 확대, 성인질병 끼워넣기 등부터 절판 마케팅까지 그 과정에서 보여온 보험사들의 행태는 소비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신뢰도를 낮추는 자충수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보험업이 브랜드 이미지가 중요하고 소비자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아쉬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편 일부 보험사들은 가입연령을 낮춘 어린이보험 상품 출시를 서두르고 있다. 28일 삼성화재는 태아부터 15세까지 가입할 수 있는 자녀보험 '뉴(New) 마이 슈퍼스타'를 출시했다. 업계 첫 자녀보험에 분할지급형 담보를 포함해 담보 선택권을 강화한 게 특징이다. 현대해상, DB손해보험, KB손해보험 등은 각각 '굿앤굿어린이종합보험Q' '아이러브 플러스 건강보험' 'KB금쪽같은 자녀보험 플러스' 등 가입연령을 15세로 낮출 예정이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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