イラストAC에서 인용.
イラストAC에서 인용.

[뉴스워치= 칼럼] 지난주는 우리나라에 왔던 모든 태풍 중 가장 강할 것으로 관측된 제6호 태풍 '카눈'으로 인해 모든 국민이 가슴을 졸이던 한 주였습니다. 전례 없는 경로로 한국에 상륙한 ‘카눈’은 남한 16시간, 북한 5시간 총 21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한반도에 머물다 갔습니다. 속도가 거북이처럼 매우 느렸던 태풍은 이 땅 곳곳에 많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연평균 24.7개씩 발생하는 태풍은 7∼10월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태풍은 최근 10년 동안 40명 이상의 사망자와 실종자를 발생시켰고, 침수, 매몰, 산사태 등으로 엄청난 재산 피해를 일으켰습니다. 지구온난화로 태풍의 크기는 더 커지고 동반하는 강수량도 점점 증가할 거라고 합니다.

그런데 태풍으로 고통받는 건 인간만이 아닌가 봅니다. 2006년 7월 10일, 미크로네시아 말로 '폭풍의 신'이라는 의미의 태풍 ‘에위니아’가 지나가던 제주 서귀포시 하례동의 돌담 밑에서, 우리나라에서 볼 수 없는 낯선 새 한 마리가 비바람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습니다. 검은 머리 사이에 날렵한 흰 눈썹이 인상적인 이 제비갈매기는 중미·카리브해, 서아프리카, 아라비아반도 등에 서식하는 바닷새로 국내에선 처음 발견된 것입니다. '에위니아' 태풍으로 발견되었다고 하여 ‘에위니아제비갈매기’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태풍으로 길을 잃고 제주에 오게 된 겁니다. 태풍 때문에 우연히 우리나라를 찾은 ‘에위니아제비갈매기’만이 아니라고 합니다. 2004년 8월 19일, 태풍 ‘메기’의 영향으로 길을 잃은 새하얀 몸과 파란색 부리 기부가 특징인 큰 군함새도 제주 외도동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후에도 태풍이 세게 부는 여름철이면 제주에서 길을 잃은 큰 군함새가 발견되곤 했습니다.

그 외에도 분홍찌르레기, 붉은 가슴 흰꼬리딱새, 회색 바람 까마귀, 파랑딱새 등 희귀 새들이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모두 원래 서식지에서 길을 잃고 멀리 떠밀려와 섬에 기착한 새들입니다. 기후변화로 우리나라 안에서 서식지를 바꾼 새들도 있습니다. 제주도나 남해안 깊은 계곡에서나 보이던 여름 철새, 팔색조, 동박새가 종종 중부 지방에서 관찰되었다는 목격담도 잇따라 들려오기도 합니다.

새들에게 여름은 매서운 바람과 폭설이 내리는 겨울만큼 혹독한 계절입니다. 깃털 속까지 파고드는 뜨거운 태양, 폭우는 하늘길의 주인인 새들에게도 길을 잃게 만든다고 합니다. 태풍에 새는 왜 길을 잃는 걸까요. 자연생태 리듬에 민감한 새들은 정해진 시기에 이동하고 번식지로 날아와 새끼를 낳아 기릅니다. 기상이변은 머나먼 길을 가야 하는 새들의 이동길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거기에 지구온난화로 생태계가 흔들리면서 먹이터와 쉼터와 번식할 터도 달라졌습니다. 수천, 수만 년을 이어져 왔을 새들의 삶의 방식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태풍은 초속 17m 이상이면서 폭풍우를 동반하는 열대성 저기압입니다. 여름마다 피해갈 수 없는 태풍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것 같지만, 태풍은 지구의 에너지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꼭 필요한 자연 현상입니다. 태풍은 해수를 순환시켜 적조 현상을 없애고, 바다에 산소를 공급해 해조류와 어류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태풍의 강한 바람과 비는 대기 중 미세먼지와 오염물질을 씻어내고 물 부족 현상을 일시적으로 해소해주기도 합니다.

불교의 가르침 중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완전히 독립된 실체로, 무연(無縁)으로 존재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사회현상도 시스템도 마찬가지로 인간은 자연을 존중하며 겸허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자연을 개발의 대상으로 바라보면서 자연은 우리의 삶만이 아니라 새들의 삶마저 위협하기 시작한 겁니다.

우리는 나의 몸, 나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길을 잃기도 합니다. 우리말에서 ‘잃는다’는 물건, 혹은 사람, 지위를 상실하다, 분실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길을 잃는다’라고 하면 '가야 할 길이 사라지다'라는 뉘앙스가 강합니다. 하지만 일본어에서 (길)을 ‘잃는다’는 ‘없어지다’, ‘분실하다’, ‘저세상으로 갔다’는 의미의 나쿠수(無くす、失くす、亡くす)를 쓰지 않고 미로에 빠진 것처럼 ‘어디로 가야 할지 헷갈린다’는 의미의 마요우(迷う)를 사용합니다.

태풍으로 길을 잃는 새들, 태풍으로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분들이 모쪼록 길을 상실한(無くす) 것이 아닌 잠시 가야 할 길이 보이지 않아 흔들리고(迷う) 있는 것이기를 기도합니다. 봄의 오는 길도 하늘의 신이 내려오는 길도 안내하는 하늘길의 안내자, 새들도 길을 잃게 하는 태풍이니 우리의 삶이 흔들리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니까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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