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과거 미국은 주로 아프리카인(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노예로 만들어 노동력을 보충하였다. 당시에 흑인은 소나 말처럼 강한 근육을 가져 부려먹기 좋은 노동력으로 취급되어 주인은 때리거나 죽여도 별다른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흑인 노예는 그저 말귀를 알아듣는 사유재산으로 취급받았다. 1619년, 버지니아주의 제임스타운에서 흑인 노예 20명이 거래된 이후에 노예에 대한 수요는 급증하여 1779년에는 무려 20만명의 흑인 노예가 팔려오기도 했다.

지금부터 약 200년 전인 1831년 8월 21일, 노예였던 터너는 자신을 따르는 노예 75명과 함께 버지니아주 사우스햄프턴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1862년 9월 에이브러햄 링컨의 노예해방선언으로 이듬해 3월부터 모든 노예가 자유의 몸이 되었고 노예제는 1865년 수정헌법 13조에 의해 종말을 고하였으나 흑인에 대한 차별은 계속되었다. 마침내 1963년 8월, 마틴 루터 킹은 "나는 꿈꾸는 자" 연설을 하며, 흑인들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선언문을 발표하였다.

다문화사회는 노동력의 국가 간 이동으로 인해 형성되므로 자연히 다양한 인종이 함께 살게 된다. 따라서 다른 인종에 대한 주류사회의 태도가 문제가 되는데, 이로 인한 인종차별 문제는 다문화 국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차별이란 기본적으로 평등한 지위의 집단을 자의적인 기준에 의해 불평등하게 대우함으로써, 특정 집단을 사회적으로 격리하는 통제 형태를 말하는데 인종차별은 대표적인 다문화사회의 갈등요인이 되어왔다.

1960년대 미국 남부 주의 한 레스토랑 주인이 흑인 대학생 4명에게 서비스를 거부하면서 시작된 연좌 농성에서 흑인은 물론 백인들까지 합세하면서 인종차별 철폐의 횃불이 타올랐고, 이들이 부른 찬송가 '우리는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인종차별 철폐 운동가가 되었다. 음악사에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보편적인 염원의 상징이 된 노래들이 있다. 한국에서도 유신반대 투쟁을 하면서 즐겨 부르던 노래인 'We Shall Overcome'은 그러한 대표적인 노래 중 하나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복음 전통에 뿌리를 둔 이 노래는 세대와 문화를 넘어 희망, 단결, 회복력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20세기 초 아프리카계 미국인 목사인 찰스 틴들리가 쓴 'We Shall Overcome'은 복음 찬송 'I'll Overcome Someday'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 노래는 미국에서 1950년대와 1960년대의 민권 운동 중에 힘을 얻었다. 활동가들이 평등과 인종차별 종식을 위해 행진할 때 'We Shall Overcome'의 멜로디와 가사는 운동 정신의 구현인 단결 구호 역할을 했다.

"이겨낼 거야, 이겨낼 거야, 언젠가는 이겨낼 거야"라는 소박하지만 힘 있는 후렴구는 더 나은 미래를 향한 집단적 염원을 담아냈다. 그것은 역경에 짓밟히기를 거부하는 불굴의 인간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원래의 맥락과 목적을 초월하여 억압과 역경에 맞서는 다양한 투쟁의 세계적인 상징이 되었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서 싸우던 남아프리카에서 민주개혁을 위한 한국의 시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에서 정의, 자유, 인권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이 노래를 불렀다.

불평등은 다문화 제도 형성과 관련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불평등하다는 인식은 당연히 그 사회와의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경제적 불평등은 계층 간 위화감을 증대시켜, 다른 구성원들과 공동체 전체에 대한 연대감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불평등도가 높을수록 사회의 통합력이 떨어지고, 인종적 분할이 이에 겹치면 연대감은 더욱 약화할 수 있다.

국내 다문화 인구의 대부분이 저숙련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민자, 취업을 위해 입국한 해외동포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예에서 보듯 빈곤층으로 전락한 외국인이 한 공간에 집단으로 거주할 경우, 언어·경제·문화적으로 주류사회와 격리된 게토가 형성될 수 있으며 순혈주의가 강한 한국은 인종과 종교, 경제적 계층화가 복합적으로 결합할 경우 다른 나라보다 심각한 갈등 양상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 불평등과 이를 토대로 한 차별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그래서 다문화사회가 일반화된 현재에도 'We Shall Overcome'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 우리가 우리의 차이점을 넘어 보다 공정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추구하기 위해 손을 맞잡도록 격려해주기 때문이다. 노래 'We Shall Overcome'은 인간 정신에 내재한 지속적인 화합의 힘과 흔들리지 않는 희망에 대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세월이 흘러도 이 노래의 멜로디와 가사는 계속해서 울려 퍼지며 우리에게 나아가고, 지속하고, 더 밝은 미래가 가능하다고 믿도록 영감을 제공해 줄 것이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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