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드라마 악귀 영상 속 금줄.
SBS드라마 악귀 영상 속 금줄.

[뉴스워치= 칼럼] 최근 악귀에 씐 여자와 그 악귀를 볼 수 있는 남자가 의문의 죽음을 파헤치는 한국형 오컬트 미스터리 드라마 <악귀>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기억의 저편으로 밀어 넣었던 <전설의 고향>을 다시 끄집어내며 그나마 하얀 소복을 입은 처녀 귀신이 안 나오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빠져서 시청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악귀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고 염해상이 방안에 혹은 방밖에 금줄을 치는 모습이 여러 차례 방영되었습니다. 악귀를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들을 봉인할 때에도 어김없이 금줄이 둘려 있습니다. 어린 시절, 지방의 소도시에서 자란 저는 그렇게 시골이 아니었는데도, 연세가 지극한 어른이 계신 집에 아이가 태어나면 삼칠일 동안 대문에 금줄을 걸어놓았던 걸 본 기억이 있습니다.

태어난 아기가 아들이냐 딸이냐에 따라, 아들이면 새끼줄 중간에 악귀를 쫓는 데 효험이 있다고 믿은 고추, 숯, 짚 등을, 딸이면 숯, 미역, 솔가지 등을 달아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습니다. 산기 금줄을 치면 초상집에 다녀오거나 동물이나 사체를 보거나 병자를 보거나 하는 부정한 것에 노출된 사람들은 물론이고 형제나 출가한 딸이라도 다른 세대를 이뤘을 경우 이 집에 왕래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주로 금줄을 걸었지만, 초상집이나 병자가 있는 집에도 금줄을 거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에는 격리의 의미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쓰지 않는 물건이나 귀신 붙은 불길한 물건을 버릴 때는 물건에 붙은 악귀를 떼어내기 위해 물건에 왼 새끼를 매어서 버리기도 했습니다. 산영이 찾는 5개의 물건에는 언제나 금줄이 묶여있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기줄(禁忌繩), 좌삭(左索)·문삭(門索)·태삭(胎索)이라고 불리는 금줄은 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오는 악귀를 쫓기 위해 문전에 내거는 새끼줄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오른쪽에서 꼰 오른 새끼를 사용하지만, 금줄로 사용되는 새끼는 왼쪽으로 꼬아진 왼 새끼입니다. 사람들이 오른쪽으로 새끼를 꼰다는 걸 알고 있는 악귀가, 금기인 새끼를 풀고 집안으로 들어오려고 새끼줄을 풀려고 할 테니 새끼를 풀지 못하도록 반대로 줄을 꼰 왼 새끼를 쓰는 겁니다.

일본에도 우리와 거의 비슷한 ‘시메나와(しめ縄)’라는 게 있는데, 시메나와도 안에 불결한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도 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이 존재하는 신의 영역과 현세를 구분하는 결계의 상징이기도 합니다. ‘시메나와(しめ縄)’에도 우리의 숯이나 종이, 솔잎처럼 악귀를 몰아내고 좋은 인연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진 물건(縁起物)을 함께 장식합니다. 일본에서도 일상에서는 오른쪽으로 꼰 새끼줄을 사용하지만, 설날에 현관에 매달아 놓는 시메나와는 왼쪽(左綯い,ひだりない)으로 꼰 것을 사용합니다. 이건 예로부터 왼쪽은 신성한 것, 오른쪽은 속된 것으로 믿는 신앙에 근거한 겁니다.

우리나라에서 금줄은 거의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무속신앙의 물건이 되어버렸지만, 일본은 지금도 신사는 물론 스모나 노와 같은 전통예능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설날, 결혼식, 장례식, 대청소날(12월 13일) 등 특별한 날에는 꼭 크고 작은 시메나와를 사용하여 나쁜 기운이 우리의 삶을 탐하지 않도록 늘 주의합니다.

일본과 달리 우리의 문화에서 금줄을 매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금줄을 매는 것으로 혹은 금줄이 매여있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부정한 기운, 혹은 부정한 것을 보고 들은 것이 행여나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 사회는 금줄을 떼어냄으로 가지 말아야 하는 곳, 보지 말아야 하는 것, 만지지 말아야 하는 것에 대한 의식이 희박해졌습니다. 그래서 함부로 남의 것을 탐하고, 함부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금기의 사진과 동영상을 유포하고 그것을 공유하는 것이 결국 내 안에 사악한 기운(악귀)을 들이는 일이라는 걸 잊게 되었지요.

금줄이 사라진 지금, 우리의 몸가짐을 조심하게 하는 건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찍어대는 CCTV일지 모릅니다. 그래서 범죄는 늘 CCTV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납니다. 하지만 금줄은 감시가 아닌 나 자신을 내가 조심하는 것으로 삶에 대한 겸손이며 타인에 대한 배려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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