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빌딩 펀드로 미래에셋증권 상각…우리은행 피해자 손실 보전
증권사들 투자한 주요국 상업용 부동산 침체…만기 도래까지 막막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한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손실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증권사들이 투자한 해외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로 손실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워치= 문다영 기자] 저금리 시기에 국내 금융기관들이 홍콩 랜드마크 오피스 빌딩에 빌려준 2800억원이 증발할 위기에 놓였다. 저금리 시기에 공격적으로 몸집을 불린 해외 부동산 투자가 고금리에 직격타를 맞고 있다. 순차적으로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들이 있는 만큼 국내 부동산 PF 리스크에 이어 해외 부동산 투자 리스크가 본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미래에셋증권이 투자한 2800억원 규모 홍콩 오피스 빌딩 펀드 자산이 90% 상각처리됐다. 미래에셋 계열 멀티에셋자산운용은 이날 집합투자재산평가위원회를 열고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GFGC) 빌딩에 대출하기 위해 조성한 펀드 자산을 90% 안팎 수준에서 상각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앞서 해당 펀드를 판매한 시몬느자산운용도 자산을 약 90% 상각하기로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각처리란 해당 자산 가치가 떨어질 것으로 간주해 이를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현실화된 손실은 아니지만 앞으로 상황에 따라 실제 손실 규모는 90%보다 작을 수도, 이상이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회의 결과는 투자자에게도 고지됐다.

초고액 자산가들에게 해당 펀드를 총 765억원 판매한 우리은행도 지난 6월말 이사회를 통해 관련 고객 손실을 일부 보전해주기로 결정하고 고객들에게 공지한 상태다. 우리은행은 고객 피해 방지 및 신뢰 회복 차원에서 사적 화해의 수단으로 손실의 일정 비율을 보상하는 자율조정을 실시하기로 결정했다. 자율조정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기준안을 준용해 진행할 예정으로, 우리은행은 자율조정을 거쳐 투자원금 일부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안내를 지난달 27일부터 펀드 투자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또 자율조정 완료 후 운용사를 대상으로 구상권 청구 및 중순위 채권 추심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회수가 어렵고 손실을 본 고객에게 보전해줘야 하는 문제의 홍콩 빌딩은 저금리 시기 투자로 인해 불거졌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 2019년 6월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에 당시 환율로 2800억원을 대출하는 메자닌(중순위) 상품을 내놨다. 미래에셋증권이 자기 자금으로 300억원을 투자하고 1150억원은 증권과 보험사 등이 자기 자금으로 투자했다. 나머지는 미래에셋 계열사인 멀티에셋자산운용과 시몬느자산운용을 통해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됐다. 우리은행, 한국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한국은행 노조 등도 포함됐다. 각각 765억원, 400억원, 200억원, 20억원 등 적지 않은 규모의 자금이 투입됐다. 

미래에셋증권(위)과 우리은행은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 대출 및 펀드로 손실을 야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은행
미래에셋증권(위)과 우리은행은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빌딩 대출 및 펀드로 손실을 야기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은행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던 당시 메자닌 대출은 위험이 크지 않으면서도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중위험 중수익' 투자처로 꼽혔다. 건물주인 골딘파이낸셜홀딩스와 판수통 회장이 보증을 서서 대출 안전성도 높다고 평가받은 데다 해당 상품은 만기가 짧고 수익성이 높다는 점으로도 주목받았다.

그러나 홍콩의 급격한 변화가 '황금알'을 깨뜨렸다. 2019년 홍콩 송환법 반대 시위에 이어 2020년 코로나19가 덮치면서 홍콩 부동산 시장이 위축됐다. 홍콩 최고 갑부로 불리던 판 회장은 파산절차를 밟았고,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도 2020년 채권자들에게 압류됐다.

결국 싱가포르투자청 등 선순위 대출자가 권리를 행사해 빌딩 매각 원금을 회수했다. 선순위 대출자인 GIC와 도이체방크는 원금을 회수했지만 매각 대금이 선순위 투자자들에게도 다 돌아가지 못하면서 나머지 투자자들은 대부분의 투자액을 날릴 위기에 처했다. 중순위 권리자인 미래에셋 역시 자금을 회수하긴 힘든 상황이다. 미래에셋은 원리금 회수를 최우선 과제로 두고 선순위 대출자들에 대한 법적 대응에 들어간 상태다. "투자자 보호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세부내용이 구체화하는 대로 신속하게 안내할 예정"이라는 입장도 함께 내놨다.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뿐 아니다. 독일 트리아논 빌딩에 공모펀드로 편입한 이지스자산운용도 진땀을 흘리고 있다.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 17일 홈페이지 펀드 공시를 통해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 229호(파생형)의 주요 리스크 현황과 이에 대한 조치사항에 대해 공지했다. 문제의 빌딩은 독일에 위치한 트리아논 오피스로 주요 임차인인 데카방크가 임대차계약을 연장하지 않아 내년 6월 30일 계약이 만료된다. 이 건물은 지난해 말 기준 5억4400만 유로 규모로 펀드 설정 당시보다 1억 유로 가량 하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스운용은 "5개 잠재 대주 중 추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일부 대주는 약정의 필수적 전제 조건으로 본건 자사 소유주 자본금 추가 납입(추가 지분 출자)을 요청하고 있다"며 "고유자금 투입 관련 검토, 국내 기관투자자와의 협의를 통해 현재까지도 추가 자본금 마련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지만 최근 국내외 시장 상황으로 자금의 원활한 모집이 쉽지는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임의매각이 될 수 있고, 임의매각 절차가 실패할 경우 강제매각으로 인해 자산의 추가적인 가치 하락과 매각 절차 지연 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상세한 상황을 알렸다. 펀드 만기는 오는 10월로 공모·사모펀드 판매 및 고유계정을 포함해 1350여억원을 넣은 하나증권의 손실 가능성도 점쳐지는 상태다.

문제는 홍콩 골딘파이낸셜글로벌센터, 독일 트리아논 빌딩뿐 아니라 증권사가 자금을 투입한 해외 부동산 펀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의 해외 부동산 투자는 지난 10년 동안 10배나 늘어난 상황이다. 코로나19 직전과 비교해도 40%나 증가했다. 구체적인 수치로 보자면 지난 17일 기준 해외 부동산 펀드 순자산 총액은 77조7035억원에 이른다.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말에는 55조5435억원 수준이었다. 

특히 해외 부동산 투자의 약 70%는 이번에 문제가 된 빌딩처럼 오피스에 몰려 있다. 이 가운데 올해를 비롯해 내년에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 부동산 펀드금액만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조5000억원, 2024년 11조6000억원, 2025년 8조8000억원 순으로 만기가 돌아온다.

이중 이익은 커녕 손실을 떠안아야 할 비중이 적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금리가 내려가고 해외 부동산 가격이 투자 당시 추정치로 회복되는 등 가치가 올라가지 않는 이상 손실을 보지 않을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일례로 첫 미국 부동산 공모펀드로 흥행 역사를 썼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미래에셋맵스 미국부동산투자신탁 9-2호' 펀드는 내년 3월 만기인데 오피스 공실률이 높아지면서 아직 원매자를 구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투자증권과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국내 기관 자금 및 해외 대출을 조달해 매입한 미국 워싱턴D.C 소재 오피스빌딩인 센티넬2스퀘어, 이지스자산운용의 뉴욕 소재 1551 브로드웨이 프로퍼티 등은 이미 손실구간에 진입해 있는 상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해외 부동산 투자는 저금리 상황 당시 수년간 메자닌 등을 통해 경쟁적으로 이어져왔다"면서 "그러나 중순위 대출은 선순위 대출자의 권리행사에 따라 손실을 떠안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해외 부동산 투자가 적지 않게 이뤄진데다 순차적으로 펀드 만기가 도래하고 있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우려했다. 

이처럼 해외 부동산 투자가 손실 행렬인 이유는 투자 환경 변화에 있다. 코로나19를 겪으며 초저금리 상태에서 유동성이 과잉공급됐고, 이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 가격 상승 및 인플레이션이 시작됐다. 이로 인해 주요국들의 통화긴축정책과 금리인상이 이어지면서 투자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우 DCF법 평가로 인해 쉽게 기대수익을 예상해선 곤란한 상황이다. DCF법이란 할인현금흐름법으로 기업의 미래현금흐름을 추정해 현재가치로 할인해 표시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멀쩡한 건물도 자산가치가 급락할 수 있고, 이로 인한 담보가치 하락으로 순식간에 위기에 몰릴 수도 있다.

이처럼 금융시장에서 해외 부동산 리스크가 커지자 금융감독원이 점검에 나섰다. 금감원은 20일 해외 대체투자와 부동산 PF 관련 증권사 임원들을 불러 간담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분기별 정례간담회이긴 하지만 해외 대체투자 부실 관련 사항들이 집중적으로 논의될 예정이다. 금감원은 꾸준히 증권사들의 해외 부동산 투자 현황을 점검하고 원리금 미상환 발생 보고 등을 수시로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부동산 자산이 고점을 찍었을 당시 투자된 2019~2020년 부동산에 대한 만기가 돌아오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예의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에 대한 경고등은 계속 깜빡이고 있다. 전망도 좋지 않다. 이베스트투자증권은 11일 보고서를 통해 "금리 상승, 지속되는 인플레이션, 경기 침체 우려 속에서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우려가 상승하고 있다"면서 "재택 근무로 인해 오피스 부문 공실률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부동산 시장 스트레스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아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한국신용평가도 17일 진행한 웹캐스트를 통해 "해외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리파이낸싱(자금 재조달)의 부담이 확대되고 있다"면서 3월 말 기준 자기자본 대비 해외 부동산 비중이 대형 증권사의 경우 24%로 중·소형 증권사의 11%보다 높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올해 하반기 증권사들의 우발부채와 해외 대체투자 부실화 위험에 따라 신용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문다영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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