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지난 5월 16일, 서울 최고기온이 31.2도를 기록했다. 사람들은 얇은 옷으로 갈아입기도 하고 그냥 입던 옷을 그대로 입기도 했지만, 올해는 벌써 이리 덥냐는 식의 투정을 하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이러한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니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필자는 하도 당명을 바꿔 이젠 기억도 가물가물하지만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정당과 관계를 맺은 일이 있었다. 그때가 2000년대 초반 정도였던 거 같은데 햇볕정책에 관한 이야기가 언론 등을 통해 연이어 나왔던 시기다. 물론 긍정적인 평가 일색이었다.

햇볕정책이라는 용어는 이솝 우화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해와 바람이 누가 빨리 행인의 외투를 벗기는지에 대해 대결하는 이야기인데 바람은 강한 바람을 불면 외투를 벗길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지만, 바람이 강하게 불수록 행인은 옷깃을 강하게 여미기만 했다. 그런데 해가 햇볕을 내리쬐자 행인은 더워 결국 외투를 벗었고, 결국 해의 승리로 대결은 종료되었다.

DJ 정부는 "행인의 외투를 벗게 한 것은 북풍이 아니라 햇볕이므로 우리도 북한을 몰아칠 것이 아니라 햇볕을 쬐어서 마음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정권교체가 일어났고 국민은 이제야 이 땅에도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된다는 생각에 햇볕정책은 많은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정치인 중에는 국민에게 감동을 주는 자신의 역사를 지닌 사람도 많아 국민은 정치인에 대해 호감을 느끼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는 당시에도 햇볕정책이 성공할 확률은 극히 적다는 생각을 하였다. 사람이 외투를 벗도록 만들려면 강한 햇볕을 쏘여야 하는데 그런 햇볕을 쏘이는 게 가능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못 참을 정도가 아닌, 그냥 어설픈 햇볕은 기분만 좋게 할 뿐 정작 옷을 벗게 만들지는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소련이 붕괴하고 독일이 통일하는 등 냉전체제가 붕괴하면서 남북관계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특히, 대북관계는 대한민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 혹은 대립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는데 남북관계 악화로 서울 불바다 발언이 나오고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 탈퇴 선언, 국제원자력기구(IAEA) 탈퇴 선언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DJ 정부는 남북문제에 능통하다는 것을 내세웠고, 2000년 6월에는 사상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이 이루어졌으며 '한국과 동아시아 전반의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공로 그리고 남북화해와 평화에 대한 노력'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대북 화해 협력 정책은 안보와 대화라는 이중적 프로그램을 동시에 작동시켜 포용정책을 실현하려는 것으로, 남북관계를 특징짓는 현재의 분단 상태를 평화적으로 관리하되 평화정착을 실현해 통일로 나아가겠다는 이중적인 과제를 동시에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햇볕정책이 시행된 기간에도 북한의 무력 도발과 핵·미사일 개발은 지속되었다. NLL을 침범하며 일어난 제1연평해전(1999년), 제2연평해전(2002년), 미사일 시험 발사인 대포동 2호 발사 사건, 그리고 북한의 1차 핵실험(2006년)이 일어났다.

이명박 정부는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폐기하고 개방에 나서면 10년 안에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을 3000달러까지 끌어올릴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이른바 '비핵 개방 3000 구상'을 내세웠다. 북한은 이에 반발하여 남북관계는 경색되었고,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과 2차 핵실험,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폭격 사건 등이 이어지면서 남북교류는 서서히 단절되었다.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기본적인 형태는 조건부 협력의 회유책으로, 비핵 개방 3000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4차 핵실험 및 2016년 북한 광명성호 발사 사건에 대한 대응으로 2016년 2월 개성공단 가동에 대한 무기한 전면 중단 결정을 내렸고, 이에 북한은 개성공단 폐쇄 조처를 내리며 한국 기업인들을 전부 추방시켰다.

19대 문재인 정부는 화해 제스처를 취했으나 북한의 미사일 도발은 끊이지 않았다.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에서 9월 평양 공동선언이 나왔고 남과 북의 적대 관계를 해소하고 군축, 평화적 공존을 위한 방안과 이산가족 상설면회소 개설, 화상 상봉 등의 인도적 문제, 관광·산업 등의 분야에서 협력 약속이 있었으나 2019년 2월 베트남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자 대북지원 및 협력도 결렬되었다. 그리고 2020년 6월 16일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이후로 남북 관계는 다시 급격하게 냉각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햇볕정책이라는 말은 지금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게다가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은 햇볕정책이란 말은 아예 잊어버린 듯하다. 북한은커녕 국정운영의 동반자인 정부에 대해서도 강한 바람만을 쏘아내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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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 약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공법학과 졸업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문화학 박사학위 취득

서울시 영등포구청 인권위원회 위원

사)서울시 아동공공생활 지원센터 운영위원

현)동덕여자대학교 교양 대학교수

현)뉴스워치 편집위원

<신오쿠보 뉴커머 코리아타운과 이중의 정체성>, <일본의 다문화공생제도와 한국의 다문화정책> 등 다수 논문과 <화투-꽃들의전쟁>, <다원문화사회의 담론> 등 저역서 다수 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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