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7년 모리나가 신문광고.
1937년 모리나가 신문광고.

[뉴스워치= 칼럼] 얼마 전 어버이날이 지났습니다. 더 이상 챙겨드릴 부모님이 계시지 않게 된 지금, 어버이날은 저에게는 그저 그런 기념일 중 하나가 되어버렸지만, 저에게도 빨간 카네이션을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머니날’이 제정된 것은 1956년으로, 1973년 ‘어머니날’에서 ‘어버이날’로 명칭이 변경됩니다. 아마도 아버지와 어머니를 같은 날에 기념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와 다른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5월 8일을 어버이날로 정하고 있지만, 어머니의 날의 기원이 된 미국을 비롯한 일본, 중국, 벨기에, 쿠바, 독일, 핀란드, 케냐, 페루, 터키, 우간다, 스위스 등 84개국은 매년 5월 두 번째 일요일은 어머니날로 지키고 있다는 점입니다. 베트남과 라오스, 세르비아, 타지키스탄, 세르비아, 카자흐스탄, 알바니아 등은 세계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어머니날로 여긴다고 합니다.

현재 어머니날은 169개국에서 기념하고 있는데 '어머니날'이 생기게 된 기원에는 여러 설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으로는 17세기 영국에서도 귀족이나 영주의 댁으로 일하러 나간 자녀들이 부활절 3주 전 주일에 고향의 교회에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마더링 선데이(Mothering Sunday)’을 ‘어머니 날’의 기원으로 꼽기도 합니다. ‘어머니날’이라는 개념이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지만, 카톨릭 국가에서는 성모마리아를 인간의 어머니, 성모님으로 추앙하고 있어 성모승천, 성모대축일, 어머니 주일 등의 행사를 교회에서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유럽의 ‘어머니 날’은 성모마리아와 관련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겁니다. 그런 의미라면 어머니는, 생때같은 아들을 잃어야 했던 어머니들의 위로자이며 아들을 죽인 자들을 용서하는 화해의 상징으로 그런 어머니에 대한 칭송과 위로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어머니날’이 세계적 기념일로 퍼져나간 건 미국에서부터입니다. 잘 알려진 이야기로 1908년 미국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사는 안나 자비스(Anna Maria Jarvis)가 돌아가신 어머니 2주기에 참석한 사람들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해 생전에 어머니가 좋아하던 하얀 카네이션을 나누어주었다고 합니다. 참석자들의 반응이 좋았는지 자비스는 어머니를 존중하고 감사하는 날을 만들자는 운동을 미국 전역에 펼칩니다. 그리고 1910년 웨스트버지니아주에 이어 1914년, 윌슨 대통령은 저비스의 어머니가 돌아가신 5월 두 번째 일요일을 어머니의 날로 제정하게 되고 이로써 ‘어머니날’이 전 세계에 확산하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그만큼 미국이라는 나라의 영향력이 강력해졌다는 의미이기도 할 겁니다. 

자비스의 이야기야 널리 알려지면서 ‘어머니 날’에 사람들은 하얀 카네이션을 선사했습니다. 흰 백합이 순결한 성모의 상징이 된 것처럼 순백의 흰 카네이션은 어머니의 고귀한 사랑을 상징으로 꽃이 된 겁니다. 그런데 흰 카네이션이 품귀현상이 일어나면서 어머니가 돌아가신 사람은 흰 카네이션, 어머니가 건재한 사람은 빨간 카네이션을 드리는 것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미국으로부터 ‘어머니날’을 받아들인 일본에서도 미국처럼 어머니가 안 계신 사람은 흰 카이네이션, 건재한 분은 빨간 카네이션을 달았는데, 어머니가 없는 아이들이 상처받는다는 의견이 많아 '어머니 날'은 빨간 카네이션으로 통일했다고 하네요.

일본에 ‘어머니날(母の日, 하하노히)’이 소개된 것은 1900년 초, 선교사들에 의해서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915년, 일본 최초로 교회에서 ‘어머니 날’ 행사를 개최했다 하는데 그다지 일본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31년 ‘대일본연합부인회’가 결성된 것을 계기로 ‘어머니날’을 당시 왕비인 코우쥰왕후(香淳皇后)의 생일 3월 6일로 정했지만, 여전히 일본에 정착하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인들 사이에 ‘어머니 날’이 알려지게 되는 것 제과 회사, 모리나가(森永)가 개최한 어머니날 행사로부터입니다. 군부의 집권으로 전시체제로 바뀌던 1936년, 모리나가(森永)제과는 ‘모리나가 어머니를 칭송하는 모임(森永母を讃へる会)’을 결성하고, ‘어머니 날’을 일본 각지에 보급하는 활동을 전개합니다. 이때 일본에서 현모양처(賢母良妻)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그야말로 국가와 가정에 충실한 현모를 양성하자는 정부의 취지에 맞는 행사였을 겁니다. 전국적으로 어머니회 조직을 결성한 모리나가제과는 그 여세를 몰아 1937년 ‘모리나가 어머니회(森永母の日)’ 행사를 전국적으로 개최합니다. 이때 어머니에게 감사함을 표현하는 노래를 모집하였는데 5천 개 넘는 노래가 응모할 정도로 대성황을 이루었습니다. 또한, 제1회 ‘모리나가 어머니 날 대회(森永母の日大会)’에 전국의 어머니, 그야말로 현모를 20만 명 초대하여 운동회를 열면서 이 ‘어머니날’이 일본에 널리 알려지게 됩니다.

일본에서 ‘어머니 날’이 3월 6일에서 5월 두 번째 주로 변경된 것은 패전 이후 1947년, 미 군정에 의해서입니다. 각자 서로 다른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닐 수 있겠지만, 어머니는 우리 모두에게 그리움입니다. 나태주 시인의 ‘시인과 어머니’에는 이런 문구가 나옵니다.

‘문밖에선 긴 겨울의 기다림이 흰 눈 되어 내리는 저녁 쇠죽을 끓이는 아궁이 앞에서 후끈한 시래깃국 냄새나는 시를 쓰는 아들에게 애야! 시인이 되면 가난하다더라. 시는 뭐 하려고 쓰느냐. 근심 어린 눈빛으로 말했었다.’

늘 나를 근심하던 어머니, 이제는 근심 어린 잔소리를 들을 수 없어 더욱 그리운 마음에 하얀 카이네션을 사는 ‘어머니날’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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