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국박람회 일본출품도 ‘澳国博覧会参同記要’중
만국박람회 일본출품도 ‘澳国博覧会参同記要’중

[뉴스워치= 칼럼] ‘자포네제리(ジャポネズリー,japonaiserie)’라는 말을 아십니까. 이 말은 서양의 미술 양식을 의미하는 ‘자포니즘(ジャポニスム,Japonism)’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의미상으로는 전혀 다른 말입니다. 자포니즘은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 인상파, 후기인상파, 입체파 등 일본미술 공예품에 나타나는 평면성, 자유로운 화면 구성, 고유색의 파괴 등을 도입한 미술 양식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이에 비해 ‘자포네제리’는 일본미술 공예품에 국한되지 않고 일본의 생활양식, 음식, 문학 등 일본 문화 전반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를테면, 일본미술 양식을 도입한 작품 《수련》을 제작하고, 자신의 집에 일본 정원을 꾸민 모네는 자포니즘 화가이며 ‘자포네제리’이겠죠.

‘자포네제리’,‘자포니즘’는 프랑스에서 생겨난 말로, 자포니즘(Japonism)은 프랑스어 자포니슴(japonisme)을 영어식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19세기 중반의 파리, 모던함에 취해있던 파리지앵(Parisien)들은 일본을 종래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을 자극하던 중동의 나라들과 달리 신비로운 동방의 나라로 인식하였습니다. 일본 관련 서적들이 줄지어 출간되고 미술 화상인 사무엘 빙은 「예술적인 일본」(Le Japon artistique)이라는 일본의 예술 전반을 소개하는 미술잡지를 영어 불어 독어 버전으로 출간하여 각국에 판매하였습니다. 후일 새로운 공예 양식의 이름으로 자리 잡은 ‘아르누보((Art Nouveau)’는 인상파 화가들을 주 고객으로 둔 사물엘 빙의 파리의 미술 공예품 가게 이름입니다. 일본을 동경한 고흐가 아를(Arles)로 떠난 건 일본에 가장 근접한 고장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일본미술 공예품이 하나의 미술사조로 만들어낸 건 파리이지만, 그 시작은 1862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시작된 현상입니다. 1851년 제1회 런던 만국박람회장에는 건물의 천장과 벽을 모두 유리로 뒤덮고 철제기둥과 보를 구현한 일명 수정궁이 세워졌습니다.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유리 건물, 수정궁에는 빛이 그대로 투과되어 건물 안은 몽환적인 분위기가 연출되었고, 그곳에는 식민지 나라에서 들여온 각종 신기한 식물의 종자가 가득하고 기관차, 기중기, 증기엔진 등 문명의 기기들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그리고 열린 1862년의 두 번째 런던박람회. 박람회 방문객들을 매료시킨 것이 있었으니 바로 서구 국가들의 전유 공간이었던 박람회장에 미지의 나라, 동양의 끝, 일본이라는 섬나라에서 출품된 미술 공예품입니다. 이건 주일영국대사의 도움을 받은 도쿠가와 막부의 철저한 준비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이런 노력에 부응하듯 금공, 칠보, 옻칠, 염직, 자수, 병풍 등 일본의 미술 공예품은 영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한 예로 영국 출신 화가 휘슬러는 자신의 그림에 기모노를 입고 일본부채를 들고 있는 여성, 도자기를 그림의 소품 하는 등을 통해 동양취미, 오리엔탈리즘을 지닌 작가라는 걸 드러냈습니다.

물론 영국인들의 극동아시아에 관한 관심은 일본이 처음이 아닙니다. 16세기경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무찌르고, 해상권을 쥐게 된 영국은 동인도회사를 설립해 인도나 중국의 물품들을 자국에 들여오는데 중국도자기, 가구 등은 귀족층과 부유층의 예술적 취향이나, 의복, 음식문화 등을 바꾸어놓을 만큼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후 영국에는 동양의 도가적, 유가적, 샤먼 적 사유 등 중국에 대해 동경을 들어내는 ‘시누아즈리(Chinoiserie)’가 유행합니다. 자포니즘, 일본 취미는 그 연장선상에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일본 문학, 미술, 미의식을 좋아하는 ‘자포네제리’입니다. 일본여행도 자주 하고 일본영화, 문학, 음식도 즐깁니다. 하지만, 이렇게 좋아하는 일본이니 과거 한국에 저지른 일본의 과오를 이제 시간이 지났으니 다 잊고 용서하자는 마음은 들지 않습니다. 그들이 과거사를 청산하는 길만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전쟁을 일으킨 세력들이 여전히 권력의 좌에 앉아 일본국민들에게 ‘공포심과 불안감’을 먹잇감으로 던져주며 평화헌법을 개정하여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되고자 합니다. ‘자포네제리’인 저는 일본과 더 좋은 관계를 위해 그들이 잘못된 과거를 바로잡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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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이화여자대학 졸업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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