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올봄 한국 영화관의 일본 애니 돌풍이 심상치 않습니다. '슬램덩크' 이후에도 식을 줄 모르는 일본 애니 흥행 열풍은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스즈메의 문단속(すずめの戸締まり)'으로 이어져 개봉 35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 2023년 개봉작 중 최단기간 400만 관객 돌파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개봉(2022년 11월 11일) 7일 만에 200만 명, 87일 만에 1000만을 돌파한 화제작입니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君の名は)’(2017), ‘날씨의 아이(天気の子)’(2019)에 이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재난 3부작의 마지막 작품으로 서로 다른 형태의 재난을 상정하고는 있지만 본질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영화는 우연히 재난(災い)을 부르는 문을 열게 된 소녀 이와토 스즈메(岩戸鈴芽)가 일본 각지에서 발생하는 대규모 재난으로 폐허가 되어 버린 도시의 재난의 문을 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정을 그린 판타지 영화입니다. 이 영화는 전작 두 작품과 달리 아직도 일본인들의 기억 속에 트라우마로 각인된 2011년3월11일에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東日本大震災)’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게 많은 공감과 지지를 받았습니다.

영화는 큐슈에 사는 여고생, 스즈메가 등굣길에 마을 근처 폐허가 어디 있는지를 묻는 낯선 청년 소타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걱정되어 소타보다 먼저 폐교에 도착한 스즈메는 폐교 건물에 이상한 문이 하나 있는 걸 발견합니다. 스즈메가 그 문을 열자 그곳에는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그 세상으로 나아가려다 발밑에 고양이 모양의 석상을 발견하고 그걸 뽑으니 석상은 말하는 고양이로 변하더니 어디론가 도망가버립니다. 그리고는 문에서 불기둥이 들어오고 땅에서는 지렁이처럼 생긴 벌레들이 올라옵니다. 사실, 이 석상(요석, 要石)은 재난이 일어나지 않도록 누르고 있던 것으로 스즈메가 이걸 뽑으면서 재난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스즈메와 소타는 다이진을 잦아 재난의 문을 닫으려 하는데, 다이진은 소타를 동일본 대지진으로 돌아가신 스즈메의 어머니의 유품인 삼각의자에 가둬버립니다. 소타를 구하기 위해서는 죽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뒷문(後戸)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곳은 바로 스즈메가 어릴 때 어머니와 살았던 곳이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곳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일본의 전통, 풍습을 배경으로 스토리를 전개하던 감독의 전작,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와 마찬가지로 일본 신화의 모티브가 다수 등장합니다. 전작들의 여주인공은 신사의 무녀이거나 맑은 날을 축원하는 무녀였는데 스즈메 역시 어릴 적 죽음의 세계를 경험하면서 일반인들이 보지 못하는 재난의 불기둥과 지진을 일으키는 벌레(미미즈, ミミズ)를 볼 수 있는 영험한 힘을 지닌다는 점에서 그녀 역시 무녀로 봐도 무방할 겁니다.

그건 스즈메의 이름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일본인이라면 이와토(岩戸)라는 그녀의 성에서 일본의 창조신이자 태양신인 아마테라스(天照大神)를 떠올릴 겁니다. 아마테라스는 남자 신, 스사노(スサノオ)의 횡포에 분노하여 동굴로 숨어버리자 세상에서 빛이 사라져버립니다. 그러자 여신, 아메노우즈메(天宇受賣命)는 보풀을 일게 한 춤으로 신들이 박장대소하자 아마테라스는 어둠에 휩싸여 있을 텐데 무엇이 즐거워 신들이 웃느냐고 묻습니다. 아메노우즈메는 ‘당신보다 귀한 신이 나타나서 기뻐하고 있습니다’라고 대답하자 동굴 밖이 궁금해진 아마테라스가 동굴의 문을 열고 나오는데 그 문이 하늘의 돌문, 아마노이와토(天岩戸)입니다.

이와토 스즈메는 빛(아마테라스)을 동굴에서 꺼낸 아메노우즈메처럼 재난(죽음, 어두움)에서 삶(빛, 희망)을 가져다주는 존재로 설정되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단지 신화에서는 문을 열어 빛을 세상에 가져왔지만, 영화에서는 재난의 문을 닫는다는 설정으로 바뀐 거죠. 스즈메와 함께 재난이 들어오는 문을 닫는 청년, 무나카타 소타(宗像草太)의 성, 무 나카타(宗像) 역시 아마테라스와 스사노 사이에서 태어난 세 명의 여신 무나카타 삼여신(宗像三女神)에서 온 이름입니다. 소타가 다이진(大神)의 저주로 삼각의자로 변신한 것도 아마 삼여신을 연상시키는 장치였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고양이 모습으로 변한 요석은 실제로 신사에서 죽음의 세계에 있는 지진이 일어나지 않도록 눌러놓는 신성한 돌입니다. 영화에서는 지진을 불러오는 초자연적 존재 ‘미미즈’라는 알 수 없는 벌레들로 묘사했지만, 일본에서는 지진은 거대한 ‘메기(ナマズ)’가 요동을 쳐서 생기는 거리는 생각해 메기의 머리와 꼬리 모양의 요석으로 눌러 지진을 막는 상징으로 사용했습니다.

일본은 예로부터 지진, 쓰나미, 화산폭발 등 자연재해에 시달렸습니다. 한순간에 모든 걸 쓸어버리는 재해는 이건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불안과 무력감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의 삶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뒷문을 통해 새어 나오는 내일에 대한 불안,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지만 그래도 머리 질끈 묶고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피하고 싶지만, 기어이 그 뒷문이 열리는 순간을 우리는 살면서 여러 차례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뒷문이 언제 열릴지 알 수 없지만, 그 불안에 나의 미래를 저당 잡혀 살기에는 나의 하루가 너무 소중합니다. 요석으로 눌러도 올 재난이라면 지금부터 걱정해도 피할 수 없으니 오늘의 나를 즐기다 보면 내일의 나를 준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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