떨어진 벚꽃./사진=최유경 교수
떨어진 벚꽃./사진=최유경 교수

[뉴스워치= 칼럼] 동네 공원에 핀 산수유, 목련, 개나리를 보며 봄이 왔다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봄을 채 즐길 틈도 없이 한낮 기온이 20도를 웃돌기 시작하더니 개화 시기를 간 보던 살구나무꽃, 벚꽃도 서둘러 꽃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에 거리는 온통 봄꽃으로 가득해졌습니다.

그럼 4월에 하는 벚꽃축제는 어떻게 되냐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던 중 봄비가 내렸습니다. 오랫동안 기다려온 비였지만 막 피기 시작하거나 만개한 꽃들이 이 비를 견디는 건 무리였습니다. 봄비에 막 피기 시작한 꽃잎들이 꽃비처럼 내기리 시작했고 거리에는 힘없이 떨어진 꽃잎이 가득했습니다. 하수구에 소복이 쌓인 여린 분홍빛 벚꽃잎을 보며 왠지 모를 서글픔이 솟구쳐오르며 에도시대(江戸時代) 선종의 일파인 조동종(曹洞宗)의 승려 시인, 료칸(良寛)의 시가 떠오릅니다.

散る桜 残る桜も 散る桜 (良寛和尚)(치루 사쿠라 노코루 사쿠로도 치쿠 사쿠라)
지는 벚꽃 남는 벚꽃도 지는 벚꽃:지금 지는 벚꽃, 아직 남아있는 벚꽃도 질 벚꽃

‘지금 제아무리 아름답게 피어 있는 벚꽃이라도 언젠가는 진다.’라는 시로 이 생명이 다하려 할 때, 만약 생명이 좀 연장된다고 해도 그 또한 떨어져 버릴 생명이라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고 단언하는 료칸. 태어난 것 중에 사라지지 않는 건 없습니다. 태어난 것은 반드시 사라짐을 노래합니다. 벚꽃은 피는 순간부터 봄바람에, 봄비에 몸을 맡기고 흩어져야 하는 운명을 짊어집니다.

이 시는 장안의 화제가 되었던 OTT 드라마 〈카지노〉 속 대사, 「花無十日紅 (화무십일홍:열흘 동안 붉은 꽃은 없다)」와 비슷한 의미이기도 하지만 이 시는 아름다움(권력)의 무상함보다는 모든 것이 영원할 수 없음, ‘변화한다.’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료칸의 시에서 영감을 얻은 승려, 신란은 「내일이 있다고 생각한 가녀린 벚꽃, 밤에 광풍이라도 불지 않으려나(明日ありと思う心のあだざくら(仇桜) 夜半に嵐の吹かぬものかは」라는 시를 읊었다 합니다. 지금 아름답게 피어 있는 벚꽃을 보며 ‘내일 봐야지’라고 안심하고 있을 때 밤새 거센 바람이 불어 꽃잎을 다 떨구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말합니다. 료칸은 붙잡아 둘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고 변하지 않는 것 또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지는 벚꽃으로 노래했다면 신란은 지금, 이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음을, 내일도 오늘 같은 얼굴로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라고 역설합니다. 시간을 무제한으로 멈출 수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그 한정된 시간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만약 영원히 지지 않는 꽃이 있다면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이 있다면 아쉽지도 그립지도 그것들의 시간은 살아있다고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최근 트랜스 휴머니즘이라는 생소한 개념이 대중매체에 심심치 않게 등장합니다. 휴머니즘을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생물학적인 인간이 아닌 인간의 가치, 존엄성을 우선시하는 사유방식입니다. 그렇기에 휴머니즘은 ‘진정한 인간이 무엇인지, 진정한 인간이 되기 위한 탐구’를 중시합니다.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내면이 아닌 인간의 육체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보청기, 의수, 의족 등의 수준을 넘어 유전자 조작, 줄기세포, 인공장기 등 영원히 늙지 않는 삶을 향한 생명으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21세기야말로 인간이 나이 들어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고 선언하기도 합니다. 유발 하라리가 『호모데우스』에서 “인간이 행복과 불멸을 추구한다는 것은 성능을 업그레이드해 신이 되겠다는 것”으로 인간이 환경과 날씨를 통제하고 타인의 마음을 읽고, 원거리와 소통하고 죽음은 피하는 능력은 원래 신이 행하던 일인데, 인간이 신이 될 때 역사는 종말을 맞을 거라고 경고합니다. 1년 후의 죽음은 불행하고, 10년 후의 죽음은 행복일까요, 얼마를 더 살면 행복일까요. 벚꽃은 집니다. 생명도 집니다. 하지만 슬프지는 않습니다. 내년에 또 흐드러지게 필 벚꽃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가 제 마음속에 있으니 말이죠.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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