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야마히메신사(白山比咩神社)미소기체험
시라야마히메신사(白山比咩神社)미소기체험

[뉴스워치= 칼럼] 이집트 신화에 등장하는 죽음의 신, 아누비스(Anubis, アヌビス)〉는 묻습니다. “너는 살아서 무엇을 하였느냐?” 〈아누비스〉는 죽은 자를 이끌고 심판대로 갑니다. 그리고는 양팔 저울에 죽은 자의 심장을 올리고 다른 한쪽에는 정의와 지혜의 여신 마트의 깃털을 올립니다. 죄를 짓지 않은 자의 심장은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그런 심장의 영혼(카, ka)은 자신의 육체로 되돌아가 영생을 얻지만, 깃털보다 무거운 죽은 자의 심장은 괴물 암무트(Ammut)가 바로 집어 삼켜버립니다. 심장을 잃은 죽은 자의 영혼(Ka)은 사후세계로 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도는 벌을 받게 됩니다. 죄의 무게가 깃털보다 가벼워야 한다니 참으로 엄격합니다.

거의 모든 종교에서 윤회이든 하나님의 심판이든 살아 있을 때 나의 행위는 지워지지 않고 죽어서 심판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본의 토속 종교, 신도는 다릅니다. 현세를 중시하는 신도(神道)에서 죄는 심판을 받거나 책임져야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가 저지른 잘못, 누군가로 인해 야기되는 불길한 일들, 불운 등 나 혹은 나의 주변으로 인해 일어나는, 좋지 않은 모든 것을 일본어로 ‘케가레(穢れ)’라고 합니다. 그런데 죄(罪), 즉 케가레(穢れ)는 털어내거나 물로 씻으면 다시 깨끗해집니다. 그걸 ‘물에 흘려보내자’, ‘없던 일로 하자’라고 해서 ‘미즈니 나가수(水に流す)’라고 합니다. 물로 씻어 나쁜 걸 없애는 정화의식은 일본인들이 먼저 손을 씻고 신사로 들어서는 것도 미소기(禊)의 일종입니다. 또한, 마츠리를 하기 전에는 통과의례 의식으로 미소기(禊)가 행해지는데 일부 지역에서는 강이나 바다에 뛰어들어 더러움(穢れ, 케가레)을 씻어내는 의식이 거행되기도 합니다.

미소기(禊)는 일본 신화에서 유래된 정화의식입니다. 일본의 창조신, 이자나기(伊弉諾尊)는 불의 신인 히노가구쓰치(火之迦具土神)를 낳다가 심한 화상을 입어 죽은 아내, 이자나미(伊邪那岐)를 찾아서 죽음의 나라 황천국(黄泉国, 요미노쿠니)에 갑니다. 너무 그리운 마음으로 아내를 만나러 갔지만, 화상으로 온몸에 고름이 흐르고 구더기가 득실거리는 ‘이자나미’를 보자 ‘이자나기’는 기겁하여 그곳을 빠져나옵니다. 그리고는 죽음의 나라의 불길하고 흉한 것들을 없애기 위해 물로 몸을 씻습니다. 미소기(禊) 의식은 바로 황천국을 도망쳐 나온 ‘이자나기’가 몸을 씻는 의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뭔가 잘못된 일, 안 좋은 일을 없던 일로 하자는 의미의 ‘미즈니 나가수(水に流す)’라는 말을 만들어 냅니다.

일본인이 사용하는 더러움(汚さ)은 물리적 더러움만이 아니라 내 삶의 잘못, 나쁜 생각, 내 마음의 불편함 등도 포함되는데, 더러움(汚さ)은 케가레(穢れ)입니다. 그럼 다시 물로 씻어버리면 되는 것입니다. 일본 신사에 가면 신관이 "모든 화근, 죄, 더러움을 물리쳐 주소서, 깨끗이 해주소서"라고 기원하면서 나무에 잘게 썬 종이를 끼운 털이개(고헤이,御幣) 혹은 비쭈기 나뭇가지로 몸을 털어줍니다. 이 의식은 참배자의 몸에 붙었던 부정한 것들이 떨어지게 하기 위한 것으로 털어내는 것만으로도 참배자의 죄는 없어지고 깨끗해지는 겁니다.

미소기(禊) 의식은 심적 부담감, 고통을 리셋으로 처리하는 방식입니다. 일본인은 스스로 미소기라는 행위를 통해 정결해지고 이를 통해 죄(罪)를 물에 흘려보내는(水に流す) 것으로 심리적인 부채만이 아니라 현실적인 문제도 해결하는 겁니다. 일본이 전범국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않는 것은 셀프 면죄 전통에 익숙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미소가 의식은 일본이라는 공동체, 사회의 심적 안심을 줄지는 모르지만, 무책임한 셀프면책(自己免責)은 주변국들로부터 전혀 공감을 얻을 수 없습니다. 기억이 없다(記憶にない)며 침략전쟁과 학살, 강제동원도 위안부도 없었다고 하고, 과거 식민지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일본인에게 미소기(禊) 의식으로는 당신들이 저지른 잘못이 깃털처럼 가벼워지지 않을 거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한 당신들의 죄는 현재 진행형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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