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오는 4월 5일은 청명(淸明)이다. 청명은 24절기 중 다섯 번째 절기이자 온 가족이 성묘하는 한식(寒食) 바로 전날이다.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청명조(淸明條)에 따르면, 이날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치면, 임금은 이 불을 정승과 판서를 비롯한 문무백관 그리고 360 고을의 수령에게 나누어주고 수령들은 한식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이라고 한단다.

어떤 지역에서는 청명에 나무를 심는데, 아이가 혼인할 때 농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는 것을 특히 ‘내 나무’라 하였다. 지금의 식목일과 묘하게 닮았다. 특히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른다고 하는데, 청명은 본격적인 농사의 기점이 되는 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청명은 한해의 염원을 담은 날이다. 그래서 이날 산소를 돌보거나, 묏자리 고치기, 집수리 같은 일을 한다. 그리고 부득이 묘를 이장할 때도 이날 해야 한다. 청명과 한식, 윤달에 조상의 묘소를 돌보고 이장하는 풍습이 이어져 내려오는데 무속신앙에서는 이날이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라고 한다.

그런데 청명을 나흘 앞둔 지난 4월 1일에 비서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묘가 새벽 일찍 이장을 마쳤다는 뉴스가 있었다. 이날은 음력 2023년 2월 11일이고 또 윤달이었다. 고인의 일이라 뭐라 할 생각은 없는데 그 장소가 ‘민주화 운동 열사들의 성지’로 불리는 경기도 남양주 모란공원이라고 하여 좀 안쓰럽다. 박 전 시장 묘 이장에 대한 자격 시비 등이 일자 주변 시선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눈에 띄었다.

모란공원은 공원이 아니다. 그저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읍 월산리에 있는 대한민국의 한 사설 공동묘지다. 약 13,000기의 묘소가 있는데, 1969년에 안장을 시작하였고 특히 민주화·노동운동가들이 안장된 별도의 묘역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모란공원 관계자는 직원들이 출근했을 때 이미 박 전 시장 묘의 이장이 다 끝나 있었다고 했다. 박 전 시장의 묘는 전태일 열사의 묘소와 박종철 열사의 묘소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2020년 비서 성추행 의혹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박 전 시장은 같은 해 7월 고향인 경남 창녕 선영에 묻혔는데 이듬해인 2021년 9월 한 20대 남성이 “박 전 시장은 성추행범으로 나쁜 사람인데 편안하게 누워 있는 게 싫었다.”며 야전삽으로 박 전 시장 묘소를 훼손하는 일이 벌어져 유족들은 묘를 모란공원으로 이장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소식을 들은 여성단체들은 “박 전 시장 묘의 모란공원 이장은 성추행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라며 반발했다. 국민도 국가인권위의 결정을 거론하며 이를 비난했다. 국민의힘은 '박원순 전 시장을 복권하려는 시도'라고 비판했고 다만 더불어민주당은 아무런 말이 없다. 모란공원 측은, 이 묘역이 사설 공원묘지로 비용과 관리비를 지급하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민주열사 묘역을 기념하는 단체는 박 전 시장의 묘역을 기념할지는 나중에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임을 위한 행진곡이라는 노래에는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는 구절이 있다. 노동운동, 민주화 운동가들은 ‘민중 속으로’라고 수없이 되뇌었다. 그런데, 일부지만 어떤 이들은 왜 죽어서 그들의 묘소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하여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왜 어떤 이들은 사랑과 명예와 이름에 집착하는 것일까?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도 여전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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