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예전 대학 시절 수업 중 한 교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무슨 말은 해도 다 이해하겠는데 司法府를 司法部라고 하는 언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이었다. 司法府라는 용어는 삼권분립의 한 주체이지만, 司法部라는 용어는 집단의 한 조직을 의미하므로 법관이 양심적이고 독립적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한다.’라고 하였고 특히 ‘헌법재판소 재판관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에 관여할 수 없다.’라고도 하였다.

지난 3월 23일 소위 검수완박법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국민이 이 결정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거나 더불어민주당에 야합하였다고 비난하고 있다. 이날 헌재는 국민의힘 의원들이 제기한 권한침해확인 청구에서 이 법의 법사위 통과과정에 절차상 위법이 있다고 하였다. "법사위 위원장은 회의 주재자의 중립적인 지위에서 벗어나 조정위원회에 관하여 미리 가결의 조건을 만들어 실질적인 조정심사 없이 조정안이 의결되도록 하였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토론의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며 "이는 국회법과 헌법상 다수결 원칙을 위반한 것"이라고 한 것이다.

검찰 '수사권 축소' 법안의 국회 통과과정에서 민주당 출신 양향자 무소속 의원이 검찰 수사권 축소 개정안에 부정적 의견으로 입장문을 준비하자, 그해 4월 20일 민형배 민주당 의원이 위장 탈당한 후, 양 의원 대신 조정위원으로 참석하여 결국 조정안을 통과시킨 것은 가결의 조건을 만들어 놓은 것이니 위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헌재는 이렇게 위법하게 통과한 안건의 본회의 의결은 적법하다고 했다. 헌재는 해당 법률안의 가결 선포행위에 관한 무효확인 청구에 대해서는 5대 4의 의견으로 기각하였다. 모든 법률안은 국회법 제86조의 의해 위원회에서 심사를 마치거나 입안을 하였을 때는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하여 체계와 자구에 대한 심사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법사위에서의 통과가 위법이라면 본회의에 부의한 행위 자체가 위법이고 당연히 가결선포도 위법하다 함이 마땅할진대, 헌재는 절차가 위법하지만, 그 법안의 가결선포는 적법하다고 한 것이다. 대체 어떤 근거에 기반을 둔 해석인지 이해할 수 없다. 전 단계의 처리가 위법하였다면 다음 단계의 모든 행위가 어떻게 되든 그 또한 위법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만약 법사위 위법이라는 하자가 치유되었다면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당시 이 법의 표결을 앞두고 국민의힘은 박병석 국회의장실을 찾아가 농성하고 본회의장에선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저항했지만, 민주당은 소위 ‘회기 쪼개기’를 통해 이를 처리했다. 다음 본회의에서 개의된 지 단지, 6분 만에 이 법안은 가결되었다. 절차의 위법성은 치유되지 못하였으며 당일 본회의에서는 단지 절대다수당의 표수에 기반한 통과절차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를 두고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특히, 우연인지 필연인지 기각 의견을 낸 유남석, 이석태, 김기영,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이 모두 더불어민주당 측 인사들이라는 점이 지적되었다. 헌법은 제111조에서 헌법재판소는 법관의 자격을 가진 9인의 재판관으로 구성하며, 재판관은 대통령이 임명하되 3인은 국회에서 선출하는 자를, 3인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자를 임명한다고 하고 있다. 그런데 기각 의견을 낸 헌법재판소장인 유남석 재판관과 문형배, 이미선 재판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하였고, 이석태 재판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였으며,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하여 국회에서 선출한 자들이고, 반대의견은 낸 이종석, 이영진 재판관은 국회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추천하였고, 이선애 재판관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지명하였으며, 이은애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명하였으나 중도성향으로 분류되었던 인사들이다.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헌법의 정신에 따라 독립된 판단을 할 수 있는 소양을 지닌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세인의 예측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이번 결정을 보고 아연할 따름이다. 이 결정이 과연 독립된 삼권분립기관인 사법부(司法府)의 결정인가? 국민이 판사의 성향을 알고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면 어찌 재판의 결과를 신뢰할 수 있을까?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박성호 동덕여대 교수

게다가 이번 재판은 절차의 적법성은 위반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심어줄 우려가 있다. 헌재의 결정은 권위가 있기 때문이다. 기업주는 인사위원회만 적정하게 열면 절차를 위반해도 적법한 해고를 할 수가 있고, 경찰과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고문을 해도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앞으로 국회의 다수당은 본회의만 적법하게 열면 얼마든지 상임위나 법사위의 편법 통과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절차적 정당성’은 실질적 정당성과 함께 사회정의 실현을 위한 핵심 요소로 이 두 가지 정당성이 모두 갖춰져야 하는데 이것이 흔들릴 수가 있게 되었다.

그나저나 이번 헌재의 결정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인데 그 효과가 우리 사회에 긍정적이길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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