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투 초기의 판화 2월
화투 초기의 판화 2월

[뉴스워치= 칼럼] 봄이 왔음을 온몸으로 감지하기에 충분한 3월. 아파트 정원의 목련이 벌써 고개를 내밀기 시작하고, 여리디여린 어린 새싹도 바깥나들이를 준비하는 것이 눈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계절 3월. 한 해의 시작은 1월 1일이지만, 3월은 겨우내 움츠렸던 나를 털어내고 새롭게 무언가를 시작해도 될 것 같은 기분을 주는 그런 달입니다. 특히나 저의 집처럼 아직 집안에 학생이 있고, 학교에 적을 두고 있는 저로서는 3월이야말로 진정한 한 해의 시작입니다.

그동안은 속에 뭘 입어도 다 덮어 버리는 롱패딩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나프탈렌 냄새 풀풀 나는 장롱 속 봄 원피스라도 입고, 갈데없으면 동네 카페라도 나가고 싶어지는 3월은 ‘봄 처녀’가 아닌 ‘봄 아줌마’의 가슴도 두근거리게 할 만큼 모든 날 모든 순간이 다 좋습니다.

일본은 봄(春, 하루)에 대한 예찬이 특히 많은 나라입니다. 죽음(동면)으로 상징되는 겨울에서 벗어나 생명이 시작되는 봄은, 때 되면 오는 계절이 아니라 신이 생명수를 보내줘야 맞이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되었습니다. 그런 일본의 자연관을 잘 드러낸 동요가 지금도 여전히 초등학교에 교과서에 실리는 1910년에 만들어진 창가, ‘하루가 키다(春が来た)’일 겁니다.

春が来た 春が来た どこに来た 山に来た 里に来た 野にも来た

花がさく 花がさく どこにさく 山にさく 里にさく 野にもさく

鳥がなく 鳥がなく どこでなく 山でなく 里でなく 野でもなく

봄이 왔다 봄이 왔다 어디에 왔어?  산에 왔어 마을에 왔어 들에도 왔어

꽃이 핀다 꽃이 핀다 어디에 피어?  산에 피고 마을에 피고 들에도 핀다

새가 운다 새가 운다 어디서 울어?  산에 울어 마을에서 울어 들에서도 울어

이 동요에서 보면 봄은 가장 먼저 산에 옵니다. 산에 온 봄은 마을을 들렸다가 들로 나갑니다. 이 노래에는 나오지 않지만, 봄은 그다음에 강으로 가고 바다로 갑니다. 그다음에 봄은 어디로 갈까요.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고 지상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다시 내려오는 거죠.

봄이 왔다는 상징은 눈이 녹는 거(雪解け,유키도케)로 이때 매개체가 되는 건 ‘물’입니다. 왜 물이냐고요? 눈으로도 비로도 변하는 물은 생명의 원천입니다.

동요에 등장하는 ‘하나가사쿠(花がさく)’ 속 꽃을 벚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봄의 상징은 매화입니다. 봄의 전령사인 매화가 봄을 알리고 꽃샘추위를 견디고 나면 벚꽃과 복숭아 꽃이 만개합니다. 그럼, 사람들은 봄과의 이별을 준비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벚꽃은 헤어짐과 재회를 상징합니다.

동요의 마지막 가사에 나오는 ‘도리가나쿠(鳥がなく)’ 속 새는 ‘휘파람새(ホトトギス)’입니다. 『만요슈(万葉集, 759)』 이후 일본의 전통 시(和歌, 와카) 에 봄 신의 전령사로 등장하는 ‘휘파람새’는 화투의 2월 패에 매화와 함께 등장합니다. 패전 이후 일본의 자연관은 상당히 변화했지만, 여전히 자연의 순리에 인간의 삶을 맞추어 사는 관습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봄은, 모든 것이 시작되는 봄이 있다면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겨울도 있다는 의미일 거고, 인간의 삶 역시 만남의 시작이 있으면 헤어지는 끝도 있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거라는, 보편적 진리를 보여줄 겁니다. 눈이 부시게 화사한 봄날 저는 요네즈 켄지(米津玄師)의 ‘슌라이(春雷, 춘뢰)’ 속 “ふらふら揺られて甘い香り 残し陰り幻: 흔들흔들 흔들리는 달콤한 향기. 남겨진 그늘진 환상)”을 상기하며 달콤하면서 금방 사라져버릴 것 같아 가슴 한편이 아리는 첫사랑 같은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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