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벨리은행 파산 주범은 모바일뱅킹, 지방은행, 증권사 자유롭지 못해

[뉴스워치= 박현군 기자]  미국에서 시중은행의 파산 소식이 전해졌다. 외신 등에 따르면 미국 켈리포니아주 실리콘벨리 지역에 위치한 실리콘벨리은행(Silicon Valley Bank, 이하 SVB)이 지난 10일(현지시각) 갑자기 파산하면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혹자는 이번 SVB 파산이 2008년 리먼브라더스 사태처럼 확산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자아낼 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

SVB는 세간에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실리콘벨리의 주요 IT벤처기업들을 주거래 고객으로 둔 미국 상업은행 중에서는 16번째로 규모가 큰 대형은행이다. 실제 국민연금도 SVB 보유주식 10만795주가 휴지로 변하면서 306억원 상당의 손실을 보게 됐다. 또한 금융권 전문가들은 가상화폐에 투자한 개인들의 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손실은 대한민국의 금융과 경제규모에서 표시도 나지 않는 수준이다. 이번 사태로 개인 투자자가 아닌 대한민국 금융 시스템에 타격을 받을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SVB 파산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파산 형태와 속도 때문이다.

손가락 몇 번으로 실현된 실리콘벨리은행 파산 과정

미국 내 16위 시중은행인 실리콘벨리은행이 모바일 뱅크런으로 인해 결국 파산했다. 사진은 파산한 실리콘벨리은행의 모습. / 사진 =연합뉴스
미국 내 16위 시중은행인 실리콘벨리은행이 모바일 뱅크런으로 인해 결국 파산했다. 사진은 파산한 실리콘벨리은행의 모습. / 사진 =연합뉴스

미국 언론들은 SVB 파산의 주범으로 ‘스마트폰 뱅킹 시스템’을 꼽고 있다.

SVB 파산은 9일(현지시각)부터 시작된다. 이날 SVB는 미국 국채 투자 과정에서 18억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공시했다. SVB는 미국 국채로 구성된 매도가능증권(만기 전에 매도할 의도로 매수한 채권과 주식)에 투자하고 있었는데 손실 가능성을 알고 있지만 수신고가 줄어든 것 때문에 손실을 무릅쓰고 이 증권을 매각해야 했고 손실을 봤다는 것이다.

SVB가 운용하는 자산규모가 15억달러 수준인 것을 감안하면 금융에 대한 지식이 얕은 일반인들이 언 듯 생각하기에 자본잠식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SVB가 운용했던 미국 국채투자 자산에 대한 평가가 연방준비은행의 금리 인상으로 인해 부풀려지면서 생긴 장부상 괴리일 뿐 2008년도에 불거졌던 은행들의 무리한 투자로 인한 경영위기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분석은 금융 전문가들이나 가능한 상황이었고 일반 고객들, 특히 SVB에 투자금을 예치해 놓은 실리콘벨리 내 벤처기업들은 15억달러 규모의 은행에서 18억달러의 손실이 났다는 공시를 접하면 우리 회사가 예치한 투자금에 대한 불안감이 들 수 밖에 없다.

이 때문에 SVB에 투자금을 유치한 벤처기업들은 모바일 뱅킹을 통해 다른 은행으로 예금 이체를 시도했다. 그 결과 9일에 모바일을 통한 이체 시도 금액이 420억달러에 달했다. 이에 따라 10일 오전 캘리포니아주 금융보호혁신국은 불충분한 유동성과 지급불능을 이유로 SVB를 폐쇄하고 미 연방예금보험공사를 파산 관재인으로 임명해서 파산 절차를 밟았다.

금융감독원, 안전망 구축 나서야

문제는 SVB 파산 루틴이 우리나라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형태라는 것이다. 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과 같은 주요 시중은행에서는 이 같은 파산루틴이 재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이들 5대 시중은행의 경우 SVB처럼 위험자산에 무분별하게 투자하지도 않지만 이들 은행의 안정성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도 굳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중은행들과 함께 지급결제망을 공유하면서 모바일 뱅킹 서비스를 운용하고 있는 인터넷은행, 지방은행, 증권사 등에서는 SVB와 같은 파산 루틴이 얼마든지 재현될 수 있다.

박현군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박현군 경제산업부 부장대우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의 경쟁 강화를 위해 지급결제망을 보험사와 상호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까지 허용할 것을 검토 중에 있다. 만약 이 같은 방안이 시행된다면 SVB 파산루틴은 더 이상 남의일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저축은행·증권사·인터넷은행 등 어느 한 곳에서라도 SVB 파산루틴이 작동하게 된다면 그 여파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금융기관은 5대 시중은행과 IBK기업·수출입·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포함해서 단 한 곳도 없다. 그렇다고 증권사의 법인 지급결제 허용 등의 방안을 철회하는 것도 좋은 방안은 아니다.

이제 금융당국은 SVB 파산루틴이 작동하지 못하도록 인터넷·모바일 뱅킹에 대한 뱅킹 한도 제한 등을 포함한 다양한 안전망 구축에 대해 고민해야 할 때다.

박현군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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