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윤석열 정부의 일본에 대한 메시지가 궁금해하던 차에 나온 첫 3.1절 기념사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라는 대통령의 발언에는 강대국이 약소국을 식민지로 삼는 것은 당연하다는 일본 우익의 수정주의 역사관이 엿보였습니다.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했다는 대통령의 주장에서 “조선이 식민지가 된 것은 구한국이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친일파 이완용이 떠오르는 건 비단 저만이 아닐 겁니다. 작년 국민의 힘 정진석 의원이 페북에 올린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이 아니라 안에서 썩어 문드러져 망했다"라는 자학적인 주장은 학폭의 피해자가 내가 약해서 맞은 거라고 자책하라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학교 가서 힘이든 권력이든 가진 애들에게 맞지 않으려면 미리 무술이라도 배우든지 아님 흙수저인 자신을 탓하라고 가르쳐야 하는지 착잡해질 뿐입니다.

막대한 희생이 요구되는 모든 전쟁에는 국민을 설득할 명분이 필요합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의 시작을 알린 청일전쟁에서 일본이 내세운 논리는 문명(文明)과 야만(野蛮)입니다. 명치유신을 일으킨 혁명세력은 서구의 기술문화수용은 거스를 수 없는 최상의 가치이며 동양의 전통적 관습에 안주하는 것으로 제거해야 하는 구습이며 부정의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2분 법적 사고에 근거하여 명치 정부는 자국민들에게 청나라를 「개혁을 거부하는 야만적 나라(改革を拒否する野蛮な国)」라는 인식을 각인시킨 후 그런 청나라가 조선을 먹는다면 일본이 국제적으로 매우 위험해질 거라고 불안할 조장하는 한편 야만적 청나라로부터 조선을 구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이런 주장은 진보적 지식인들에게도 꽤 먹혀들어 가 지지를 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청일전쟁은 정치기반이 미약했던 명치유신 세력으로서는 국내 기반을 공고히 할 수 있는 물러설 수 없는 한판 승부였습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의 논리가 그러하듯 러일전쟁에서도 동일하게 일본의 안보가 비문명국인 러시아로부터 위협받는다는 논리를 펼쳤습니다. 서구제국주의의 아시아진출과 잠식, 일본의 위기의식은 전쟁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었습니다. 좀 거칠게 표현하면 친구들을 때리는 놈들이니 근일 나를 때릴 거다. 그러니 먼저 때려눕혀야 안심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입니다. 일본은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개화론자, 후쿠자와 유키치의 주장처럼 “중국·조선의 개명을 기다릴 시간이 없으니 서양과 진퇴를 같이하여 접수해야"하는 길을 택합니다. 스스로 서구의 제국주의자가 되는 것이 국제사회의 보편성을 획득하는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죠.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했을까요? 가령 우리도 일본처럼 서구 문명을 좀 일찍 수용하였다고 해도 자국의 안보는 내세운 일본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아시아를 손에 넣은 일본은 싸워야 하는 대상이 서구로 바뀌자 이번엔 자국을 넘어 아시아의 안보를 위협하는 존재로 서구열강을 설정합니다. 더는 서구는 본받아야 하는 절대적 가치가 아닌 물질주의에 찌든 폭력주의자들로 야만이라고 부정하던 아시아의 고고한 정신을 지켜야 한다며 〈대동아전쟁(태평양전쟁)〉을 일으킵니다. 일본을 중심으로 하나 된 아시아를 구축하기 위한 전쟁으로 아시아국가들은 짓밟히고 자국의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습니다. 현재 일본은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과 중국의 도발을 막는다며 평화헌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위협의 대상국이 북한과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여전히 안보를 내세워 국민을 선동하고 있는 겁니다. 개정에 반대하던 일본국민들은 우크라이나 사태로 개정으로 돌아서고 있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우리가 변화하는 세계사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다면, 과거의 불행이 반복될 것이 자명”하다며 “그러니 이제 일본과는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습니다”라고 언급합니다. 언제 일본이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가 되었으며 일본은 우리에게 아무런 손짓도 하고 있지 않은데 언제 일본이 우리의 파트너가 된 걸까요?

다른 날도 아니고 일제의 맞서 자주독립을 외친 선열들의 저항정신을 기념하는 3·1절 기념식에서, 하필 한일 사이의 최대 현안인 강제동원 노동 문제의 해결이 임박한 이 시점에서 말이죠. 그러다 3.1절 기념사로부터 5일이 지나 일본과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우리의 파트너”가 되기 위해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해결책이 일본 기업이나 정부의 적절한 사죄 표명 등 ‘성의 있는 호응’이 아닌 일본과 한국 기업들이 낸 기부금으로 피해자들에게 ‘판결금’을 대신 배상하는 ‘제삼자 변제’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정부의 발표안을 보고 “너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라고 말하는 영화 속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그것도 피고 기업은 기부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고 다른 기업들이 피해보상금이 아닌 ‘미래청년기금’(가칭)으로 전경련에 기부하는 형식이 된다고 하니 일본의 바람대로 일본은 ‘우리의 파트너’로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 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학폭한 놈은 별거 아니야 다 지난 일이잖아 라고 말할 수 있어도 피해자도 과연 그럴까요?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