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칼럼] 지금 한국은 마치 둘로 나뉘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심한 갈등 상황에 있다. 최근의 일만 봐도 그렇다. 지난 3월 1일, 이날은 3·1절로 국가기념일이다. 그런데 이날 세종시 한솔동의 한 주민이 아파트에 일장기를 걸어 많은 국민을 경악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당연히 이웃 주민들이 항의하고 뉴스에 보도되는 소동이 일어났다. 챗지피티에 물어보니 터키나 러시아는 국가기념일을 모독한 자에게 형벌 혹은 행정벌을 부과한다지만 한국은 그러한 제도가 없어 이를 처벌하긴 어렵다. 그런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이 사건을 둘러싸고 또 자신이 지지하지 않은 정당의 음모라는 댓글이 달리더니 심지어 당일 기념사에서 한 대통령의 기념사를 두고도 이게 매국적이니 친일적이니 하는 주장도 나타났다.

지난 3일, 이러한 여론몰이가 계속되자 국민의힘은 더불어민주당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소환하며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한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어찌 친일적이라 할 수 있느냐고 반박하기도 하였다. 실제 이날 국민의힘이 발표한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은 “한일 두 나라는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함께 열어가야 할 공동 운명체”이고 “우리는 19세기에 우리 조상들이 범했던 과오를 되풀이해서는 안 됩니다. 당시 우리가 일본과 똑같이 개국하고 근대화를 했던들 우리는 일제 침략을 면할 수 있었을 것.”이라 말하여 당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념사와 유사한 내용의 발언을 하였었다. 그러자 이 논란은 줄어들었다.

그런데 그다음 날인 4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내부를 향한 공격이나 비난을 중단해달라"고 하였는데 동시에 "이건 상대 진영이 가장 바라는 일"이라고 적었다. 동시에 이 대표는 "시중에 나와 있는 명단은 틀린 게 많다."며 "5명 중 4명이 그랬다고 해도, 5명을 비난하면 1명은 얼마나 억울하겠느냐. 자신이 한 일도 아닌데 누명을 당하는 심정을 누구보다 제가 잘 알지 않느냐"라고도 적었다. 자신의 처지를 억울하다고 단정하고 정부에 대한 비난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일들은 비단 최근의 사정만은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한국은 여당 일부 지지자와 야당 일부 지지자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거리로 나가 시위를 계속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자기중심적 담론의 치열한 대결장이다.

이탈리아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이자 정치 이론가인 안토니오 그람시는 영향력 있는 사회의 지배 집단이 문화적 신념, 가치 및 관행을 조작하여 권력을 유지한다는 문화 헤게모니의 개념을 발전시켰다. 문화적 헤게모니를 사회생활의 모든 측면을 형성하는 포괄적인 힘으로 본다는 의미로 한국에서도 한때 그람시를 연구하는 바람이 불었고 훌륭한 저술이나 논문도 여러 개 나왔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지배적인 문화적 세력이 무소불위의 위력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들의 담론이 편파적이고 공정성을 잃으면 기존의 문화 담론에 종속될 수 있는 개인이나 집단은 이에 저항하게 되고 지배적인 문화적 세력은 자신의 지배적 지위를 상실하게 된다. 담론이 힘을 지니려면 그 담론은 정당해야 한다. 지배적인 문화적 세력이 그 사회의 담론을 영원불멸하게 지배할 수는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 여론조사 결과 국민에게서 많은 의혹을 받는 것으로 보이는 야당 대표는, 자신이 직면한 형사사건을 집권당의 탄압으로 몰아세우는 일을 이제는 그만두어야 한다.

현대 법치주의 국가는 사적 보복을 금지하고 있다. 사람에 의한 지배가 아닌 오로지 법에 따른 정당하고 합법적인 지배로서만 유효하다. 그것이 형법에 구현된 것이 죄형법정주의다. 사람은 누구나 법 앞에서 평등하고 범죄에 대하여는 공평하게 형벌을 받아야 한다는 대원칙 아래 사람들은 편안한 일상을 보장받는다. 권력이 있다고, 일부의 지지를 받는다고 이 원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러한 원칙을 상대방의 탄압이라 규정하고 악(惡)으로 치부한다면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된다.

한국의 헌법은 제12조 1항에서 법률과 적법한 절차에 의하지 아니하고 처벌, 보안처분 또는 강제노역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했고 행위 시의 법률에 따라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한다고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불만이 있더라도 재판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면 될 일이다. 한국의 양극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분열과 갈등은 그렇지 않은 국민에게 심한 고통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만약 한국이 통일된다면 두 개의 권력에서, 이젠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3개 혹은 그 이상의 권력이 경쟁하게 될 소지가 다분히 있다. 지금도 이렇게 국가가 어지러운데 이러한 분열과 갈등을 우리 사회가 견뎌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 외부인사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