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에 소주 가격 2만원 시대 개막
외식물가 부담에 집에서 챙기는 삼삼데이

[뉴스워치= 정호 기자] ‘퇴근 후 삼겹살에 소주한잔?’이라는 말이 부쩍 무거워진 요즘이다. 달궈진 불판에서 노릇하게 구운 삼겹살 한 점과 소주 한 잔을 곁들이기에는 물가가 부담되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가격종합포털 참가격은 지난 1월 수도권 내 삼겹살(200g) 가격을 전년 대비 12% 오른 1만9031원으로 집계했다. 소주 가격도 6000원을 바라보고 있다. 2023년 최저임금 9620원을 따져봤을 때 2시간 내내 일해도 삼겹살 1인분과 소주 한 병을 마시기 어렵다는 얘기다.

대량으로 물량을 확보한 대형마트들은 3일 ‘삼삼데이’에 맞춰 앞다퉈 삼겹살을 반값에 판매하고 있다. 이마트는 오는 5일까지 국내산 냉장 삼겹살과 목심을 최대 50% 할인한 100g당 1140원에 판매한다. 홈플러스도 마찬가지로 특정 카드 결제 시 삼겹살과 목심을 50% 할인 판매할 예정이다. 롯데마트도 반값에 삼겹살을 팔기 마찬가지다. 이번 행사는 높아진 외식물가에 집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는 수요층을 노리는 대형마트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조금 삐딱한 시선으로 보자면 원래 양돈농가의 수익 안정을 위해 마련된 삼삼데이지만, 오늘날에 이르러 높아진 외식 물가에 유독 대형마트 반값 세일로 눈이 가는 건 어쩔 수 없는 노릇같다.삼삼데이는 구제역으로 피해를 입은 양돈 농가를 돕기 위해 축협에서 제정된 이후 20년간 유지됐지만, 상업적인 측면만 두드러지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삼겹살은 출발지 자체가 저렴한 가격으로 싸게 즐길 수 있는 일명 ‘서민 음식’이었다. 이제는 이 말이 유명무실할 뿐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돼지는 1970년대에 이르러 대규모 돼지육종 및 사육이 증가했으며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다양한 품종의 돼지를 들여왔다. 당시 축산 장려 정책에 힘입어 공급이 증가한 돼지고기는 소고기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됐다. 기름기가 많은 부위였던 삼겹살은 해외에 잘 수출이 되지 않는 부위였기 때문이다.

산업화가 한창이던 1970년 노동자들이 저렴한 가격과 기름을 잔뜩 머금은 삼겹살로 목구멍 찌든 때를 넘기곤 했다. IMF 상황에서도 일본에 높은 가격으로 수출되던 등심과 안심에 비해 삼겹살은 여전히 비 수출 품목이었다. 경제 위기 상황 속 삼겹살은 가뜩이나 얇은 주머니 사정으로 즐길 수 있는 국민 외식 메뉴가 됐다.

2000년대에 이르러 돼지 농가는 구제역 발병, 일본 수출 중단으로 인한 등심과 안심 가격 폭락 등 악재를 떠안게 됐다. 이 당시 국내서 꾸준히 소비되던 삼겹살은 당시 자신의 몸값을 차차 높여가며 돼지 가격 안정에 기여했다. 현재까지 돼지고기는 지난해 국민 1명당 먹은 58.4kg의 고기 중 절반을 차지할 정도다. 이 중 삼겹살 선호도를 보면 상당수 삼겹살 비중이 높을 것이다.

접근하기 쉬운 삼겹살은 최근 요리에 취미를 가지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분위기에서도 꾸준히 선호되는 부위다. 양파와 파를 잔뜩 넣고 푹 삶은 수육은 물론, 오븐에 굽거나 에어프라이어로 익히는 등 조리법도 다양해졌다. 이는 굳이 식당이 아니더라도 삼겹살을 먹는 다양한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다.

식당에서 먹기에는 서민 외식의 대명사였던 삼겹살이 말 그대로 금(金)겹살을 넘어 ‘다이아겹살’이 되어가고 있다. 이 분위기에 올해 삼삼데이에서도 대형마트로 몰리는 발길이 늘어날 것이다. 작년에도 한 대형마트는 평소의 6배의 삼겹살을 팔아치웠다. 올해는 이 수치를 가볍게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호 산업부 차장
정호 산업부 차장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만큼 삼겹살은 대패 삼겹살, 고추장 삼겹살, 훈제 삼겹살 등 그 종류도 무궁무진하다. 사람마다 즐기는 방법도 가지각색이겠지만, 결국 오랫동안 삼겹살을 즐겨온 기억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다수 가지고 있다. 상황이 그렇기에 가격이 부담되더라도 결국 애환을 해소하는 데 삼겹살과 소주가 절실한 건 한국인의 DNA를 가졌다면 어쩔 수 없는 일면으로 보인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저작권자 © 뉴스워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