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이즈미 타다아키(今泉 忠明), 키모이한 생물, 2019, 宝島社
이마이즈미 타다아키(今泉 忠明), 키모이한 생물, 2019, 宝島社

[뉴스워치= 칼럼] 오븐에서 자신이 만든 빵을 꺼낸 딸이 “와 이거 완전 키모이(キモい)한데”라며 도저히 빵으로는 보이지 않은 기묘한 밀가루 덩어리를 꺼내 보였습니다. 고소한 버터 향을 풍기며 부드럽게 부풀어 오른 빵을 기대했지만, 오븐에서 꺼낸 건 도저히 빵이라 할 수 없는 크고 납작한 건빵이었습니다. 그런 빵을 본 딸 아이는 ‘키모이’하다고 자신의 소감을 말했지요.

“키모이? 키모이가 뭐야”라는 묻는 저에게 “아 그거, 기모치 와루이(気持ちが悪い)의 약자야”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찾아봤더니 정말로 ‘키모이(キモい)’는 ‘기모치 와루이(気持ちが悪い)’의 약자로 일본의 젊은이들이 쓰는 신조어를, 일본에 관심 있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기분 나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는 듯하였습니다. 이 ‘키모이(キモい)’말이 신조어이긴 하지만 최근에 만들어진 말은 아니고 90년대 후반부터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던 말이라고 하네요.

그런데 ‘키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를 한국어로 ‘기분 나쁘다’로 번역하는 분이 많은 듯한데, 그런 의미라면 ‘키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보다는 ‘기분 와루이(気分悪い)’가 더 적합할 겁니다. 왜냐면 ‘키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는 키모치(気持ち)에 와루이(悪い)가 더해진 말로 키모치(気持ち)는 '기분'이 아닌 '마음'을 나타나는 말이거든요. 그러니 ‘키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를 직역하면 ‘내 마음이 나쁘다.’, ‘마음이 불편하다’라는 의미가 될 겁니다.

일본어에서 ‘키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하다는 말은 뭔가 징그럽거나, 보기 흉한 걸 본다든지 할 때 사용하지만 보이는 것 외에도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이나 촉감, 느낌, 모양 등이 위화감이 드는 경우, 혹은 상대방이 평소와 달리 너무 수상할 정도로 친근한 태도로 행동하는 경우 등에도 사용합니다. 때론 진짜로 속이 좋지 않은 상황 등에 사용합니다. 그러니 ‘기분 나쁘다’라는 것보다 ‘(마음 혹은 몸이) 불쾌한 경우입니다.

‘키모이’가 ‘기모치가 와루이(気持ちが悪い)’의 줄인 말인 것 맞는데 말을 줄이면서 뉘앙스는 강해졌다는 게 문제입니다. 이 말은 누군가를 향한 말이 아닌 외부의 그 무엇으로 내 ‘마음’이 불편해는 건데 ‘키모이’가 되면서 상대를 규정하는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실제로 여고생들을 꾀려던 남자가 여고생들에게 ‘키모이’라는 말을 듣고 격분하여 폭력을 행사하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뉘앙스가 강해지면서 말이 갖는 폭력성도 자연히 강해져 버린 겁니다.

나를 불편하게 하는 상황, 존재에 대한 나의 ‘마음’의 느낌, 그런 것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시간적 여유 없이 그냥 눈에 보이는 상황을 직설적으로 ‘키모이’하다고 규정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것과 ‘나’ 사이에 생긴 그 틈은 좁혀지지 않습니다. 징그럽다, 혐오스럽다 등의 판단은 그야말로 주관적인 것인데, 내 눈에 ‘키모이’하다고 하여 거부한다면 우린 내내 편견의 벽에 둘러싸여 편협한 인간으로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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