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라이팅에 저임금, 경력마저 보장받기 힘들어

[뉴스워치= 정호 기자] 취업난이 극심해지는 가운데 농담조로 ‘코딩 배울까?’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청년층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IT 기술이 전 사업 영역에 확대되면서 개발자는 말 그대로 회사의 경쟁력이 된 지 오래다. 지금도 많은 빅테크 기업이 경쟁력 확보를 위해 개발자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IT 업계에서는 경기 불황에도 앞다퉈 연봉을 높이며 개발자를 영입하기 위한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지금도 이 미래를 담보로 수많은 초보 개발 인력은 희생당하고 있다. 3년 차 업계 관계자는 “실력을 쌓으려고 해도 부족한 일손에 엉뚱한 업무를 맡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고 토로했다. 받는 임금 또한 최저 연봉에 못 미친다. 채 200만원도 되지 않는 월급은 이제야 200만원을 조금 넘겼을 뿐이다.

저임금과 함께 이 개발자는 제대로 된 경력도 쌓지 못했다. 국비교육과는 달리 개발자가 처음 맡은 업무는 기존 프로그램을 새롭게 리뉴얼하는 작업이었다. 8개월 동안 사수 없이 생소한 업무를 맡은 것이다. 배웠던 업무도 아니기에 개발자는 남이 만든 프로그램을 참조해 흉내만 낼 뿐이었다. 버그가 생겨도 해결 방법을 모르기에 야근수당 없이 자정을 넘기는 시간까지 일했다.

이 개발자만의 일화가 아니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으로부터 하청을 받아 프로젝트를 맡는 일이 대다수다. 중소기업 입장에서는 일감을 물어와야 하니 입찰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럴듯한 포트폴리오와 친분으로 인해 경험이 전무한 기업에 일감이 가는 것이다. 전문적이지 않은 업체가 지식이 전무한 초보 개발자에게 일을 지시하는 국내 IT 생태계가 조성된 이유다.

더욱이 최근 대기업들은 관련 경력만을 쌓은 개발자를 선호하고 있다. 심지어는 자체 교육 과정까지 앞다퉈 개설하고 있다. 그냥 회사에 이용만 당하는 것이다. 신입이라는 이유로 모델 작업이라는 일까지 투입된 또 다른 개발자는 3명이 할 일을 혼자 전담했다. 무리한 업무 양으로 개발자는 2년 동안 제대로 된 개발 경력을 쌓지 못하고 데이터 모델 작업만 해왔다. 데이터 모델 작업은 기관의 비즈니스 목적에 맞는 데이터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관리하는 작업을 뜻한다.

중소기업은 인원들이 경력을 쌓아도 다들 대기업에 가버리니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중소기업 환경상 대기업 임금 수준을 맞추기도 어렵고, 적은 인원으로 개발 일을 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힘들게 일하면 한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는 것도 아니다. 그냥 대기업 중고 신입이 되는 것을 개발자들은 선호한다. IT회사 관계자는 모 기업의 개발자 공모전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그 공모전 타이틀이 경력을 고려하지 않고 실력으로 붙자는 컨셉인데 결국 경력을 쌓은 ‘중고 신입’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중소 게임 업계에서 인력 감축 칼바람이 불고 있다. 원더피플, 엔트리브소프트, 엔픽셀은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특히 데브시스터즈는 팬플랫폼 마이쿠키런을 정리하면서 직원 40명을 해고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결국 중소개발사에서 일한 IT개발자들은 자기 밥그릇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개발자들은 기업에서 당한 가스라이팅 사례도 언급했다. 들은 말로는 “네가 여기서 경력을 쌓아야 나중에도 인정받는다”, “개발자라고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다” 등등의 말이다. 어떤 개발자는 다른 개발인력과 경쟁을 하기 위해 노래방에 끌려가서 상사에게 신체 부위를 꼬집히는 등의 수모도 겪어야 했다.

정호 산업부 차장
정호 산업부 차장

개발자는 자율주행, 협동로봇, 메타버스 등 신사업 분야의 핵심 인력이다. AI가 많은 업무를 대체하고 있는 시대 속에서도 개발자는 살아남는다는 말도 있다. 밝은 전망과는 다르게 많은 개발자가 지금도 착취당하고 수모를 겪고 있다. 결국 블랙 기업들 도태가 되지만, 그 안에서 열정을 가지고 일하는 개발자들만 울리는 요즘이다. ‘IT강국 대한민국’이라는 말보다 ‘IT갑질 대한민국’에 현재에 어울리는 표현 같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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