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일본 음식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분식집, 중국집에서 빠지지 않고 반찬으로 내주는 단무지. 무를 달콤새콤하게 절여 노란색으로 물들인 무절임 ‘다꽝’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말로 순화하다며 '단맛 나는 무 짠지'라는 뜻의 '단무지'라고 부르고 있는 ‘다쾅’은 그 어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음식입니다.

경성일보(京城日報) 1933년 11월 11일
경성일보(京城日報) 1933년 11월 11일

일본은 우리나라에서 김치는 먹듯 가지, 오이, 무, 배추, 양배추, 매실 등을 소금, 미림, 지게미(酒粕) 등에 절여 장아찌로 만들어 먹는데 이런 걸 통틀어 담글지(漬)를 써서 쯔게모노(漬物)라고 합니다. 채소를 소금에 절인 음식은 크고 작은 차이는 있겠지만 전 세계 어디에나 있는 요리법입니다. 그런데 쯔게모노 중에서 유독 다이콘(大根, 무)을 노랗게 물들인 달콤한 이 쯔게모노를 일본에서는 ‘다쿠안(たくあん)’, 혹은 ‘다쿠왕(たくわん)’이라고 합니다.

‘다쿠왕’이 널리 보급된 것은 일본의 경제가 풍요로워지기 시작한 에도시대부터입니다. 이 시기 일본의 식문화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백미를 먹는 사람이 급격히 증가한 겁니다. 백미를 만들려면 도정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지게미가 만들어집니다. 바로 ‘다쿠왕’은 이 지게미를 이용한 겁니다.

‘다쿠왕’에는 무, 쌀겨, 소금, 설탕, 고추 외에도 맛을 더하기 위해 다시마를 넣기도 하는데, 결정적으로 치자(クチナシ)나 홍화(紅花), 유자 등을 넣어 어여쁜 노란색 ‘쯔게모노’가 탄생합니다. 그런데 ‘다쿠왕’이 일반 ‘쯔게모노’와 다른 점은 무를 말려 수분을 제거한 후에 절인다는 점입니다. 그로 인해 ‘다쿠왕’은 꼬들꼬들하고 아삭아삭한 식감을 주게 되는 거죠.

한국에서도 잘 알려져 있듯이 ‘다쿠왕’은 선종의 스님, 다쿠앙 소호(沢庵 宗彭,1573-1646)라는 스님의 이름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의해 에도막부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시기, 도쿠가와막부의 3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츠(徳川家光)가 밑반찬으로 나온 달달하면서도 새콤한 노란 다이콘 쯔케모노가 너무 맛있어 이걸 누가 만들었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리고 ‘쯔게모노’를 만든 사람이 다쿠앙 스님이라고 하자 이에미츠는 그 다이콘 쯔게모노를 ‘다쿠앙쯔게(沢庵漬け)’라고 이름을 붙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전해지는 이야기이니 사실 여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다쿠왕’이 한국에 들어온 건 일제강점기 시절입니다. 이때 총독부의 기관지 『경성신문』에는 맛있는 ‘다쿠왕’을 만드는 제조법이나 ‘다쿠왕’을 간단히 만들 수 있는 조미료를 판매하는 광고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아마 1930년대 경부 터 한국 사회에 퍼진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1960년까지 다꽝이라고 신문에서도 표기했고 아마 1990년대까지도 어른 들은 다꽝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다꽝이 아닌 단무지라고 하더라고요. 다꽝이라고 하면 뭔가 의식이 없는 사람 취급을 당하는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는 굳이 ‘우동’을 국수라고 하지 않듯이 ‘스시’를 초밥으로 다꽝을 단무지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김치나 불고기를 남들이 자신의 말로 바꿔 부른다면 좀 어색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본의 잔재라는 이유로 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과연 우리의 자긍심을 높여주는 일인지도 한번 생각해볼 필요도 있겠습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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