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월 1일 동아일보 1면.
1921년 1월 1일 동아일보 1면.

[뉴스워치= 칼럼] 오늘(24일)로 설 연휴가 끝납니다. 해가 바뀌고 한 달이 다되어 가는 이 시점에 다시 새해 인사를 주고받는 것이 심정적으로는 좀 어색하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새해 리셋이 가능한 것 같아서 양력설만 있는 것보다는 음력설도 있는 것이 좋습니다.

아시다시피 우린 아주 오랫동안 음력에 맞춰 생활해왔습니다. 농경사회에서 달의 움직임은 더없이 중요했기 때문이죠. 그런 우리나라에서 태양력을 받아들인 건 1895년 을미개혁 때입니다. 태양력은 이듬해인 1896년 고종에 의해 처음 시행되었지만, 국민의 반발이 심해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설은 지금 우리가 구정이라고 부르는 설만을 말하는 거였으니, ‘신정’ ‘구정’이란 개념은 일본에 의해 도입된 개념입니다. 지금도 양력설보다 음력설의 공휴일을 더 길게 정하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음력설은 우리에게 단순히 새해라는 의미 이상의 의미를 지닌 것 같습니다.

조선총독부는 조선의 땅에 태양력을 시행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는데, 설도 그중 하나입니다. 일본은 양력설을 새로울 신(新)자에 새해를 의미하는 일본어 ‘쇼우가츠(正月)’를 붙여 신정월(新正月), 신정(新正)이라고 하고, 우리의 지내는 설을 ‘옛 구(旧)’에 쇼우가츠(正月)’를 붙여 구정월(旧正月), 구정(旧正)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로 인해 ‘오래되다’라는 의미의 옛 구(旧)를 쓰는 구정은 좀 낡은 것, 오래된 것, 그야말로 한물간 새해 같은 이미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조선시보 1931년 2월 18일 구정
조선시보 1931년 2월 18일 구정

1916년 2월 4일 『부산일보』에는 평소 흰 한복만 입던 한국인들이 음력설을 맞이하여 화려한 색의 옷을 차려입고 재미있는 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게재되기도 하였습니다. 1921년 1월 1일 자 『동아일보』에는 새해를 축하하는 특집호가 꾸며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해 설인 1월 28일에는 아무런 기사도 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의 설에 관한 기사는 1957년이 되어서야 겨우 등장합니다. 『조선일보』도 별반 다르지 않았고, 『조선시보』에는 별다른 논평 없이 사진 한 장 달랑 올라왔는데, 우리가 얼마나 구정을 즐겼는지를 이 사진 한 장으로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록 언론 보도는 통제되었지만, 한국인들은 설을 포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오랜 관습상 음력설을 지켰던 것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이를 일본의 민족말살정책의 목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일 겁니다.

이처럼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살아남은 설입니다. 한 달 가까이 지난 후 다시 설날을 즐기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새해를 두 번 즐기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풍습 설은 우리에게 흐트러진 새해의 다짐을 다잡게 해주는 리셋 새해입니다. 한번 실패하면 리셋하기 어려운 요즘, 새해라도 리셋되어 새해에 결심했던 것을 다시 결심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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