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지난 22일은 설날이었다. 세수(歲首)·원단(元旦)·원일(元日)·신원(新元)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이날엔 어김없이 국민대이동이 있고 집마다 온 가족이 모여 그간의 정리를 나누었다. 그간 정부가 아무리 양력인 신정을 권장해도 국민의 마음속 설날은 신정보단 구정이었다.

한국이 근대국가가 되고 태양력이 보편화하면서 우리에겐 음력설인 구정과 양력설인 신정이라는 두 개의 설이 생겼다. 1896년 1월 1일에 태양력이 수용되었지만, 우리의 전통명절인 음력 설날은 계속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 ‘전통문화 말살 정책’에 의하여 이 설날을 없애고자, 설날 무렵이면 떡방아 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곤 하였다고 한다. 광복 이후에도 음력 설날은 계속되어 우리의 전통적인 ‘설날’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新正)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났다. 그러자 국가는 이중과세라는 문제와 외국과의 관계를 들어 신정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설날은 오랜 기간 공휴일로 할 것인지, 공휴일에서 제외할 것인지에 대해 오락가락하기도 하였다. 설날은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되어 1일간 국가적인 공휴일이 되었는데. 그러다가 1989년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본명인 ‘설날’이라는 이름을 되찾게 되었고 각종 언론은 70∼80년 만에 설날을 되찾았다며 보도했었다. 연휴도 변화하였다. 신정은 3일간 연휴로 하다가 2일로 줄었고, 1999년 1월 1일부터는 1일간 휴일로 축소되었다. 3일 연휴인 설날, 즉 구정의 비중은 커졌고 요즘은 설날은 추석과 함께 3일간의 연휴로 정착되었다.

지금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인사하지만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라는 문헌엔, 설날부터 3일 동안 아는 사람을 만나면 반갑게 '새해에 안녕하시오' 하고, '올해는 꼭 과거에 급제하시오’, '부디 승진하시오’, '생남하시오’, '돈을 많이 버시오' 등 좋은 일을 구체적으로 들추어 인사한다고 적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설날 아침에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행사이다. 차례는 예전엔 4대조까지 모시고 5대조 이상은 시제 때 산소에서 모셨다. 설음식을 세찬이라고 하는데 이날 떡국을 먹어야 비로소 나이 한 살을 먹는다고 했다.

설에는 추석과 더불어 ‘민족대이동’이 벌어진다. 고향을 찾는 인파와 간혹 ‘어른’들이 자녀를 찾는 현상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남’의 시간이기도 하다. 온 가족이 만나는 것은 요즘 같은 핵가족 시대에 매우 귀중한 행사이지만 모두가 이를 반기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 만나는 사실 자체가 괴로운 사람도 있다.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서울에 거주하는 청년 13만 명이 고립·은둔 상태라고 한다. 서울시가 지난해 5~12월 전국 최초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를 시행해 그 결과를 지난 1월 19일 발표했는데 만19~39세 청년 5513명 및 청년이 거주하는 5221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전체 서울 청년 285만5995명 중 고립·은둔 청년 비율은 4.5%로, 최대 12만9852명으로 추산됐다는 것이다.

이 조사에 의하면 청년들의 고립·은둔 생활 계기는 실직 및 취업난(45.5%·복수 응답), 심리적·정신적 어려움(40.9%), 인간관계 부적응(40.3%), 외부활동 귀찮음(39.9%), 학교·사회생활 부적응(30.7%) 순이었다. 청년의 89.8%는 지난 4주간 취업 활동을 하지 않았고 직장을 줘도 일을 할 수 없다고 답했는데 이유는 “일할 욕구가 없어서”(50.7%)라는 답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경제·학업 활동을 하지 않은 기간은 5년 이상(34.6%)을 가장 많이 꼽았다. 일자리를 제대로 구할 수 없는 현실이 청년 고립·은둔의 주범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청년들의 이러한 기간은 1~3년이 28.1%로 가장 많았고, 6개월~1년 사이가 11.9%, 3~5년 사이도 16.7%나 되었다. 10년 이상도 11.5%였다. 20~24세에 최초로 고립·은둔을 시작한 경우가 39.0%였고 이어 25~29세 사이도 31.3%였다. 지난 2주간 교류한 사람을 묻는 말에 24.1%가 ‘없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청년실업은 우리 사회에 이미 고질적 병폐로 자리잡았다.

고립·은둔 청년의 평균 교류 인원은 3명이 채 안 되었고 이들의 78.2%가 우울 증상, 39.3%는 중증 수준의 우울증을 겪고 있었다고도 한다. 사회의 출발 선상에서 직장을 확보하지 못한 사람은 고립·은둔 청년이 되어 인생의 낙오자, 실패자 취급을 받았고, 이 모든 책임은 가정이 짊어지게 된다. 캥거루족이니 헬리콥터 맘이니 하는 조어가 생긴 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박성호 동덕여대교수

어릴 때부터 경쟁에 내몰리고 비싼 사교육에 허덕였지만, 현실은 참담하다. 박사학위를 받아도 취업을 못 하고 일류대학을 나와도 취업하기 어렵다. 일자리가 너무 적다. 대기업 운운하지만, 실제 대기업이 책임지는 일자리는 얼마 되지 않는다. 경제발전도 좋지만, 국민이 살아야 한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실업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이는 정부의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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