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윤석열 대통령이 신년 인사회에서 중대선거구제 개혁을 이야기했다. 선거구제 개편 논의는 정치권에서 늘 있어왔지만, 기득권 국회의원들의 이해관계 속에서 늘 흐지부지 됐다. 그나마 야심차게 도입됐던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이라는 꼼수만 만들어내고, 양당이 역대 가장 부끄러운 선거를 치렀다는 오명만 남겼다. 그렇게 선거제도 개편이란 어렵고 험난한 길이다. 그래서 나는 신년인사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화두를 던졌을 때 환호했다. ‘역시 윤석열이라 가능하구나’ 정치권에 빚이 없는 사람. 정치인들 눈치 안 보는 정치인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가장 기대했던 그런 개혁 드라이브였다. 그것도 당선 1년 차 집권 초기에, 여당의 전당대회를 코 앞에 둔 기가 막힌 시점이었다.

그러나 내 기대와는 달리 잘 먹히지 않는 모양새다. 윤석열 대통령이 하는 일 이라고는 무조건 발목을 잡는 야당은 당연히 들어줄 리 만무하고, 늘 윤심을 들먹이던 여당조차 뜨뜻미지근한 반응이었다. 선거제도 개편을 하려면 내년 4월 총선을 1년 앞둔 올 4월까지 완료해야 한다. 그러려면 지금 한창 토론회와 간담회를 통해 의견수렴과정을 거치고 정밀한 선거제도 설계에 들어가야 한다. 민주당은 오히려 김부겸 전 국무총리와 민주당 출신 정치 원로 30여명이 선거제 개혁을 돕겠다며 발벗고 나섰다. 정파와 진영을 넘어 선거제도 개혁을 하자고 여야의원과 보수 진보 시민단체가 목소리를 모으기도 한다. 여야 청년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선거제 개편을 외치는 <정치개혁 2050>의 활동도 활발하다. 정작 가장 앞장서야 할 여당 지도부만 뭉그적거리는 모양새가 되고 있다.

중대선거구제가 만사 형통인 것은 아니다. 소선거구제도 장점은 있다. 하지만 현재의 대한민국 정치는 소선거구제의 부작용이 너무나 심각하게 드러나고 있다. 거대 양당의 독식으로 소수정당의 목소리가 거의 전멸했으며, 양당의 정파싸움은 극으로 치달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두 정당 후보의 표 차이는 불과 0.7% 차이였다. 국민들이 거의 절 반으로 나뉘어 서로 반목하게 되는 현상을 지켜보았고, 그 여파는 정치권에 여전히 남아 국민들을 괴롭히고 있다. 이쪽 아니면 저쪽을 확실히 선택하게 하는 소선거구제 속에서 정치인들은 점점 좌클릭 우클릭으로 치닫고만 있고, 그 분위기에 휩쓸려 이쪽 아니면 저쪽을 선택했다가 잘못하면 나의 표는 사표가 되고 내 의견은 묻혀버린다. 협치가 실종되고 정치의 낭만이 사라지고 오로지 진영 논리에 매몰되어 비판을 위한 비판에 혈안이 되어 있는 현 정치권의 상황이 분명히 정상은 아니다.

중대선거구제로 내년 총선을 치른다는 것은 지금 국회의원들의 지역구를 일단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선거 권역을 완전히 다시 짜는 문제이기 때문에, 공천만 받으면 무조건 당선이라는 공식이 깨지는 경우가 생긴다. 공천 줄 사람만 잘 알고 지내면 나의 재선 삼선이 보장받는데, 굳이 모험을 할 이유가 하등 없다. 아무리 대통령이 던진 화두이지만, 제도의 단점을 핑계로 4월까지만 미루면 또 흐지부지 넘어가지고 당장 나의 임기동안에 제도를 손봐야 하는 번거로움은 사라진다. 주로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국회의원들이 이 문제에 미온적이다. 오히려 수도권의 경우 공천이 곧 당선인 확률은 적고, 선거제 개혁이 정당의 유불리와 상관없이 적용될 수 있다. 그러나 대구경북의 국민의 힘, 호남의 민주당은 지금 이대로가 현역 국회의원들에게 가장 유리한 제도이기 때문에 개혁하지 않는다.

손수조
손수조

대통령이 직접 선거제도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전당대회를 통해 여당의 지도부를 바꾸는 지금 이 시기는 우리에게 매우 큰 기회다. 진영의 양극화, 전부가 아니면 전무가 되어버리고 국민 절반의 의견을 사장시켜 버리는 소선거구제. 당파논리로 거대 정당은 범죄자도 비호하고 대통령의 공약 예산도 다 깎아버리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이제는 좀 바꿔야 하지 않을까. 현역 국회의원 기득권도 전당대회라는 국면에서는 조금 내려놓고 개혁에 동참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지도부를 당원들이 세울 수 있는 힘도 있지 않은가. 입으로만 대통령을 위하는 사람이 아닌, 행동으로 대통령의 개혁을 뒷받침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정치개혁은 더구나 다름아닌 여의도 정치권에서 스스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룰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언급한 정치 개혁을 할 마음도 없으면서 ‘윤심’을 외치는 건 너무 비겁하다.

◇ 리더스클럽 대표

◇ 장례지도사

◇ 차세대미래전략연구원 연구위원

◇ 전)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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