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뉴스워치 ]일본의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
일본의 국민학교 시절 교과서.

[뉴스워치= 칼럼] ‘믿고 보는 국민배우’, ‘국민 가수’, ‘국민 MC’, ‘국민 요정’, ‘국민 여동생’ 등 인지도도 높고 대중적으로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국민○○’라는 표현을 많이 붙이고 있습니다. ‘국민 언니’, ‘국민 사위’, ‘국민 쌍둥이’ 등 수 없는 ‘국민○○’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국민○○’는 북한에서 최고의 예술인에게 수여되는 ‘인민배우’라는 칭호처럼 오랜 세월 예술 분야에 몸담고 있으면서 그 분야의 한 획을 그은 이미자, 조용필, 안성기 등과 같은 사람에게 부여하는 명예로운 호칭으로 더욱 대중적인 표현으로 자리 잡은 것 같습니다.

어느 날 대형 마트에 가니 ‘국민’의 이름이 붙은 빵, 라면 등 다양한 상품들이 있었습니다. 유명브랜드에서 출시된 상품과 비교해도 질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여 구매 욕구를 자극했습니다. 아마도 누구라도 살 수 있는 가격의 상품이라는 의미에서 상품에 국민이라는 이름을 붙였겠지만, 국민은 저렴해야 먹을 수 있다? 국민은 저렴한 것을 먹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며 조금 빈정이 상했습니다. 싸고 맛있으면 그만인데 괜스레 딴지를 거는 건 아마도 ‘국민’이라는 뉘앙스 때문일 겁니다.

저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국민학교’가 초등학교로 명칭이 바뀐 것은 1996년으로 국민학교 이전에는 소학교라고 했습니다. 이런 명칭들은 아시다시피 일본의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 것인데, 1872년, 일본은 교육제도를 서구식으로 개편하면서 소학교라는 명칭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본격화되면서 소학교를 ‘국민학교’, 즉 코쿠민갓코(国民学校)로 변경하였고 이 명칭은 1946년 GHQ에 의해 폐지됩니다. 그런데 일본군부는 왜 국민학교라는 이름으로 변경한 걸까요? 국민, 즉 고쿠민(国民)은 독일의 우월한 ‘정신문화’를 의미하는 독일어 “Kultur”에서 가져온 말로 우월한 민족주의와 결부됩니다. “Kultur”이 한자 국민(国民)으로 번역되면서 고쿠민은 ‘○○나라(国)’의 ‘백성(民)’이라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1941년에 칙령으로 하달된 ‘국민학교령(国民学校令)’에는 ‘국민학교는 황국의 길에 의거하여 초등보통교육을 실시’하는 기관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즉, 국민학교는 기초교육을 위한 교육기관이 아닌 황국신민을 만들기 위한 교육기관으로 만세를 이어온 살아있는 신, ‘천황’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기꺼이 바칠 신민들을 양성하는 기관이었던 겁니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는 국문학, 국사, 국어, 국체 등 ‘나라(国)’자가 들어간 단어들은 단순히 자신들의 나라의 언어, 역사, 문화라는 말을 넘어서 자국에 대한 우월감이 내재하여 있는 말입니다. 그로 인해 일본은 패전 이후 이러한 말들은 일본어, 일본사, 일본 문학 등의 말로 대체되었고, ‘뛰어난 문화유산을 물려받은 우월한 국민’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던 ‘국민’이 들어간 ‘국민의 노래’, ‘국민교육헌장’ 등은 사용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국민이라는 말이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곳이 정치권입니다. ‘국민 여러분(国民の皆様)’, ‘국민의 뜻에 따라(国民の意思に基づいて)’ 등 정치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국민을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가끔은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이 사용하는 ‘국민’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리고 나는 과연 주권을 지닌 주체로서의 국민인가? 라고 말입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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