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쿠지(おみくじ)운세
오미쿠지(おみくじ)운세

[뉴스워치= 칼럼] 2020년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한 이후 3년이란 세월을 지내는 동안, 일상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는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비대면에 너무 길들어져 어딘가 참석하거나 누군가 만나 담소를 나누는 일이 어색해져 버렸고, 게다가 길거리에서 혹은 학교에서 크게 웃거나 떠드는 아이들도 우린 너무 오랫동안 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팍팍해진 우리의 삶을 보여주는 듯 백화점의 크리스마스 장식 또한 단출했고, 크리스마스 선물 가방 또한 가벼워졌습니다. 잠시 주춤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위드코로나' 선언으로 다시 기승을 부리면서 우린 여전히 마스크 속 불편한 숨을 내쉬고 있습니다. 연말이 연말답지 못해 새해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지 못한 채 한 해를 맞이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해가 바뀌었는데도 해가 바뀐 걸 실감할 수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도 시간은 흘러 벌써 1월하고도 10일이라는 숫자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가끔은 다소 분주했던 일본에서의 생활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12월에 들어서면 연하엽서를 보낼 준비를 시작해야 했고 아주 가까운 분들에게는 오세보(お歳暮)라는 연말 선물도 보내야 했습니다. 연말 대청소를 마치고 맞이하는 31일, 토시코시소바(年越しそば)를 먹으며 장장 4시간 넘게 방영하는 NHK 홍백전을 보고 나면 항시 11시 45분이 됩니다.

홍백전이 끝나면 사람들은 가까운 신사에라도 가서 신년기도를 올리고 올해의 운수도 한번 점쳐보곤 합니다. 보통은 집 근처의 신사를 다녀오는 분들이 많지만, 특별히 집안에 아픈 분이 있거나 입시를 앞둔 학생이 있거나, 시집·장가를 안 간 자녀가 있는 집안, 장사하는 집안 등 특정 목적을 이루고 싶어 하는 분들은 효험이 있다고 알려진 유명한 신사를 찾아가 부적을 사서 선물하기도 합니다. 미신이다 싶지만 그래도 그런 부적을 붙여놓거나 달고 다니면 뭔가 심적으로 안심이 된다고 느끼는 분들도 분명 있으니까요. 디지털 시대에 그런 아날로그 감성의 문화는 신선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1월 1일에 신사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것을 하츠모데(初詣)라고 합니다. 물론 꼭 1월 1일에만 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대체로 1월 1일에 갑니다. 일본에서는 크리스마스도 그렇지만 12월 31일도 연인과 함께 새해를 맞는 분들이 많습니다. 자연스럽게 연인과 자정까지 같이 있다가 시간에 맞춰 신사에 가는 사람들도 꽤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이 많은 걸 기억할 수 없으니 가장 일찍 기원하는 걸 잘 기억했다가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일지도 모르죠. 약간 규모가 있는 신사에서는 가면 정종과 달콤한 감주, 그리고 떡을 팝니다. 이 음식들은 모두 신이 내려주신 쌀로 빚은 것이니 이것들을 먹으며 신께 감사드리는 겁니다.

사실 신사참배라고 하면 일왕과 신도를 무리하게 연결 지었던 국가 신도가 연상되어 단순히 종교행사로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 저도 신사에는 가지만 참배는 하지 않고, 재미 삼아 그해 운수를 점치는 '오미쿠지(おみくじ)'정도만 뽑습니다. 오미쿠지란 길흉을 점치기 운세 종이로 돈을 넣고 대나무 통을 흔들면 작은 종이 한 장이 나옵니다. 쪽지에는 대길(大吉), 길(吉), 중길(中吉), 소길(小吉). 말길(末吉), 흉(凶) 이렇게 대길에서 대흉까지 7단계에서 12단계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하츠모데로 뽑은 오미쿠지(おみくじ)는 길흉과 관계없이 대부분 신사가 지정한 장소에 묶어놓고 갑니다. 가져가도 되지만 신사에 있는 나뭇가지에 묶어두면 가미와 부처님과 만날 기회가 많아 한층 더 효력이 있다고 하네요. 대흉이나 흉과 같은 나쁜 운세를 뽑은 경우, 손잡이 손이 아닌 반대 손으로 묶으면 길이 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미쿠지에서 대길이 나오면 기분은 좋겠지만, 설사 흉이 나와도 흉이 길이 되길 바라며 흉을 나무에 묶고 올해는 ‘좀 조심해야겠구나’라고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태어난 띠로 오미쿠지를 사는 때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해에 태어난 사람이 모두 같은 운명일 수 없으니 어디까지나 재미로 보는 신년 운세입니다. 그리고 하츠모데를 한 후 가족이나 연인끼리 설날 분위기를 즐긴다며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도 많은데, 일설에 의하면 하츠모데 이후 어딘가 들리면 받은 복을 그곳에 떨어뜨린다고 하니 하츠모데 후에는 곧장 집에 돌아가 여유롭게 쉬는 게 좋다고 합니다. 어떤 오미쿠지를 뽑던 행운을 여러분의 것으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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