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역대 최고급이라 할 만큼 힘들었던 2022년이 지고 새해가 밝았습니다. 누구나 할 것 없이 우린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주고받습니다. 가끔 ‘복(福)’이라는 매우 추상적인 개념으로 속절없이 건네는 인사말로는 좀 부족한 듯하여 “건강하세요”, “부자 되세요”,“시험에 꼭 붙으세요”. “사업 번창하세요” 등 상대방이 받길 원하는 복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고단한 삶 속에서 생각지도 못했던 행운이 ‘툭’하고 굴러떨어져 들어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늘 타고 다니던 버스나 지하철에서 운명의 사람을 떡하니 만나거나, 어디선가 좋은 취직자리 제안이 온다거나, 내 능력을 알아봐 주는 누군가가 나타나 간절히 원했던 그 일이 이루어진다거나 하는 기적 같은 ‘복’이 당신의 삶 속에 일어나길 기원하며 건네는 덕담입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새해가 밝으면 누구나 “아케마시데 오메데토우 고자이마스(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라고 합니다. ‘아케마시테(あけまして)’는 한자 밝을 ‘명(明)’ 자를 쓰는데, 굳이 직역한다면 ‘날이 밝아온 걸 축하합니다’가 될 겁니다. 날이 밝아온 걸 왜 축하하냐고요? “새해 첫날”이 되면 작년까지만 해도 우린 한 살을 더 먹었습니다. 이걸 일본에서는 ‘가조에도시(数え年)’하는데 모두 한 살을 더 먹은 것에 대한 축하인 거죠. 다시 말하면 “아케마시테 오메데토우(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는 무사히 한 해를 넘겨(無事に年を越せたこと) 한 살을 더 먹게 된 것에 대한 축하의 의미입니다.

그 옛날에는 내일의 생명조차 보장할 수 없을 정도의 빈곤, 전쟁, 범죄, 기근, 역병, 재해 등에 무력한 시대를 살았었죠. 태어난 아이가 한 해를 무사히 넘기고 성장한다는 보장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고 새해의 신인 토시가미사마(年神様)를 맞이하게 된 것에 감사하는 거지요. 특히나 이태원 사태를 경험한 우리로서는 2023년을 별 탈 없이 맞이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새해의 신, 토시가미사마(年神さま)는 한자는 다르지만, 일본어 발음이 같은 세(歳)를 사용하여 새덕신, ‘토시토쿠진(歳徳神’이라도 ‘정월님(正月様)’이라고도 합니다. 이 새해 신은 설날에 집으로 찾아와 우리에게 복을 내려줍니다.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흙으로 돌아간다고 하잖아요? 일본도 우리처럼 산이나 밭에 죽은 이를 매장했는데, 그렇게 땅에 묻힌 영혼은 ‘논의 신’이나 ‘산의 신’이 되고 이 신들이 설날에 ‘토시가미사마(年神さま)’가 되어 자손들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새해와 추석에 조상님께 제사를 올리는 것도 조상님들이 후손들을 보러 집으로 돌아오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토시가미사마(年神さま)는 죽어서도 우리 아이들이 잘살고 있나 하는 걱정하며 집으로 찾아오시는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인 셈이죠. 혹여 그분들이 길을 잃으시거나 다른 집에 가시는 일이 없도록 새해에 현관에 새끼줄을 걸어놓거나 소나무와 대나무로 장식한 카도마츠(門松)를 세워둡니다.

일본의 새해인사에는 복을 기대하는 덕담이 아닌 감사함이 우선합니다. 복을 기대하다 보면 뭔가 부족한 것만 보이고, 나만 그 복에서 벗어난 것 같아 섭섭하기만 합니다. 하지만 무탈함에 감사하고 어제보다 더 많이 무엇인가를 사랑하고, 더 많이 미소짓다 보면 진정으로 감사할 일이 생겨날지도 모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케마시데 오메데토우 고자이마스(あけましておめでとうございます”, 내년에도 이 인사를 건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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