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허(謙虛)를 늘 마음에 두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

 故손복남 고문./사진=CJ그룹
故손복남 고문./사진=CJ그룹

[뉴스워치= 정호 기자] CJ그룹이 탄생하기까지 뒤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故손복남 고문의 발자취가 영면 이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 5일 오전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어머니 손복남 고문이 숙환으로 향년 89세 별세했다. 이날은 CJ그룹(창업 당시 제일제당)의 창립 69주년을 맞은 날이기도 하다. 빈소는 서울 필동 CJ인재원에 마련됐으며, 장례는 비공개 가족장으로 치러진다. CJ인재원은 이재현 회장이 어린 시절 고인과 함께 살던 집터로 CJ그룹 창업 이후 인재양성을 위한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손복남 CJ그룹 고문은 경기도지사를 지낸 고 손영기 씨의 장녀로, 손경식 경총 회장의 누나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의 어머니다. 특히 제일제당을 물려받아 이재현 회장이 CJ를 글로벌 생활문화기업으로 성장시키기까지 든든한 후원자이자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누나이기도 한 고인은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의 장남 고(故) 이맹희 CJ명예회장과 결혼하면서 삼성가와 인연을 맺었다. 손 고문은 총명한 머리와 곧은 심성으로 일찌감치 이병철 선대회장의 총애를 받았다. 늘 대소사가 있을 때면 꼭 맏며느리인 손 고문과 상의했다.

손 고문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시부모인 이병철 회장 내외를 모시며, 자녀들을 키워냈다. 특히 장남인 이재현 회장에게 엄격했다. 실력과 인성 면에서 손색없는 경영자로 아들을 키우려는 일념에 ‘항상 겸손해라. 스스로 능력을 입증해라. 일 처리에 치밀하되 행동할 때는 실패를 두려워 말라’고 아들을 채근했다. 이병철 선대회장이 장손인 이재현 회장을 유달리 사랑하고 신뢰한 근저에는 손 고문의 이런 노력이 뒷받침됐다.

손 고문이 연결점 역할을 한 조부, 며느리, 손자 3대(代)간 정신적인 유대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창업정신이 이재현 회장이 이끈 CJ그룹의 경영철학으로 정립되는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손 고문이 있었기에 이재현 회장은 제일제당을 물려받게 됐고, 이는 CJ그룹 출범의 근간이 됐다. 손 고문은 그룹 출범을 지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매출 1조원대 식품회사인 제일제당이 글로벌 생활문화그룹으로 도약하는 기점마다 중요한 역할을 했다.

CJ가 문화사업에 진출하는 계기인 미국 드림웍스 지분투자(1995년) 당시 손 고문은 창업자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등을 집에 초청해 직접 식사를 대접하며 성공적 협력 관계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2010년대 초반 글로벌 한식 브랜드 이름을 비비고로 정할 때도 “외국인들도 부르기 좋고 쉽게 각인되는 이름”이라고 힘을 실었다.

CJ가 글로벌 K푸드 확산을 꿈꾸며 2017년 개관한 R&D 허브 CJ블로썸파크를 구상할 때는 이재현 회장과 함께 주요 후보지들을 둘러보며 주변 인프라와 최적의 시너지가 예상되는 현재의 광교를 지목하기도 했다.

이재현 회장은 그런 어머니를 “CJ그룹 탄생의 숨은 주역이시고, 내가 그룹의 경영자로 자리잡는데 든든한 후원자셨다”라고 했다. 손 고문은 말년까지도 그룹 경영진과 가족이 항상 성장하며 발전하도록 하는 화합과 교류의 구심점 역할을 해주었다.

호암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합리추구라는 창업이념과 생활태도로서 스스로를 낮추고 비우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를 누구보다 잘 이해했던 손 고문은 평소 이 회장에게 “겸허(謙虛)를 늘 마음에 두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CJ그룹 고위 관계자는 “이재현 회장은 어머니의 가르침을 CJ의 온리원(ONLYONE) 경영철학(최초, 최고, 차별화를 추구해 초격차역량을 갖춘 일등기업이 된다)으로 정립해 그룹 발전 초기부터 CJ를 작지만 최고의 회사,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회사로 만들고자 했다”고 강조했다.

정호 기자 newswatch@newswatch.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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