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나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사람이 만나고 싶어지고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바다가 보고 싶어져(海ばかり見てると人に会いたくなるし、人ばかり見てると海を見たくなる).”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표지
무라카미 하루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표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일본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의 데뷔작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에 등장하는 대사입니다. 지나간 여름을 아쉬워하듯 무심코 펼쳐 든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風の歌を聴け)』에는 음악도 청춘도 바다도 맥주도 요리도 있었습니다.

무라카미 작품에는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엔 비치보이스의 《캘리포니아 걸스》, 『노르웨이의 숲』엔 비틀즈의 《노르웨이의 숲》, 『1Q84』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등 팝에서 클래식까지 다채로운 음악이 등장합니다. 음악과 더불어 다양한 음식도 등장합니다. 그의 어떤 작품에서도 주인공은 냉장고의 남은 식자재만으로, 요리라고 해도 전혀 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요리를 뚝딱 선보입니다. 글로 능숙하게 묘사된 그의 소설 속 음식들은 향도 맛도 색깔도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의 소설을 읽으면 ‘무턱대고 맥주가 마시고 싶어진다(無性にビールが飲みたくなる)’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책을 읽고 있으면 배 속이 꼬르륵꼬르륵, 뭔가 먹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쳐오르곤 합니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는 29살이 되어도 여전히 대학에 다니고 있던 주인공 ‘나’가 지나쳐온 1970년 8월 8일부터 18일간의, 여름날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입니다. 여름방학을 맞아 고향에 돌아온 나는 친구, 쥐(鼠)와 바닷가가 근처의 제이스 바(ジェイズ・バー)에서 자주 술을 마시며 대화를 나눕니다. 그 바에는 식욕 왕성한 젊은 남녀들이 오믈렛(オムレツ)을 먹기도 하고 ‘셀러리 소고기 조림(セロリと牛肉の煮物)’, ‘정어리와 유부(鰯と油あげ)’ 등을 시켜 먹습니다.

주인공 '나'는 제이스 바에서 쥐를 기다리며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콘비프의 샌드위치(コーンビーフのサンドイッチ), 식초에 절인 전갱이(酢漬けの鯵)와 야채 샐러드(野菜サラダ) 등을 안주 삼아 맥주를 마십니다. 플로베르의 책을 읽는 나에게 친구인 쥐는 묻습니다 “왜 책 같은 것을 읽지?” 나는 쥐에게 묻습니다. “왜 맥주 같은 것을 마시지?” 쥐는 그 질문에 5분 정도 지나 “맥주의 좋은 점은 말이야, 전부 소변으로 나온다는 점이지(ビールの良いところはね、全部小便になって出ちまうことだね)”라고 대답합니다. 8월 26일, 마신 맥주를 다 내 몸에서 다 뱉어버리듯 ‘나’는 짧았던 여름날의 추억을 뒤로하고 다시 원래 있던 도쿄로 쓸쓸히 돌아오면서 끝납니다.

어느새 10월! 본격적으로 가을이 시작되는 달입니다. 아무래도 맥주보다는 따뜻한 집밥이 더 그리워진다면 상실의 시대로도 번역된 『노르웨이의 숲(ノルウェイの森)』을 권합니다. 참고로 일본어로 ‘집밥’이 집(家)+밥(ごはん)은 아닙니다. 손으로 직접 만든 음식, ‘테 요리(手料理, てりょうり)’라고 합니다. 주인공 미도리(緑)는 좋아하는 와타나베에게 집으로 초대해 하얀 쌀밥과 가지 조림(なすの煮物), 관서 지방풍의 계란말이(関西風の卵焼き), 삼치 된장 절임(さわらの西京漬け) 등과 같은 정갈한 일본식 가정식 음식을 대접합니다. 활달하고 성적인 이야기도 거침없는 그녀는 고등학교 때 원하던 속옷구매를 포기하고 계란 말기 그릇을 사던 그녀였으니 꽤나 요리에 진심인 거죠. 와타나베는 “미도리의 요리는 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 훌륭한 것이었다(緑の料理は僕の想像を遥かに越えて立派なものだった。)”라고 평합니다.

이런 미도리와 달리 와타나베의 자살한 친구의 여친으로 지금은 와타나베의 여친이 된 나오코(直子)와의 식사는 항시 단출합니다. 늘 조용하기만 그녀와의 식사를 무라카미는 소설에서 늘 간단한 식사(簡単な食事)라는 표현합니다. 미도리(緑)라는 이름처럼 그녀는 삶의 활기가 넘치고 그녀의 요리 또한 따뜻합니다. 하지만 우울증을 앓다가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나오코의 음식은 그녀의 삶처럼 단조롭기만 합니다.

무라카미의 소설에서 요리는 단순한 음식이 아닌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힘이고,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이 투영된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라카미의 소설은 늘 음악과 음식, 그리고 성이라는 인간의 본능적 욕구가 뒤엉켜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소설을 단지 눈으로만 읽지 않고 청각, 미각, 후각, 그리고 오감으로 읽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고마비의 계절! 소설 속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소설 속으로 빠져들어 갑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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