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워치= 칼럼]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의 장례식이 27일 오후 2시부터 국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지난 7월 8일 선거 유세 도중 총탄에 맞아 숨진 아베 전 총리의 가족장은 이미 끝났지만, 두 달을 훌쩍 넘겨, 고인이 사망한 지 81일 만에 국장이 거행된 겁니다. 주요 7개국(G7) 정상들은 불참했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호주 등의 국무총리, 부통령, 일본 정·재계 인사들은 이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아베 신조의 국장 장면
아베 신조의 국장 장면

국장이 진행되는 국회 앞에선 대규모 국장 반대 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미 장례를 치른 사람의 장례를, 그것도 165억 엔이나 들여가며 국장을 치른다는 것에 일본국민의 68% 이상이 반대했습니다. 찬성은 16%에 불과했습니다. 온라인(ネット)에서도 '국장 반대' 서명 캠페인이 일어났고, 70대 남성은 분신자살이라는 극단적 형태로 개탄스러운 일본정치 상황을 알리려 했습니다. 국장에 대한 반대여론이 고조되면서 일부 집권 자민당의 국회의원까지 국장에 불참한다고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기시다 일본 총리는 국회의 동의도, 충분한 설명도 없이 국장을 강행했습니다. 국민이 국장을 반대하는 배경에는 국장에 드는 비용, 여론을 무시한 결정 등의 문제도 있지만 역시 아베(安倍)라는 정치인에 대한 일본 내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겁니다. 거기에 사건의 발단이 된 집권 여당과 통일교의 유착 관계도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8월 31일, 시민단체가 주관한 국장 중단 시위에 4,000명이 참석하였습니다. 미일안전보장조약 재체결(日米の安全保障条約の再締結)에 반대하여 대규모 반대 데모가 일어났던 1970년대 안보(安保)투쟁 이후에 일본에서는 집회, 시위는 물론 투표를 통한 정치참여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4,000명이나 참여한 이번의 시위는 매우 이례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대체로 70년대 안보투쟁을 했거나 흐릿하게나마 전쟁을 기억하는 세대가 대부분이었다는 것이 좀 씁쓸할 따름입니다.

이번 국장을 통해 일본의 정치는 그들 정치인 만의 리그라는 것이 더욱 명확해졌습니다. 국민이 반대여론에 대하여 유족들은 ‘정부가 정한 것(政府が決めるもの)’이니 따른다는 입장입니다. 본인에게는 책임추궁을 하지 말라는 것이겠지요.

국가 권력은 국민에게 때론 폭력적입니다. 국민을 강제하고 철저하게 정보, 언론, 행동 등을 규제하기도 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군인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내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강제징집령으로 어쩔 수 없이 전쟁에 끌려간 것이니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당시, 전쟁을 피하거나 불미스러운 행동을 하면 호적에 빨간 줄이 그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은 비국민(非国民)으로 몰려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가족들을 생각하면 전쟁동원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따라서 자신들은 전범자가 아니라 희생자라는 겁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사람들이 모이면 좋든 싫든 정치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일본인들은 거의 정치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사회문제라고 해도 세금이나 실업률, 사회복지 정도일 겁니다. 이런 일본인의 모습에는 저도 유학 시절부터 일종의 위화감(違和感)이 있었습니다. 많은 일본인은 누가 수상이 되든, 국회의원이 되든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사회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국민이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정부는 국민을 우습게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본 젊은이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언젠가 평화헌법이 개정되어 러시아의 젊은이들처럼 전쟁에 동원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때도 역시 나에게는 책임이 없다, 나라가 시켜서 했다는 무책임한 말을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최유경 교수
최유경 교수

◆ 프로필

◇ 이화여자대학 졸업

◇ 오사카부립대학원 박사학위 취득

◇ 서울대, 성균관대 등 다수대학에서 강의

◇ 서울대인문학연구원, 명지대 연구교수, 학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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